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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되었을 뿐 설명할 수 없습니다 - 아시아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자 타고르 평전 ㅣ 아티스트웨이 1
하진희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5년 4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번에 아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으로 널리 알려진 타르고의 평전이 신간으로 출간되어 읽을 기회를 얻었다. 하진희님의 <표현되었을 뿐 설명할 수 없습니다>였다. 타르고에 대해서는 예전 대학 때, 인도 배낭 여행 때 그의 문학적 영감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었기는 했는데, 타르고의 인생전체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었다. 좋은 기회가 되어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인간의 언어는 때로 무력하다. 가장 심오한 고통, 가장 격렬한 기쁨, 그리고 가장 깊은 깨달음 앞에서 우리의 말은 한계에 부딪힌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이 한계를 알았고, 그래서 그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 그의 삶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표현의 여정이었다. 타고르의 삶에는 설명할 수 없는 고통들이 가득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 형수 카담바리의 갑작스러운 자살,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의 연이은 죽음. 이러한 상실의 고통 을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타고르는 이렇게 말했다. "평생 눈물로 역은 목걸이를 걸고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이 짧은 한 문장으로 그가 느꼈던 끝없는 아픔의 깊이를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까?그의 고통은 설명될 수 없었지만, 표현될 수는 있었다.
17년이라는 긴 침묵 끝에 발표한 소설 <부서진 둥지>는 그의 고해성사와도 같았다.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을 소설이라는 형태로 표현함으로써, 타고르는 자신의 고통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이것이 바로 설명하지 않고 표현하는 예술의 힘이다.고통을 설명하려 들면 그것은 분석되고, 범주화되고, 결국 축소된다. 그러나 고통을 표현할 때, 우리는 그 고통이 가진 복잡하고 모순적인 성격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타고르의 작품들은 이러한 표현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의 시와 소설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타고르의 낙서는 그의 창작 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인 것 같다. 낙서들은 타고르의 내면에서 스스로 표현되기를 원하는 무언가였다. 어떤 의미인지 설명할 수 없지만, 그 선들은 분명 살아있었고 고유한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타고르의 회화 작품보다 초기 낙서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설명할 수 없는 무의식적 표현의 힘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내면에는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타고르는 이러한 내면의 풍경을 낙서라는 형태로 드러냄으로써, 설명의 영역을 넘어선 표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그의 문학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직관을 표현하는 살아있는 언어였다. 타고르의 창작 과정은 또 다른 측면에서 '표현됨'과 '설명됨' 사이의 긴장을 보여준다. 그는 먼저 편지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했다. 이것은 가장 원초적인 표현의 형태였다. 그 후 수필 단계에서는 일종의 정련 과정을 거쳤고, 마지막으로 시의 단계에서는 본질만을 남기는 극도의 정제가 이루어졌다. 타고르의 창작 방식은 그의 작품만큼이나 독특했다. 끊임없이 공간을 바꾸며 글을 썼던 그의 습관은 어쩌면 하나의 관점, 하 나의 설명에 갇히지 않으려는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양한 공간에서 바라본 세상은 서로 다른 표현을 낳고, 이러한 다층적 표현들이 모여 설명할 수 없는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다. 타고르의 삶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상에서도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산티니케탄에 다섯 채의 작은 집을 짓고 옮겨 다니며 글을 썼던 것도,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을 표현하기 위한 시도였을 것이다. 예술가로서의 타고르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끊임없이 표현하며 살았다. 그에게 예술은 세상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신비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작품 뿐만 아니라 그의 삶 전체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는 끊임없는 상실과 고통 속에서도 그것을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 고통을 예술로 표현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을 치유했다. 설명은 우리를 고통으로부터 거리두게 만든다. 그러나 표현은 우리가 고통과 함께 춤추도록 한다. 타고르는 자신의 고통을 설명하려 했다면 아마도 그것에 압도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고통을 표현함으로써 그것을 넘어설 수 있었다. 그의 예술은 고통의 설명이 아니라, 고통 너머의 표현이었다.
타고르는 인도의 지혜를 세계에 알리고, 세계의 젊은이들이 만나는 학교를 세우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다. 그는 설명 할 수 없는 인도의 영혼을 예술로 표현함으로써,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인류 보편의 감성에 호소하고자 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은 이러한 그의 노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그의 시집 《기탄잘리》가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 시들이 인도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인간 보편의 영혼에 대한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타고르는 자신의 고유한 경험과 문화를 표현함으로써 오히려 더 보편적인 인류의 진실에 다가갔다. 타고르가 카담바리의 죽음 후 17년 동안 그 이야기를 소설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은, 그 고통이 너무 깊어 언어로 표현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침묵의 기간은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표현될 수 있는 형태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 우리는 때로 침묵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타고르는 그 침묵마저도 하나의 표현으로 승화시켰다. 그의 작품에는 말해진 것만큼이나 말해지지 않은 것들의 힘이 느껴진다. 그것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경외와 존중의 표현이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동방의 등불)
현대 인도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1929년 일제의 식민지였던 조선을 위해 쓴 시다. 다시 한번 그의 인생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