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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의 행복 사전
김은아 지음, 하선정 그림 / 담다 / 2025년 5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장을 넘기며 마주한 첫 번째 깨달음은 단순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말들이 얼마나 무뎌져 있었는지, 그리고 그 속에 숨어 있던 온기를 얼마나 오랫동안 놓치고 살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나무'라는 글자를 보면 가로수나 산속의 식물을 떠 올리던 내가, 이제는 뿌리 깊은 생명력과 계절마다 다른 표정을 짓는 살아있는 존재를 상상하게 되었다. 아침 출근길에 스쳐 지나던 은행나무가 갑자기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도로변에 줄지어 선 나무가 아니라, 수십 년을 그 자리에서 도시의 변화를 지켜본 침묵의 증인처럼 느껴졌다. 가을이 되어 노란 잎을 떨어뜨릴 때마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희망의 메신저 같기도 했다. 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서, 일상 속 모든 것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설렘에 대한 앤의 정의를 읽으며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 "세상을 향한 끝없는 경이와 꿈을 품게 하는 감정"이라는 표현은 사전적 정의보다 훨씬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언제부터인가 설렘이라는 감정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나 호기심보다는 안정과 예측 가능한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왔다.하지만 앤의 단어들을 만나고 나서 작은 설렘들을 다시 발견하기 시작했다. 새로 개봉하는 영화에 대한 기대, 친구와의 만남에서 나눌 새로운 이야기들, 계절이 바뀌며 달라지는 거리 풍경에 대한 관찰. 이런 소소한 것들에서도 충분히 설렘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 았다. 설렘은 거창한 사건이나 특별한 순간에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에 따라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감정이었다.바람의 메시지바람에 대한 앤의 해석은 특히 인상 깊었다. 슬픔을 기억하지만 그것을 비워내는 바람의 모습에서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며 크고 작은 상처와 슬픔을 경험한다. 그런데 그 아픔을 그대로 품고만 있으면 무거워져서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워진다. 바람처럼 우리도 슬픔을 인정하되 그것에 매이지 않고 흘려보낼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이런 생각을 해보곤 한다. 이 바람이 내 안의 무거운 감정들 도 함께 데려가 주기를 바라면서. 실제로 바람을 맞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내일은 아직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은 새로운 날 " 이 완벽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실수를 하거나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면 자책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앞으로는 그런 날들도 더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아쉬웠던 점들을 떠올리곤 했다. 더 친절하게 대하지 못한 사람, 미처 하지 못한 일들, 놓쳐버린 기회들에 대한 후회로 잠이 오지 않는 밤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앤의 말을 떠올린다. 내일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가득한 선물 같은 날이라고. 오늘의 실수는 내일의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을 때 지금 말해도 될까?", "너무 참견하는 것은 아닐까?" 하며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안의 말처럼 계산하지 않는 즉각적인 친절이 더 큰 감동을 준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할 때, 무거운 짐을 든 사람을 도울 때, 힘들어 보이는 동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때의 그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친절은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앤의 행복은 거창한 성취나 큰 사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순간들에서 길어 올린 것이었다. 벚꽃잎이 휘날리는 창가에서의 독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산책, 아이들의 웃음소리 같은 평범해 보이는 것들에서 진정한 기쁨을 찾았다. 이런 앤의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의 행복 기준을 되놀아보게 되었다.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더 높은 지위에 올라야 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해야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정작 진짜 행복은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좋아 하는 책을 읽는 조용한 저녁 시간, 가족과 함께 나누는 소소한 대화,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의 변화하는 색깔 같은 것들에 있었다. 글쓰기라는 치유책의 오른쪽 페이지에 마련된 글쓰기 공간은 나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제공했다.앤의 행복 사전과 함께한 시간들이 쌓이면서 일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 변화했다. 같은 길을 걸어도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평범한 하루에서도 작은 기쁨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시간에도 하늘의 구름 모양을 관찰하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여유가 생겼다. 무엇보다 감사하는 마음이 늘어났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 - 따뜻한 집, 건강한 몸, 사랑하는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 새삼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오늘 하루 감사했던 세 가지를 떠올려보는 습관이 생겼고, 이런 작은 실천이 하루 전체의 기분을 밝게 만들어 주는 것을 경험했다. 앤의 76개 단어들은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지혜의 보물창고였다. 각각의 단어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철학을 이루고, 그 철학이 내 삶에 조용하지만 확실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이 작은 사전은 앞으로도 내 곁에서 일상의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