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 대목에서 아른하임은 위대한 비밀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것이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잊지 않으려는 차분한 태도로 신에게 겸손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그런 다음 말을 이어갈 것이다. "그런데 물리적폭력만큼 인간관계를 안정적으로 조정하는 수단이 돈 아니겠나이까?
더구나 돈은 폭력의 무분별한 사용을 막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곧 정신화된 폭력이자, 폭력의 유연하고 고도화되고 창조적인 특수 형식입니다. 사실 사업은 계략과 폭력, 갈취와 착취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인간 속에 완전히 내면화된, 인간 자유의 외피를 입은 문명의 산물이지요. 돈을 버는 힘들의 서열에 따라 이기심을 조직화한 제도로서 자본주의야말로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 만든 가장 위대하고 인간적인 체계입니다. 인간 행위에 그보다 엄밀한 기준은 없을것입니다!" 이어 아른하임은 신에게, 천년제국을 사업가의 원칙에 따라 설립하고 그 제국의 관리를 당연히 철학적 세계관까지 겸비한 대사업가에게 맡기라고 충고할 것이다. 왜냐하면 순수 종교적인 것은 속세에서 늘 많은 고생을 했고, 사업가의 지도력은 전쟁통에 겪는 실존적불안과 비교하면 여전히 득이 크기 때문이다.
아른하임은 신에게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사람은 이성과 도덕만큼이나 돈을 포기할 수 없다고 내면의 깊은 목소리가 분명히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다른 깊은 목소리가 똑같이 분명한 어조로, 사람은이성과 도덕과 합리화된 삶을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그에게 길 잃은 위성처럼 디오티마라는 태양 속으로 추락하고픈 욕구만 남을 때면, 그 현기증나는 순간에 이 목소리가 처음 목소리보다 더강렬하게 솟구쳤다.  - P277

는 사람은 저급한 특성과 열정에 주목해야 한다. 이기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만이 지속성이 있고, 어디서건 믿을 만하게 고려할 수 있기때문이다. 고결한 의도는 신뢰성이 떨어지고 모순적이고 바람처럼 일시적이다. 머지않아 제국이 공장처럼 다스려져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이 남자는 자기 밑에 우글거리는 제복들의 무리와 서캐만큼 작은 얼굴들을 우월감과 우울함이 섞인 웃음을 띠고 내려다보았다. 그는 다음 사실에 대해서는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즉 오늘 신이 당장 지상에 천년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실용적이고 경험 많은 사람이라면 그 사실을 절대 그냥은 믿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최후의 심판이 내려질 때 형 집행을 위한 기구들, 예를 들어 요새 같은 감옥과 경찰, 근위병, 군대, 반란죄 조항, 정부 부처, 그리고 그 밖에 필요한 다른것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지 않는 한 말이다. 거기다 인간 영혼의 예측할 수 없는 잠재력을 두 가지 근본 사실로 환원하는 데 필요한 장치도 필요하다. 즉, 믿음직한 미래의 천국 주민은 오직 나사를 조이고 협박하는 방법이나 욕망의 매수를 통해서만, 다시 말해 ‘강력한 수단‘으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파울 아른하임은 신 앞에 나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여, 무엇을 위해 그리 애쓰시나이까? 인간 삶에서 이기심만큼 믿을 만한 특성이 있나이까? 정치인, 군인, 왕들은 이기심 덕분에 당신의 세계를 계략과 힘으로 질서 있게 유지해올 수 있었습니다. 인류는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춰왔고요. 당신과 저는 이를 용인해야 합니다. 폭력적 힘을 포기하는 것은 곧 세계의 질서를 약하게 하는 것입니다. 말종 같은 인간에게도 위대한 존재로 거듭날 기회를 주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입니 - P2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도 모르고 눈앞에 어른거리는 젖꼭지를 향해 아우성치지.
사료 통으로 빨리 가려고, 밤이 되면 침대로 돌아가려고 허둥대는 거야.‘ 그는 바지의 단추를 잠그고 채찍질하듯 퍼붓는 빗줄기 속으로 들어갔다. "내 낡은 뼈다귀를 씻어다오!" 그가 비통하게 말했다. "내 늙은 거시기도 잘 씻어줘. 어차피 오래가지도 못할 테니." 그는 움직이지 않고 한참을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뒤로 젖힌 그대로 서 있었다. 그는 끈질기게 찾아오고 또찾아드는 욕망에서 간절히 해방되고 싶었다. 이제는 나이도들었으니 대체 후터키란 작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 답을 찾을 때도 되었다. 지금쯤 체념을 알게 된다면 그로서는 최상일것이다. 이 세상에 왔을 때 말없이 모든 것에 따랐듯이 그렇게무덤으로 갈 수 있다면 말이다. 그는 다시 돼지우리와 돼지들을 떠올렸고, 물기 없이 바짝 마른 입으로 차마 소리 내어 말하기 어려운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그것은 나날의 삶 속에서반복되며 우리를 안심시키는 명백함이라는 것이 (‘어떤 불가피한 황혼 무렵에) 실은 도살자의 칼에서 번쩍이는 섬광에 다름
‘아닌데도, 우리는 우리가 어떤 의심도 품지 않고 따라서 이해할 수도 없는 저 두려운 작별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구원의 손길, 도망칠 가능성 같은 건 없었다. 그는 부스스한 머리를 흔들어 두려운 생각을 떨쳐내려 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째서 어느 날 돌연히 땅에 얼굴을 처박고 어둠 속 냄새나는 늪에서 벌레들과 함 - P2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 자네가 신기하네." 페트리너가 말한다. "난 마을에 아무도없을 거 같은데, 집들은 텅 비고 기와는 떨어지거나 아니면 누가 훔쳐 갔을 테고, 기껏해야 굶주린 쥐들만 방앗간에 남았겠지." "천만에!" 이리미아시가 확신에 차서 부인한다. "그자들은 여전히 더러운 의자에 주저앉아 저녁마다 감자 요리나 먹으면서 세상이 왜 이 모양인지 의아해하고 있을걸. 의심에 가득 차 서로를 감시하고 조용한 방에서 큰 소리로 트림이나 하고. 그리고? 기다리는 거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끝도 없이기다리다가, 누군가 자기들을 속인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겠지. 돼지를 잡는데 혹시 뭐 주워 먹을 거라도 떨어질까 싶어바닥에 배를 댄 채 도사리고 앉아 기다리는 고양이처럼 말이야. 그자들은 옛날 성에서 시중을 들던 때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어. 주인은 벌써 머리에 총알을 박고 자살했는데, 저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시체 주위에서 우왕좌왕하는 거야...." "상상이 지나치네, 대장. 듣고 있자니 속이 안 좋아지잖아!" 페트리너는 꾸루륵대는 배에다 손을 갖다 댄다. 하지만한창 흥이 나는지 이리미아시는 그의 말을 무시한다. "주인 잃은 노예들인 주제에 명예와 자부심과 용기가 없으면 살 수가없다고들 하지. 그 믿음으로 저자들은 살아가는 거야. 둔한 마음 깊은 곳에선 저런 덕목들이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는 걸 감지하고 있겠지만 말이야. 왜냐하면 그들은 그저 저 말들의 그늘 속에서 살고 싶은 것뿐이니까." "제발 그만!" 페트리너는 - P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 없는 것처럼 조용하기만 하다. 아니다. 누군가가 하모니카를 불고 있다. 이리미아시는 납덩이처럼 무거운 구두에서진흙을 떼어내고 헛기침을 한 뒤,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갑자기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는데, 동쪽 하늘은 뒤늦게 제 소임을 떠올린 양 이제야 막 훤해지는 중이다. 어둑한 지평선이 불그스레하게 물든다. 그리고 이른 아침에 거지가 교회 계단을오르는 것처럼 가슴 아픈 모양으로 태양이 떠올라, 흡사 빛으로 세상에 그림자를 드리우겠다고 다짐하는 듯이, 간밤의 하나같이 차갑고 강고하던 어둠 속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속박돼 있던 나무와 땅과 하늘 그리고 짐승들과 인간들을 마침내 분리하여 풀어준다. 그러고는 패망하여 절망한 군대처럼아직도 도주 중인 밤과 밤의 끔찍한 요소들이 하늘의 경계 너머로, 서쪽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광경을 태양은 가만히 응시한다. - P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 땅을 세내서 하루 종일 따뜻한 대얏물에 발을 담그고 있겠미끄러져어..." 빗방울이 창유리 안쪽과 바깥쪽에서 아래로 미내렸다. 안쪽에서는 윗부분에 손가락 굵기로 난 틈에서부터흘러내린 빗방울이 점점 고여 창틀을 메우고는 창턱까지 ㅎ른 뒤 다시 방울방울 후터키의 무릎으로 떨어졌지만, 그는 먼곳을 떠도는 상념에 빠져 자기 옷이 젖는 것도 알지 못했다.
"아니면 초콜릿 공장에서 야간 경비로 일할 수도 있겠지... 여학생 기숙사의 경비도 할 수 있을 거야. 어쨌든 난 모든 걸 잊을 작정이니까. 매일 밤 대야에 담긴 따뜻한 물만 있으면 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개 같은 인생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구경만 하겠다고." 가만히 내리던 빗줄기가 들이붓듯 쏟아지기시작했다. 빗물은 원래도 숨 가쁜 땅 위에 마치 댐이라도 무너진 듯 넘쳐흘렀고, 가느다랗고 복잡한 물길을 내면서 더 낮은지대로 흘러갔다. 후터키는 창유리 너머의 풍경을 더는 볼 수없었음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벌레 먹은 창틀과 석고가 부스러진 곳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유리창에 갑자기 불분명한물체가 보이더니 점차 사람의 꼴을 갖춰갔다. 처음엔 그게 누구의 얼굴인지, 놀란 두 눈을 볼 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이윽고 그가 알아본 것은 자신의 초췌한 면상이었고, 순간 놀라고당황한 것은 비가 창유리 위의 얼굴을 지워내듯이 세월이 그에게도 똑같은 일을 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서였다. 그 모습엔 무언가 엄청나고 낯선 궁핍이 어려 있었다. 수치와 자부심 - P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