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이미 현재 상황의 거부이자, 현재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부는 의식이 몸/마음과의 한정적인 동일시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통의 핵심입니다.
만약 우리의 신조가 "모든 것은 의식이므로,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만큼 좋고, 따라서 나는 내 고통을 바꿀 수가 없고 바꿀 필요도 없어라면, 애초부터 그 태도를 현재 상황에 적용하여 고통을 있는 그대로완전히 맞이하는 것은 어떤가요? 현재 상황에 대한 우리의 거부를 받아들이는 대신, 그 현재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가요? 거기서 고통은 바로 멎을 것입니다.
이른바 순간의 거부를 받아들이는 수용은 의식 속의 모든 것을 참되고 공정하고 자비롭게 맞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해로 위장한두려움이자 유사 아드바이타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그것은 에고, 즉 자아 그 자체의 활동이며, 자신의 고립과 불행을 영속시킵니다.
자아는 단지 지금 이 단어를 보고 이해하는 개인적이지 않은 의식이단일한 몸과 마음과 한정적으로 섞인 혼합체일 뿐입니다.
그것은 의식의 활동이거나,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개인적이지 않은 의식이 이따금 취하는 모습입니다.
따라서 귀걸이 속에 금이 있듯, 의식 속에 있는 평온과 행복은 개별적인 개체로 추정되는 자아 속에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자아가 평온과 행복 그 자체의 맛이며, 그 맛은 평온과행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념과 느낌과 혼합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 P96

의식을 대상으로 경험하려 하는 욕망은 의식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념에서 비롯됩니다. 몸 수준의 깊은 결핍감, 즉 "나는 무언가를원한다. 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라는 느낌은 이 신념을 강화하고 구현합니다.
원하던 대상을 얻고 결핍감이 해소될 때마다 의식은 힐끗 자신을 보게 되며, 이 경험은 행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찰나의 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원한 순간입니다.
그런데 행복을 일으키는 것은 그 얻은 대상이 아닙니다. 대상을 얻으며 외관상 일어난 결핍감의 녹아내림이 이미 존재하던 행복을 드러낸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의식으로 알면서 머무르는 것을 실제로 방해하는 것,
즉 의식을 대상으로 경험하려 하는 욕망을 내려놓으려면, 이는 그저 의식은 대상이 아니라는 이해 그 이상을 필요로 합니다.
이는 결핍감, 즉 우리를 행복하게 하려면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느낌, 그러니까 몸 수준의 느낌과 충동 및 우리가 사유를 통해 어떻게 그 느낌과 충동에서 벗어날 것인지에 대한 깊은 민감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결핍감을 해소하려고 대상을 얻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결핍감 그 자체에 직접 가서 결핍감을 있는 그대로 마주합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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