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과 존재의 현존이 티끌 한 점을 알면서 하나로 알려진다는 것,
이것이 그 티끌 한 점을 가장 경이로운 기적으로 만듭니다.
이러한 이유로 카슈미르 샤이비즘 Kashmir Shaivism 일파는 이러한 경혐의 탐사를 ‘경이, 놀라움, 환희‘의 요가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그저 열려 있고, 비어 있으며, 침묵하며, 알지 않고 경이로워하며 있을 뿐입니다.
물론 이러한 열려 있음 속에서는 현재 상황에 대한 적절한 반응인 표현이 생깁니다. 표현은 상황 그 자체에서 비롯되며, 그 결과 표현은 상황과 밀접하게 상호 작용합니다.
이러한 반응의 한 예로 실재의 본성에 대한 표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은 질문이나 상황에 대한 잠정적인 반응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사라지면 반응도 함께 사라집니다.
반응은 실재의 표현이자 실제를 가리키지만, 실재를 결코 표현하지않습니다.
반응은 알지 않기에서 생겨나, 잠시 질문과 함께 뒤엉켜 춤을 추다가결국 질문과 함께 합쳐지고, 질문을 그 원천인 고요함으로 되돌립니다.
사실, 진정한 반응은 고요함 그 자체입니다. 질문을 사라지게 하는것은 바로 이 고요함입니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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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욕망하기, 행동하기를 통해 충동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그것을 마주할 용기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것을 벗어나지 않을용기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결핍감이 온전히 존재하도록 둘 뿐입니다. 우리는 결핍감에 그 무엇도 덧붙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쉽습니다. 우리, 즉 의식은이미 모든 사물을 허용하는 것이자 맞이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단지 의식이 모든 것을 보살피게 둘 뿐입니다.
이러한 느낌을 명확히 본다면, 느낌이 사실은 생각하기, 욕망하기, 두려워하기를 일으킬 고유한 힘이 없는 중립적인 몸에서의 감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결핍감이나 분리간은 차치하더라도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이해 속에서 느낌을 몸에서의 감각으로 격하시키는것은 명확한 보기를 통해 애쓰지 않고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느낌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느낌에 대해 무언가를 하는 것을 멈춥니다. 우리는 느낌에 실재를 가리는 힘을부여하는 것을 멈춥니다. 우리는 느낌에 불행과 그에 수반하는 찾기를일으키는 힘을 부여하는 것을 멈춥니다.
우리가 몸에서의 감각에 느낌을 덧씌우는 것을 멈추는 순간, 느낌은더 이상 무지와 혼란의 거처가 되지 않습니다. 대신 느낌은 현존의 비어 있음에서 춤추는 창조적인 에너지를 아름답게 보이며, 매 순간 그충만함이 드러납니다.
물론 욕망은 계속해서 일어나지만, 그 목적은 이제 느낌을 피하는 것도, 행복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욕망의 목적은 행복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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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괴로우면서도 기쁘다. 그녀가 병원에서 불미스러운 행동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못 견디게 괴로웠다. 이렇게까지 괴로우리라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혐오와 증오를 품은 채그녀와 이야기하다가 문득 나 자신에 대해, 그리고 그녀를 증오하게 된 원인에 대해 성찰하게 되었고, 나도 똑같은 짓을 숱하게 저질렀으며 지금도 마음속으로 그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나 자신이 혐오스럽고 그녀가 안쓰러웠다. 그러자 마음이 무척편해졌다.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선해질까.
그리고 그는 오늘 날짜로 적었다.
나는 오늘 나타샤를 만나러 갔다가 독선적인 마음에 휩싸여 그녀앞에서 나쁜 모습을 보였고, 개운치 않은 기분만 남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일부터 새 삶이 시작된다. 안녕, 낡은 삶이여, 영원히 안녕. 여러 가지 인상이 쌓였지만 아직 하나로 묶을 수가 없다.
다음날 잠을 깨자 네흘류도프는 매형과 충돌했던 것을 가장 먼저 후*「마태복음」 7장 4절 "네 눈 속에는 들보가를 빼내주겠다‘ 하고 말할 수 - P150

조직적으것이다.
그는 교도소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했을 때 마슬렌니코프가 보인무관심, 교도소장의 냉담함, 병약한 죄수들을 짐마차에 태워주지도 않고 기차에서 산고로 괴로워하는 여자 죄수에게도 아무 관심 없던 호송대 장교의 잔혹함을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직무를 수행한다는이유만으로 가장 평범한 동정심조차 느끼지 못하는 몰인정한 인간들이 되어버렸다. 관직에 있는 그들은 자신의 감정에 인간애가 침투하는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저 돌 깔린 땅이 빗물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네흘도프는 다양한 색의 돌들로 포장된 비탈길에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고 여러 갈래의 작은 개울들이 되어 흘러내려가는 것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하기야 이렇게 땅을 깎아낸 경사면에는 돌을 깔 필요가있을지 모르나 곡물이나 풀, 덤불, 나무를 기를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린땅을 보는 건 서글픈 일이다. 인간도 이와 마찬가지다. 네흘도프는생각했다. ‘어쩌면 도지사도 교도소장도 순경도 필요한 존재일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지녀야 하는 중요한 특성, 즉 사랑과 연민을 상실한 사람들을 보는 긴 끔찍한 일이다.‘
‘문제는‘ 네흘류도프는 생각했다. ‘저들이 법이 아닌 것을 법으로 인정하고, 신이 인간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잠시도 미룰 수 없는 영원불변의 법은 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나는 저들과 함께 있으면 못 견디게 외로워지는 것이다.‘ 네흘도프는 생각했다. ‘나는 왠지 저들이 두렵다. 실제로 저들은 무서운 사람들이다. 강도보다 - P190

결심했을 때 느꼈던 자기도취와 뒤섞인 의무감과도 전혀 달랐다. 이 감-정은 그가 교도소에서 처음 그녀를 면회했을 때, 그리고 그후 병원에서만나 혐오감을 억누르고 의사 조수와 얽힌 추문(이것이 오해였음은 나중에 알았지만)을 용서했을 때 새로운 힘으로 경험했던, 연민과 감동이 섞인 지극히 단순한 감정이었다. 이번에도 그때와 똑같았다.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의 감정은 일시적이었지만 지금은 항구적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건 무슨 일을 하건 그는 그녀뿐만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연민과 감동을 느꼈다.
그 감정은 네흘류도프의 마음속에서 지금껏 출구를 찾지 못했던 사랑의 흐름에 수문을 열어준 것처럼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로 흘러들어갔다.
그런 고양된 상태에서 네흘류도프는 이동중에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아래로는 마부와 호송병에서부터 위로는 교도소장과 도지사에 이르기까지 자기도 모르게 연민과 호의를 느꼈다.
마슬로바가 정치범 쪽으로 옮겨간 후로 네홀류도프는 여러 정치범과 알게 되었다. 처음은 그들 모두가 함께 아무런 구속 없이 큰방에 수•용되었던 예카테린부르크에서였고, 그후 이송 도중 마슬로바가 새로끼게 된 무리의 남자 다섯, 여자 넷과 가까워졌다. 그리고 유형수 정치•범들과 접촉하면서 그는 그들에 대한 시각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
러시아에서 혁명운동이 일어난 초기부터, 특히 3.1사건 이후로 네홀류도프는 혁명가들에게 반감과 경멸감을 품고 있었다. 반감은 무엇보다도 반정부 투쟁에서 그들이 사용한 수단의 잔혹성과 폐쇄성, 특히그들이 저지른 살인 행위의 잔혹성에서 비롯되었고 게다가 그들 모두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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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흔하고 널리 퍼진 미신 중 하나는, 인간에게 저마다 고유한 성질이 있다는 것이다. 즉 선한 사람, 악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 어리석은 사람, 활동적인 사람, 무기력한 사람 등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해 악할 때보다는 선할 때가 많다. 어리석을 때보다는 지혜로울 때가 많다, 무기력할 때보다는 활동적일 때가 많다.
또는 그 반대로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에 대해 선하다, 지혜롭다. 악하다. 어리석다 하며 하나로만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우리는 늘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나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사람은 강과 같기 때문이다. 어느 강이나 물은 물로서 똑같지만, 좁고 물살이 빠튼 곳이 있는가 하면 넓고 물살이 느린 곳도 있고, 맑은 곳이 있는가 하면 흐린 곳도 있고, 따뜻한 곳이 있는가 하면 찬 곳도 있기 마련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안에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성질의 맹아들을 지니고 있어서 이따금 하나가 돌출하면 평소와는전혀 다른, 종종 엉뚱한 사람이 되곤 한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유달리강하게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 네홀류도프도 이런 부류였다. 그의 경우에는 이 변화가 정신과 육체 양면에서 일어나곤 했다. 바로 지금 그러한 변화가 그에게 일어났다.
재판 이후 카튜샤와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참회의 기쁨과 부활의환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최근에 그녀와 만난 뒤로는 그 감정이 두려움으로, 심지어 혐오감으로 바뀌었다. 그는 절대 그녀를 버리지않겠다고, 그녀가 원하면 결혼도 불사한다는 마음을 바꾸지 않겠다고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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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이미 현재 상황의 거부이자, 현재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부는 의식이 몸/마음과의 한정적인 동일시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통의 핵심입니다.
만약 우리의 신조가 "모든 것은 의식이므로,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만큼 좋고, 따라서 나는 내 고통을 바꿀 수가 없고 바꿀 필요도 없어라면, 애초부터 그 태도를 현재 상황에 적용하여 고통을 있는 그대로완전히 맞이하는 것은 어떤가요? 현재 상황에 대한 우리의 거부를 받아들이는 대신, 그 현재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가요? 거기서 고통은 바로 멎을 것입니다.
이른바 순간의 거부를 받아들이는 수용은 의식 속의 모든 것을 참되고 공정하고 자비롭게 맞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해로 위장한두려움이자 유사 아드바이타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그것은 에고, 즉 자아 그 자체의 활동이며, 자신의 고립과 불행을 영속시킵니다.
자아는 단지 지금 이 단어를 보고 이해하는 개인적이지 않은 의식이단일한 몸과 마음과 한정적으로 섞인 혼합체일 뿐입니다.
그것은 의식의 활동이거나,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개인적이지 않은 의식이 이따금 취하는 모습입니다.
따라서 귀걸이 속에 금이 있듯, 의식 속에 있는 평온과 행복은 개별적인 개체로 추정되는 자아 속에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자아가 평온과 행복 그 자체의 맛이며, 그 맛은 평온과행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념과 느낌과 혼합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 P96

의식을 대상으로 경험하려 하는 욕망은 의식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념에서 비롯됩니다. 몸 수준의 깊은 결핍감, 즉 "나는 무언가를원한다. 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라는 느낌은 이 신념을 강화하고 구현합니다.
원하던 대상을 얻고 결핍감이 해소될 때마다 의식은 힐끗 자신을 보게 되며, 이 경험은 행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찰나의 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원한 순간입니다.
그런데 행복을 일으키는 것은 그 얻은 대상이 아닙니다. 대상을 얻으며 외관상 일어난 결핍감의 녹아내림이 이미 존재하던 행복을 드러낸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의식으로 알면서 머무르는 것을 실제로 방해하는 것,
즉 의식을 대상으로 경험하려 하는 욕망을 내려놓으려면, 이는 그저 의식은 대상이 아니라는 이해 그 이상을 필요로 합니다.
이는 결핍감, 즉 우리를 행복하게 하려면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느낌, 그러니까 몸 수준의 느낌과 충동 및 우리가 사유를 통해 어떻게 그 느낌과 충동에서 벗어날 것인지에 대한 깊은 민감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결핍감을 해소하려고 대상을 얻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결핍감 그 자체에 직접 가서 결핍감을 있는 그대로 마주합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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