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지음, 장하나 옮김 / 성림원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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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서관을 수없이 오가며 마주쳤던 책 한 권. 언젠가부터 표지의 고양이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어딘가 건방지고 어딘가 유쾌한 그 표정. 옷을 입고 두 앞발을 단정히 모은 채 세상을 내려다보는 고양이의 태도는, 왠지 모르게 읽어야만 할 책이라는 예감을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펼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첫 문장을 읽고 나는 알 수 있었다. 수많은 번역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 책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1905년, 일본 근대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가 발표한 작품이다. 12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이 소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사랑받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너무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재미 속에 인간 사회에 대한 통찰이 빛나기 때문이다. 인간을 풍자하면서도 혐오하지 않고, 조롱하면서도 연민을 놓치지 않는 이 고양이의 시선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의미가 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이 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자신을 '이름 없는 고양이'라고 소개하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존재의 시선을 따라간다. 하지만 이 고양이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인간 사회를 관찰하고, 해석하고, 때로는 조롱하며, 누구보다 냉철하고도 재치 있는 언어로 인간의 허위와 위선을 파헤친다. 이 고양이는 마치 어느 문턱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철학자처럼 보인다. 그는 교사인 구샤미(‘괴상한 선생’이라는 뜻의 별명) 집에 기거하며, 손님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사람들의 허풍스러운 태도와 위선적인 사회적 가면을 해부하듯 지켜본다. 고양이는 구샤미와 그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당시 일본 지식인 사회의 혼란, 근대화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초상, 그리고 가정과 사회의 온갖 위선을 고양이 특유의 무심하고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드러낸다.

줄거리는 사실상 단순하다. 큰 사건이 터지거나 극적인 전개가 있는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 ‘일상의 관찰’이야말로 이 소설의 진짜 힘이다. 고양이는 일상 속 인간의 작은 말과 행동, 눈빛과 분위기, 겉과 속의 간극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것을 때로는 냉소적으로, 때로는 유쾌하게 말해준다. 마치 우리가 거울 앞에 서서, 늘 외면해왔던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순간처럼 말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가장 많이 웃었던 부분은, 구샤미 선생과 그의 친구들이 모여 벌이는 대화 장면들이다. 겉으로는 점잖고 진지한 척하지만, 알고 보면 허세로 가득 찬 말들. 서로를 평가하고 비교하며 자신이 더 배운 사람임을 과시하려는 모습은, 웃기면서도 어딘가 서글펐다. 고양이는 이들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본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 무식한 인간들은 서로를 잘났다고 떠들어대고 있다. 하지만 그 실상은 배고픈 내가 밥을 달라고 울 때, 그 한 마디에 짜증부터 내는 자들이다.”

​이 구절에서 나는 전율을 느꼈다. 고양이는 그저 배고픈 존재일 뿐인데, 인간들은 지식과 예절이라는 허울 속에서 진짜 삶을 외면한다. 인간의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밥 한 그릇의 요구에 성의도 없이 반응하는 인간이 과연 문명인인가? 고양이의 이 냉소적인 언급은,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무엇으로 인간인가? 또한, 소설 후반부에는 인간의 욕망과 경쟁이 점점 커지고, 고양이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고양이는 여전히 침착하게 말한다. 인간은 늘 복잡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결국 모두 같은 구멍 속에서 허우적대는 존재라고. 이 고요한 자각은 웃음 뒤에 오는 묘한 감정을 남긴다. 어쩌면 우리도 이 고양이처럼, 세상을 조금 멀리서 바라볼 수 있다면, 그토록 많은 아픔과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책에서 고양이는 인간 세계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의 무리’로 묘사한다. 그들의 말은 명확한 듯 모호하고, 행동은 도덕적인 듯 이기적이다. 고양이의 눈에 비친 인간 사회는 겉은 점잖고 문명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질투와 허세, 이기심과 가식으로 가득한 혼돈의 공간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 지위나 배경은 다르지만, 결국 모두 공통된 특성을 드러낸다. 겉으로는 예절과 지식을 중요시하는 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서로를 깎아내리고 자신을 부풀리는 데 몰두한다. 구샤미 선생의 친구들인 미즈나와, 칸게쓰, 메이테이 같은 인물들이 벌이는 대화는, 고양이의 눈에 "허공에 날리는 먼지와도 같은 무의미한 공방전"으로 보인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내 삶 속의 일상도 비슷하지 않았는가를 돌아보게 되었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회의에서, SNS에서조차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말들을 오직 ‘나를 포장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남을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나를 돋보이게 하거나 우월하게 보이기 위한 말들. 그 말들이 오히려 우리를 고립시키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 고양이의 시선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다.

책은 고양이의 눈을 통해 인간을 바라보는 역설적 시선을 통해, 우리가 미처 자각하지 못한 인간의 본성과 허상을 드러낸다. 인간들은 자신을 중심에 두고 세상을 설명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인간들을 향해 고양이는 말없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때로는 냉소적으로, 때로는 쓸쓸한 눈빛으로. 나는 이 소설을 통해 배운다. 진정한 교양이란 무엇인지, 지성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는 무엇인지. 고양이의 시선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자기 삶에 대한 성찰 없이 그저 트렌드만 좇는 우리의 모습은, 어쩌면 구샤미 선생보다 더 덧없을지도 모른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더 외롭고 혼란스러워진다. 그러나 소세키는 그 속에서, 아주 작지만 확실한 메시지를 전한다. 고양이처럼 멈춰 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허세와 허영을 걷어내고, 진정으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라고.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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