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있는 사고를 위한 최소한의 철학 - 철학의 문을 여는 생각의 단어들
이충녕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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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나는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한 기분을 느꼈다. 탈레스부터 현대 철학자들까지 이어지는 사상의 계보를 따라가며, 내가 평소 품고 있던 막연한 의문들이 수천 년 전부터 인류가 고민해온 근본적 질문들과 맞닿아 있음을 깨달았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명제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변화와 영원성에 대한 철학적 통찰의 출발점이었다는 사실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저자가 말하는 '철학의 지도'라는 표현이 특히 인상 깊었다. 지도는 완벽한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길을 찾기 위한 도구라는 것. 마찬가지로 철학도 절대적 진리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의 미로에서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돕는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한다는 통찰이 마음에 와닿았다.

책을 읽어가며 가장 놀라운 순간은 내가 평소 하던 생각들이 이미 위대한 철학자들의 고민과 닮아있다는 걸 발견했을 때였다. "인간은 정말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을까?", "선과 악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나는 왜 나인가?" 같은 의문들이 단순한 개인적 호기심이 아니라 철학사를 관통하는 핵심 질문들이었던 것이다. 특히 소피스트들의 "인간이 만물의 척도다"라는 주장을 접했을 때, 현대를 사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상황에서 이러한 상대주의적 사고에 노출되어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SNS를 통해 수많은 관점이 충돌하는 현실에서, 프로타고라스의 통찰은 단순한 고대 철학이 아니라 현재적 의미를 갖는 살아있는 사상으로 다가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행복한 삶)부터 현대 실존주의까지,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방식의 다양함에 매혹되었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 스토아 철학의 아파테이아,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학까지, 각각의 철학이 제시하는 삶의 기준들을 따라가다 보니 내 자신의 가치관이 어떤 철학적 토대 위에 서 있는지 조금씩 명확해졌다. 현대인으로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명제였다. 관계의 복잡성, 타인의 시선 속에서 형성되는 자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주요 관심사였다는 걸 알게 되면서,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감이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생성형 AI가 일상이 된 지금, 철학의 중요성은 오히려 더욱 부각되고 있다. 기계가 인간의 사고를 모방하고, 때로는 능가하는 시대에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들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의식이란 무엇인가?", "사고한다는 것의 본질은 무엇인가?",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가치는 무엇인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가 AI 시대에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ChatGPT가 인간과 유사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도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한 정보 처리에 불과할까? 이러한 질문들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 존재의 근본을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 AI가 효율성과 최적화를 추구한다면, 인간은 의미와 가치를 추구한다. 기계가 정답을 제공한다면, 인간은 올바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지점에서 철학적 사유의 가치가 빛을 발한다. 철학은 우리에게 더 깊이 묻고, 더 넓게 생각하며, 더 본질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알고리즘이 우리의 선택을 예측하고 추천하는 시대에, 자유의지와 자율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이 현실적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정말 자유롭게 선택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코드의 지배를 받고 있는 걸까? 스피노자의 필연성과 자유에 대한 사유, 칸트의 자율적 이성에 대한 통찰은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지혜를 제공한다. 기술이 제공하는 편리함 속에서도 인간의 주체성을 잃지 않으려면, 우리는 더욱 철학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소셜미디어로 전 세계가 연결된 시대이지만, 동시에 개인의 고립감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레비나스의 타자에 대한 철학, 아렌트의 공적 영역에 대한 사유는 디지털 시대의 관계성을 이해하는 새로운 렌즈를 제공한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윤리적 책임, 가상현실과 현실의 경계, 디지털 정체성과 실제 자아의 관계 등 새로운 철학적 문제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철학의 지혜와 현대적 통찰이 결합된 새로운 사유가 필요하다.

AI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철학은 우리에게 불확실성과 함께 사는 법을 가르쳐준다.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부터 포스트모던 철학의 다원주의까지, 철학사는 확실성에 대한 욕망과 불확실성의 수용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온 역사이기도 하다. 기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리는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더욱 깊이 성찰해야 한다. 인간의 존재 조건, 사랑과 우정의 의미, 죽음과 삶의 관계, 아름다움과 진리의 본질 같은 철학적 주제들은 AI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이다. 이 책을 통해 깨달은 가장 중요한 것은, 철학이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살아있는 대화라는 점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처럼, 철학은 혼자 하는 독백이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발전하는 공동의 탐구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각자가 철학자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기성의 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인간다운 가치를 추구하고, 복잡한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창조해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철학적 삶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이제 막 철학이라는 거대한 대륙의 해안가에 발을 디딘 탐험가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저자가 제공한 '철학의 지도'는 완벽한 안내서가 아니라 탐험을 위한 출발점이다. 이제 나만의 길을 찾아 더 깊은 사유의 숲으로 들어갈 차례인 것 같다. 철학의 지도를 손에 든 채, AI와 함께 살아갈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서, 불확실하지만 흥미진진한 여행을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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