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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화폐전쟁 - 달러 패권 100년의 사이클과 위안화의 도전
조경엽 지음 / 미래의창 / 2025년 5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1세기 국제정치의 핵심축은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적 경쟁으로 이동했다. 이러한 경쟁은 무역분쟁을 넘어서 기술패권, 군사안보, 그리고 무엇보다 화폐와 금융시스템을 둘러싼 근본적인 질서 재편 경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시진핑 3기와 트럼프 2기로 상징되는 현재의 미중관계는 협력의 파트너에서 전략적 경쟁자를 거쳐 '가상의 적'으로까지 규정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번 경쟁의 최종 승부처가 실물경제가 아닌 금융패권에 있다는 것이다. 달러를 중심으로 구축된 현재의 국제금융질서에 대한 중국의 도전은 경제적 이익을 넘어서 글로벌 헤게모니의 재편을 의미한다. 이는 위안화의 국제화라는 중국의 야심찬 프로젝트와 이에 맞서는 미국의 대응전략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번에 이 두나라의 화폐전쟁에 대해 상세히 분석한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중국의 화폐전쟁 전략에서 가장 혁신적인 요소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금융시스템의 변화이다. 알리페이와위챗페이로 대표되는 중국의 디지털 결제 플랫폼은 결제수단을 넘어서 전 사회의 금융 인프라를 재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25년 현재 알리페이의 활성 사용자가 10억 명에 달하고 중국 모바일 결제시장의 54%를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변화의 규모를 보여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디지털 결제 혁신이 위안화의 국제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엠브릿지(mBridge) 프로젝트는 국경을 넘나드는 위안화 결제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하며, 기존의 달러 중심 국제결제시스템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기술혁신을 통해 금융패권 경쟁에서 선제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전략의 핵심이다. 디지털 위안화의 특성은 여기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프로그래머블 머니'로서 코드를 통해 다양한 조건을 설정할 수 있는 디지털 위안화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모든 가입자에게 직접 적용할 수 있게 한다. 이는 기존의 간접적인 통화정책 전달경로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정책 효율성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나 선별적 부양정책을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은 경제정책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수 있는 혁신이다.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 전략은 디지털 혁신과 함께 전략적 외교를 통한 제휴 구축에도 크게 의존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통화스와프 협정을 통한 신흥국과의 관계 강화이다. 미국이 지원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국가들에게 중국이 먼저 손을 내미는 방식은 달러 중심 시스템의 틈새를 공략하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더욱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페트로달러 체제에 대한 도전이다. 1974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합의로 시작된 페트로달러 체제는 달러패권의 핵심 기둥 중 하나였다. 사우디가 원유를 달러로만 결제하는 대가로 미국이 군사적 안보를 보장한다는 이 체제에 중국이 균열을 가하고 있다. 2022년 12월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거래에서 위안화 결제 도입에 합의한 것은 기축통화 질서 변화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중국의 중동 외교에서 보여준 적극적 중재자 역할 역시 주목할 만하다. 2023년 3월 중국의 중재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외교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것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이 강했던 중동 지역에서 중국이 새로운 질서 형성의 핵심 플레이어로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경제적 이익과 지정학적 영향력 확대를 동시에 추구하는 중국의 종합적 전략의 결과물이다.
중국의 화폐전쟁 전략에서 브릭스(BRICS)는 매우 중요한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구성된 브릭스는 서방 주도의 국제질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협력체로서 위안화 확산의 중요한 채널이 되고 있다. 브릭스 내에서 중국은 주요 자원거래에서 위안화 표시 선물 및 현물가격을 적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와의 원유 및 구리, 브라질과의 철광석 및 알루미늄,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금 및 백금, 인도와의 금 거래에서 위안화 기준 가격을 활용하려는 것은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서 위안화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구체적 전략이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브릭스의 공동 금융망 프로젝트들이다. 브릭스 브릿지는 회원국 간 자국 통화로 직접 결제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금융제재 영향권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이다. 브릭스 클리어는 미국과 유럽의 결제시스템을 우회하여 회원국 간 자국 통화로 직접 청산하는 독립적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한다. 공동재보험사 설립을 통한 글로벌 안전망 구축 역시 서방 금융시스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그러나 브릭스 내부의 복잡한 이해관계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인도의 경우 중국과의 국경 분쟁과 지정학적 경쟁, 그리고 미국과의 협력 필요성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기식' 외교를 펼치고 있다. 러시아 제재 상황에서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 수입하면서도 서방의 묵인을 받고 있는 현상은 이러한 복잡한 역학관계를 잘 보여준다.
미국 달러가 갖고 있는 네트워크 효과, 군사력을 뒷받침하는 신뢰성,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가치와의 연계는 여전히 강력한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의 위안화 부상은 달러의 독점을 다극화로 변화시킬 수는 있지만, 완전한 대체는 아직 먼 미래의 일로 보인다. 미중 화폐전쟁의 최종 결과는 21세기 글로벌 질서의 중심축이 누구에게 있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역사적 분기점이 될 것이다. 이는 100년 마라톤으로 불리는 장기적 패권경쟁의 핵심 전장이며, 그 결과는 향후 수십 년간 국제정치와 경제질서의 기본 틀을 규정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