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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스님 나의 음식
정관 지음, 후남 셀만 글, 양혜영 옮김, 베로니크 회거 사진 / 윌북 / 2025년 4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음을 채우는 정관스님의 음식 이야기를 읽을 기회였다. 오래된 숲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백양사 천진암. 그곳에는 500년 된 탱자나무와 함께 자연과 음식, 그리고 수행이 어우러진 정관스님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에 출연하며 세계적으로 알려진 스님의 음식은 단순한 맛의 영역을 넘어 삶의 철학을 담고 있다. 음식을 통해 마음을 채우고, 우주와 만나는 이야기를 따라가 보았다.
천진암으로 향하는 길, 백양사 쌍계루를 지나 오래된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선원 앞에 기적처럼 꽃을 피우는 탱자나무를 만나게 된다. 그 향기에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는 순간,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마치 별도의 수행이 필요 없이, 그저 그 순간 자연과 나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듯하다. 정관스님은 자연을 통해 가르침을 얻는다고 했다. "자연은 말없이 가르침을 줍니다. 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이야기할 수도 있지요. 수행은 대단한 환경을 갖추지 않고도, 또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에게 자연은 스승이자 벗이며, 음식의 근원이다. "저는 셰프가 아니라 수행자입니다." 정관스님의 이 말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수행자란 '행동과 습관을 바꾸려고 힘쓰는 사람'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수행자라고 할 수 있다. 스님은 음식을 만들고 먹는 행위 역시 수행의 일부라고 가르친다. 내가 먹는 음식이 곧 내가 되기에, 음식을 먹는 일이 수행이 된다는 불교의 가르침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명상법이다. 걱정도 미움도 없이 정성스레 삶을 돌보고 즐겁게 먹는 일, 평화롭고 자유롭게 나를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 바로 스님이 말하는 음식을 통한 수행이다.
정관스님의 출가 이야기는 삶과 죽음의 순환을 보여준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출가를 결심한 스님을 찾아, 7년 만에 아버지가 절을 방문했다. 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스님은 표고버섯 조청 조림을 준비했다.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이 음식을 통해 스님은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였고, 아버지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는 줄 몰랐다"며 감동했다. 며칠 뒤 주무시듯 숨을 거둔 아버지의 이야기는 음식이 가진 치유와 화해의 힘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요리 일화를 넘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음식이 가진 특별한 의미를 전해준다. 음식을 통해 마음을 전하고, 관계를 회복하며, 때로는 떠나보내는 마지막 인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사찰음식과 발우공양에는 수행의 정신이 담겨 있다. 생명 존중, 탐욕 경계, 평등 추구, 우주 합일이 발우공양이 지향하는 본래의 가치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일상적인 행위가 우주를 만나는 신성한 의식이 된다. 스님은 "무작정 육식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먹을 것인가, 그것이 나와 세상에 좋은 일인가를 생각해보는 일이 중요합니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선택이 자신과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다.
사찰의 일상에는 특별한 음식 문화가 있다. 국수 요리인 '승소(스님의 미소)'를 먹는 날은 모두가 미소를 띠며 분주해진다. 커다란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안반과 홍두깨를 꺼내 국수 반죽을 밀고, 텃밭에서 신선한 재료를 가져오는 모습은 공동체의 화합을 보여준다. 또한 스님들은 한 달에 두 번 목욕재계하며 승복 빨래를 하고 머리를 깎는 날에는 두부구이를 함께 먹는다. 장작불에 번철을 올리고 들기름을 두른 후 두부를 지지면, 그 고소한 향이 사찰에 퍼진다. 산초장아찌를 올려 먹는 두부구이는 사찰의 별미로, 단백질을 보충하는 지혜로운 전통이다. 정관스님은 스스로를 '장아찌 스님, 짠지 스님'이라 부른다. 제철에 나는 식재료로 사시사철 장아찌를 담그는 스님의 손길에는 자연의 순환과 발효의 지혜가 담겨 있다. 스님이 담그는 3대 장아찌는 봄의 제피잎장아찌와 참죽장아찌, 가을의 산초장아찌다. 500년 된 탱자나무의 열매로 담근 청은 5년씩 발효시켜 요리에 사용한다. 매실과 복분자는 3년, 오미자는 2년 숙성시킨다는 스님의 이야기에서, 시간의 흐름을 존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무를 소금에 절여 1년간 숙성시킨 후 햇빛에 말려 만드는 무장아찌는 스님이 말하는 '밥도둑'이다. 이렇게 자연의 재료와 시간, 그리고 정성이 더해져 만들어지는 발효 식품은 사찰 음식의 깊은 맛을 완성한다.
스님의 요리에는 독특한 철학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고추장을 양념이 아닌 음식으로 보기 때문에 요리에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빔밥에도 고추장 대신 튀긴 미역을 절구에 빻아 만든 가루를 넣어 비빈다. 죽순 들깨 나물, 표고버섯 조청 조림, 우엉 고추장 조림 등 스님의 레시피는 단순하면서도 깊은 맛을 낸다. 떡국에 기름 없이 지진 두부를 올리거나, 무말랭이를 밑간한 다음 찹쌀풀과 된장 양념에 버무려 일주일 숙성시키는 방법, 귀한 능이버섯을 들기름에 볶아 만두소로 사용하는 아이디어 등은 자연 재료의 본연의 맛을 살리는 지혜를 보여준다. 정관스님의 음식에는 돌봄의 철학이 담겨 있다. 큰 사찰의 많은 스님들과 노스님, 방문객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일은 단순한 요리가 아닌 생명을 돌보는 행위다. 몸을 따뜻하게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음식을 고민하고, 때와 날에 맞는 자연 재료를 갈무리해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정성은 수행의 또 다른 형태다. "무엇이든 직접 임할 때 우리는 가장 많이 배웁니다. 또 하면 할수록 더 많이 깨우치게 되고요." 스님의 이 말처럼, 음식을 통한 돌봄은 배움과 깨달음의 과정이다. 몸소 체험하고 경험으로 터득해야 진정한 지혜가 된다.
정관스님의 음식 이야기는 삶의 방식과 철학을 담고 있다. 자연과의 조화, 시간의 흐름을 존중하는 발효의 지혜, 그리고 음식을 통한 돌봄의 정신은 현대인의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귀중한 가르침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성찰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정관스님이 말하는 '자기 인생의 수행자'로서 한 걸음 나아갈 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