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괴로우면서도 기쁘다. 그녀가 병원에서 불미스러운 행동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못 견디게 괴로웠다. 이렇게까지 괴로우리라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혐오와 증오를 품은 채그녀와 이야기하다가 문득 나 자신에 대해, 그리고 그녀를 증오하게 된 원인에 대해 성찰하게 되었고, 나도 똑같은 짓을 숱하게 저질렀으며 지금도 마음속으로 그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나 자신이 혐오스럽고 그녀가 안쓰러웠다. 그러자 마음이 무척편해졌다.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선해질까.
그리고 그는 오늘 날짜로 적었다.
나는 오늘 나타샤를 만나러 갔다가 독선적인 마음에 휩싸여 그녀앞에서 나쁜 모습을 보였고, 개운치 않은 기분만 남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일부터 새 삶이 시작된다. 안녕, 낡은 삶이여, 영원히 안녕. 여러 가지 인상이 쌓였지만 아직 하나로 묶을 수가 없다.
다음날 잠을 깨자 네흘류도프는 매형과 충돌했던 것을 가장 먼저 후*「마태복음」 7장 4절 "네 눈 속에는 들보가를 빼내주겠다‘ 하고 말할 수 - P150

조직적으것이다.
그는 교도소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했을 때 마슬렌니코프가 보인무관심, 교도소장의 냉담함, 병약한 죄수들을 짐마차에 태워주지도 않고 기차에서 산고로 괴로워하는 여자 죄수에게도 아무 관심 없던 호송대 장교의 잔혹함을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직무를 수행한다는이유만으로 가장 평범한 동정심조차 느끼지 못하는 몰인정한 인간들이 되어버렸다. 관직에 있는 그들은 자신의 감정에 인간애가 침투하는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저 돌 깔린 땅이 빗물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네흘도프는 다양한 색의 돌들로 포장된 비탈길에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고 여러 갈래의 작은 개울들이 되어 흘러내려가는 것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하기야 이렇게 땅을 깎아낸 경사면에는 돌을 깔 필요가있을지 모르나 곡물이나 풀, 덤불, 나무를 기를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린땅을 보는 건 서글픈 일이다. 인간도 이와 마찬가지다. 네흘도프는생각했다. ‘어쩌면 도지사도 교도소장도 순경도 필요한 존재일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지녀야 하는 중요한 특성, 즉 사랑과 연민을 상실한 사람들을 보는 긴 끔찍한 일이다.‘
‘문제는‘ 네흘류도프는 생각했다. ‘저들이 법이 아닌 것을 법으로 인정하고, 신이 인간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잠시도 미룰 수 없는 영원불변의 법은 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나는 저들과 함께 있으면 못 견디게 외로워지는 것이다.‘ 네흘도프는 생각했다. ‘나는 왠지 저들이 두렵다. 실제로 저들은 무서운 사람들이다. 강도보다 - P190

결심했을 때 느꼈던 자기도취와 뒤섞인 의무감과도 전혀 달랐다. 이 감-정은 그가 교도소에서 처음 그녀를 면회했을 때, 그리고 그후 병원에서만나 혐오감을 억누르고 의사 조수와 얽힌 추문(이것이 오해였음은 나중에 알았지만)을 용서했을 때 새로운 힘으로 경험했던, 연민과 감동이 섞인 지극히 단순한 감정이었다. 이번에도 그때와 똑같았다.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의 감정은 일시적이었지만 지금은 항구적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건 무슨 일을 하건 그는 그녀뿐만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연민과 감동을 느꼈다.
그 감정은 네흘류도프의 마음속에서 지금껏 출구를 찾지 못했던 사랑의 흐름에 수문을 열어준 것처럼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로 흘러들어갔다.
그런 고양된 상태에서 네흘류도프는 이동중에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아래로는 마부와 호송병에서부터 위로는 교도소장과 도지사에 이르기까지 자기도 모르게 연민과 호의를 느꼈다.
마슬로바가 정치범 쪽으로 옮겨간 후로 네홀류도프는 여러 정치범과 알게 되었다. 처음은 그들 모두가 함께 아무런 구속 없이 큰방에 수•용되었던 예카테린부르크에서였고, 그후 이송 도중 마슬로바가 새로끼게 된 무리의 남자 다섯, 여자 넷과 가까워졌다. 그리고 유형수 정치•범들과 접촉하면서 그는 그들에 대한 시각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
러시아에서 혁명운동이 일어난 초기부터, 특히 3.1사건 이후로 네홀류도프는 혁명가들에게 반감과 경멸감을 품고 있었다. 반감은 무엇보다도 반정부 투쟁에서 그들이 사용한 수단의 잔혹성과 폐쇄성, 특히그들이 저지른 살인 행위의 잔혹성에서 비롯되었고 게다가 그들 모두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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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흔하고 널리 퍼진 미신 중 하나는, 인간에게 저마다 고유한 성질이 있다는 것이다. 즉 선한 사람, 악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 어리석은 사람, 활동적인 사람, 무기력한 사람 등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해 악할 때보다는 선할 때가 많다. 어리석을 때보다는 지혜로울 때가 많다, 무기력할 때보다는 활동적일 때가 많다.
또는 그 반대로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에 대해 선하다, 지혜롭다. 악하다. 어리석다 하며 하나로만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우리는 늘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나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사람은 강과 같기 때문이다. 어느 강이나 물은 물로서 똑같지만, 좁고 물살이 빠튼 곳이 있는가 하면 넓고 물살이 느린 곳도 있고, 맑은 곳이 있는가 하면 흐린 곳도 있고, 따뜻한 곳이 있는가 하면 찬 곳도 있기 마련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안에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성질의 맹아들을 지니고 있어서 이따금 하나가 돌출하면 평소와는전혀 다른, 종종 엉뚱한 사람이 되곤 한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유달리강하게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 네홀류도프도 이런 부류였다. 그의 경우에는 이 변화가 정신과 육체 양면에서 일어나곤 했다. 바로 지금 그러한 변화가 그에게 일어났다.
재판 이후 카튜샤와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참회의 기쁨과 부활의환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최근에 그녀와 만난 뒤로는 그 감정이 두려움으로, 심지어 혐오감으로 바뀌었다. 그는 절대 그녀를 버리지않겠다고, 그녀가 원하면 결혼도 불사한다는 마음을 바꾸지 않겠다고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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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이미 현재 상황의 거부이자, 현재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부는 의식이 몸/마음과의 한정적인 동일시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통의 핵심입니다.
만약 우리의 신조가 "모든 것은 의식이므로,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만큼 좋고, 따라서 나는 내 고통을 바꿀 수가 없고 바꿀 필요도 없어라면, 애초부터 그 태도를 현재 상황에 적용하여 고통을 있는 그대로완전히 맞이하는 것은 어떤가요? 현재 상황에 대한 우리의 거부를 받아들이는 대신, 그 현재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가요? 거기서 고통은 바로 멎을 것입니다.
이른바 순간의 거부를 받아들이는 수용은 의식 속의 모든 것을 참되고 공정하고 자비롭게 맞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해로 위장한두려움이자 유사 아드바이타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그것은 에고, 즉 자아 그 자체의 활동이며, 자신의 고립과 불행을 영속시킵니다.
자아는 단지 지금 이 단어를 보고 이해하는 개인적이지 않은 의식이단일한 몸과 마음과 한정적으로 섞인 혼합체일 뿐입니다.
그것은 의식의 활동이거나,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개인적이지 않은 의식이 이따금 취하는 모습입니다.
따라서 귀걸이 속에 금이 있듯, 의식 속에 있는 평온과 행복은 개별적인 개체로 추정되는 자아 속에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자아가 평온과 행복 그 자체의 맛이며, 그 맛은 평온과행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념과 느낌과 혼합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 P96

의식을 대상으로 경험하려 하는 욕망은 의식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념에서 비롯됩니다. 몸 수준의 깊은 결핍감, 즉 "나는 무언가를원한다. 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라는 느낌은 이 신념을 강화하고 구현합니다.
원하던 대상을 얻고 결핍감이 해소될 때마다 의식은 힐끗 자신을 보게 되며, 이 경험은 행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찰나의 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원한 순간입니다.
그런데 행복을 일으키는 것은 그 얻은 대상이 아닙니다. 대상을 얻으며 외관상 일어난 결핍감의 녹아내림이 이미 존재하던 행복을 드러낸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의식으로 알면서 머무르는 것을 실제로 방해하는 것,
즉 의식을 대상으로 경험하려 하는 욕망을 내려놓으려면, 이는 그저 의식은 대상이 아니라는 이해 그 이상을 필요로 합니다.
이는 결핍감, 즉 우리를 행복하게 하려면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느낌, 그러니까 몸 수준의 느낌과 충동 및 우리가 사유를 통해 어떻게 그 느낌과 충동에서 벗어날 것인지에 대한 깊은 민감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결핍감을 해소하려고 대상을 얻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결핍감 그 자체에 직접 가서 결핍감을 있는 그대로 마주합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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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를 하자......‘ 그는 자신의 재능에 대해 느꼈던 의구심을 떠올렸다.
뭐 상관없다. 자유롭게 숨쉴 수만 있다면, 처음에는 콘스탄티노플로,
그리고 로마로 가자, 조금이라도 빨리 배심원 직무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 문제는 변호사와 처리하자.‘
그때 갑자기 사시에 까만 눈동자의 여자 죄수가 그의 머릿속에 더없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피고들의 최후진술 때 울음을 터뜨리던 그녀의모습! 그는 재빨리 그녀를 머릿속에서 지우면서 다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고 또 한 개비에 불을 붙여 물고는 방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와 함께했던 순간들이 차례로 뇌리에 되살아났다.
그와 그녀의 마지막 만남, 그때 그를 지배했던 동물적 욕망, 그 욕망이충족된 뒤 찾아왔던 환멸이 떠올랐다. 하늘색 리본이 달린 흰옷이, 새벽 예배가 떠올랐다. ‘정말 그녀를 사랑했다. 그날 밤 나는 진정으로 아름답고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했다. 고모들 집에서 지내며 논문을 쓰던그때도 이미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때의 자신을 떠올려보았다.
그 생기로움과 젊음, 삶의 충만함이 거세게 밀려와 그는 견딜 수 없이슬퍼졌다.
그때의 그와 지금의 그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그날 교회에 있었던 카튜샤와 오늘 아침 그들이 재판했던 상인의 술시중을 했던 매춘부 사이의 차이만큼 컸다. 그때 그는 활발하고 자유로운 인간,
앞날에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진 인간이었지만, 지금 그는 어리석고 공허하고 목적도 없는 하찮은 삶의 그물에, 빠져나갈 출구 하나 보이지않는 그물에 사방으로 갇힌 인간이었고, 굳이 빠져나갈 마음도 없었다.
그는 과거에 자신이 솔직함을 자랑으로 여겼던 것을, 언제나 진실만 말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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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은 자신이 초래한 한정된 동일성이라는 경계 내에 포함되지 않은모든 것을 자신 바깥으로 투사합니다. 이제 세상은 ‘바깥‘과 ‘다른 이‘
로 나타납니다. 세상은 ‘파편으로서의 의식‘이 아닌 모든 것이 됩니다.
그리고 세상은 이제 의식과 분리되어 의식 바깥에 존재하는 것처럼나타납니다. 세상은 의식이 자신을 한정적인 파편으로 보는 새로운 관점을 완벽히 확충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은 ‘파편으로서의 의식‘을 담아내는 광활하며 잠재적으로 위협적인 그릇이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로 세상은 의식 속의 외관이자 의식의 표현이기에, 세상은 의식이 생각에 대해 품은 생각을 아주 정확하게 반영합니다의식이 자신을 파편이라고, 한정적이라고. 얽매여 있다고, 시공간 속에 나타난다고 믿는다면, 세상은 그 파편에 대응하는 것으로 나타날것입니다.
의식은 자신의 타고난 권리, 즉 자신의 영원하며 만연한 지위를 스스로 부정하면서 이와 동일한 지위를 외관의 세상에 부여합니다. 의식은자신의 실재를 외관의 세상에 부여하고, 그 대가로 그 세상에게 있는덧없는 연약함을 자신을 위해 취합니다.
의식은 모든 경험의 기반이자 본성인 자신의 실재를 포기하고, 대신그것을 자신의 창조물인 외관의 세상에 투사합니다.
의식은 외관의 세상과 자신의 본성을 교환합니다. 의식은 그렇게 할수밖에 없지요.
사실, 의식은 자신을 경험하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모든 경 - P75

알고 있음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모습입니다.
알고 있음은 모든 경험의 구성에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경험의 구성에 들어갑니다.
‘나‘는 모든 경험 속에 있는 경험하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이나 대상은 그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 경험 바깥에 존재한다는 증거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겪는 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경험 그 자체가 증거를판단하는 시금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경험하기를 대상과 분리한다면, 그 대상이 사유든, 감각이든,
지각이든 간에 그 대상은 사라집니다. 하지만 경험하기는 남아 있으며,
자신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요우리가 아는 한, 그것을 겪는 우리의 경험 바깥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가 경험하기이고, 세상이 세상을 겪는 우리의 경험하기로이루어져 있다면, ‘나‘와 세상, 즉 ‘나‘와 대상은 하나입니다.
개별적이며 독립적인 개체로서의 세상은 우리가 이를 직접적으로 볼때 무너져내립니다.
우리는 사실 하나인 사물을 ‘나‘와 ‘다른 이‘라는 두 개의 이름으로부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실 사물이 아닌 것을 일체라는 한 개의 이름으로 부릅니다. 그것은 이름이 없습니다.
마음의 한정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름 없는 것은 모든 사물을 모르는것입니다. 실재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모든 사물의 경험 속에 있는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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