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곤충 도감 신기한 도감
신카이 타카시 지음, 김창원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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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올 봄, 초등학교에 입학한 상혁이의 하교 시간에 마중나가 있으려니 녀석이 온다.

봄볕이 제법 따가워지고 여름으로 들어갈 무렵의 날씨라서 입고 있는 동복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데 어딘지 불편해 보이는 녀석의 자세는 비단 동복이나 책가방 때문은 아니었다.

빨갛게 두 볼을 상기시키고 반쯤 벌어진 달달한 입술과 감실감실 눈웃음은 녀석이 흥분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반가움에 내미는 내 손을 보고 머뭇거리는 녀석의 손을 보니 무언가를 손에 꼭 쥐고 있다.

"엄마,내가 학교에서 불쌍한 곤충을 봤어."

그으래?? 뭔데?

쉽게 보여주려하지 않는 녀석

"엄마,근데 이 곤충이 엄마도 없고 친구도 없고 혼자 있었거든? 그러니까 내가 돌봐 줘야 해."

뭔데 그래? 한 번 보여 줘 봐봐.

"엄마, 나 집에서 키울 수 있게 해 줄거지요?"

한 번 보고 나서.

학교에서 오는 시간 내내 버스 안에서도 그 곤충을 놓칠까 봐 불안스레 왔을 녀석을 생각하며 웬만하면 나도 너그럽게 받아주리라고 마음을 다잡고 녀석의 손을 폈다.

에.그.머.니.나~~!

그 손에 고이 모셔온 것은 파리의 유충으로 보이는 애벌레,아마도 십중팔구 구더기라는 놈이렸다.

순간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빨리 버리라고 아이의 손을 막 털었다.

그리고 확실히 털려 나갔는지 혹시 우리의 옷에 달라 붙어 있지는 않는지 재삼 확인하느라 상혁이의 얼빠진 얼굴은 보지도 못했다.

아이구~녀석아.

저건 곤충이 아니야.

"그럼 뭐에요? 동물이에요? 식물이에요?"

응? 그게 ,그게 ,곤충은 곤충이지.^^;

 

신카이 다카시의 '신기한 곤충도감'에서는 다양한 곤충들이 나온다.

정말 너무 또렷하고 선명하게 나온다.

곤충다운 곤충을 보려면 날을 잡고 시간을 내어 가야만 볼 수 있는 요즘의 아이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이면 그 목마름이 해갈될까?

완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이 한 권의 책이 아이들의 눈을 틔워 줄 것이다.

글보다는 화려한 사진이 우선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페이지 아랫쪽엔 친절한 주석이 길지도 않게 딱 1 줄로 요약 되어 있다.

신기한 볼거리에 눈과 마음을 모두 빼앗겨 버린 울 아들은

봄날 자신의 손에서 소중한 곤충을 무지막지하게 털어내던 이 엄마에게 섭섭했던 마음을

이제는 모두 잊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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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이야기 - 진귀한 그림, 사진과 함께 보는 상징의 재발견
잭 트레시더 지음, 김병화 옮김 / 도솔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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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서 글자와 기호의 차이는 무엇일까?

태고이래로 의사 소통을 위해 사용되었던 수많은 그림과 기호들은 문명이 발달한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그 숨은 뜻으로 인해 그것을 사용한사람들보다도 사용하지 않은 사람들의 상상력으로 그 의미가 한층 증폭되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은 글자를 배우면서 모든 것을 잊어 버려 상징의 열린 문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라는 헤세의 말이 아니더라도 문자가 등장하면서 감성적이고 심리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상징의 역할은 이미 수명을 다한 것일까?

 

유명 미술사가인 이 책의 저자는 세계도처에 널려있던 상징의 요소와 비유들을 머리카락에서부터 식물에 이르기까지 총 망라해서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상징이 지니는 상징성은 역시 그림이지 않았을까?

저자의 욕심이 과해서인지 아니면 편집의 실수인지 여백이 없이 빽빽이 자리한  문자들과 단편적 지식들은 단순히 문자의 나열에 지나지 않고 읽는이에게는 그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되고 있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꼭 읽어봐야 할 내용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읽게된다면, 모르겠다.

한층 그 윤곽이 뚜렸하게 다가올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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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톡톡 다섯 가지 감각 이야기 세트 - 전5권
파티마 델라 하라 지음, 전기순 옮김 / 풀빛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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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지 감각이야기

이번에 받은 책은 네겐 너무 어린 책이랄까?

그래서 선뜻 책에 손이 안 갔었는데 막상 책장을 넘겨보니 이층집에 살고 있는 다섯 주인공들을 그린 삽화와 글이 아주 재미있고 신선했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우리 아들의 국어 ‘읽기’ 책을 보면 눈, 손, 발, 코와 입이 각자 자기 자랑을 하는 대목이 나온다.

자기가 가장 훌륭하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자만하는 그들의 다툼은 우리 아이들이 이제껏 익숙하게 보아 왔던 구성에 등장인물들만 다를 뿐 그 내용에 있어서는 매한가지이다.

우리가 익히 보아 왔던 그런 동화에는 다섯 손가락이 서로 자신이 최고라며 자랑하는 이야기도 있었고,

아주 작은 나사못을 빗대어 여러 명의 친구 중 가장 작고 볼품없는 친구를 업신여기는 시각을 보여주는 이야기도 있었다.

시작은 늘 그렇게 다투고 헐뜯다가 나중엔 서로의 존재감을 인정해 주고 누구 하나라도 빠지면 전체가 있을 수 없다는 교훈으로 끝나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세상이 바뀌어 창의성과 개성을 더욱 중요시하는 지금까지도 아이들이 읽는 이야기가 꼭 교훈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서 교훈 이전에 이미 나 아닌 다른 친구와의 비교를 통해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키도 작고 조용한 친구는 무시해도 된다고 하는 것들을 은연 중 알려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에서 천편일률적인 계몽이야기가 교과서에 실린다는 게 좀 못마땅하던 터였다.


‘다섯 가지 감각 이야기’는 한 집에 모여 살고 있는

척척 손 아저씨, 살살 혀 아저씨, 뭉툭 코 아저씨, 초롱 눈 아가씨, 그리고 밝은 귀 아저씨의 이야기인데 여기엔 내가 흔히 접할 수 있었던 잘난 척이나, 자기 자랑, 그리고 겉모습만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깎아내리는 갈등 구조가 전혀 들어 있지 않다.

오히려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비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같은 집 식구들이 있고

나와의 다름-차이를 인정 해 주고 타인을 구태여 나의 구역으로 끌어 들이려, 내 식으로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왜 눈 아가씨와 귀 아저씨는 하나씩만 나올까? 하는 의문이 생길 무렵 그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또 펼쳐진다.

그러고 보면 두 눈과 두 귀가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는 나의 고정관념을 멋지게 한 방 먹인 것이다.

세상엔 눈이 하나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귀 역시 하나밖에 없거나 아니면 감각기관이 제 구실을 못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내가 두 개씩 갖고 있는 감각기관을 하나씩 가진 그들은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고 단지 나와는 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린 유아들에게는 감각에 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책이고, 좀 더 자란 우리 아들처럼 초등학생들에게는 편협한 사고방식을 갖지 않게 인도할 수 있는 좋은 내용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 같은 어른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라 숙연해 지기도 한다.


8살 아들은 척척 손 아저씨가 모험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만약 발 아저씨도 함께 살았더라면 발 아저씨는 혹시 멋진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나이가 너무 들어버린 어른인 나는 손이 어떻게 따로 떨어져 나가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할까 봐서 그 대답을 신중하게 고르고 있을 즈음 아이는 벌써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자기의 이야기를 꾸려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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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
최인호 지음, 김점선 그림 / 열림원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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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과 세상은 어느 것이 옳으냐

봄볕이 이르는 것마다 꽃피지 않는 곳이 없구나

                                               <경허>


 

꽃밭은 다채로운 우리네 인생살이의 축소판이다.

아빠하고 함께 만든 자그마한 꽃밭은 사시사철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새순이 돋고, 줄기를 뻗어, 잎이 나오고, 꽃을 피우고 씨앗으로 다음 생을 약속하는 생동감 가득한 아주 시끄러운 공간이다.

그 작은 공간속에서 다투어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그 생명이 사그라질 무렵엔 후손을 퍼뜨리려 안간힘을 쓰고, 영토를 넓히려 땅속으로 뿌리를 뻗는 식물들은 우리 인간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그들은 자연이기에 이치에 순응하고 인간은 순리대로 살지 않고 신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더욱 위대해지고자 하는 욕심을 부린다는 것이 차이점이랄 수 있겠다.

글을 시작하며 적어 놓은 시는 최인호의 “길 없는 길” 속의 주인공 경허의 선시(禪詩)로 작가의 말을 빌면

봄볕이 있는 곳마다 꽃은 피어나고 내 마음속에도 봄볕을 깃들게 하면 꽃은 자연적으로 피어날 수 있으니 굳이 봄에 피는 꽃을 찾아 청산으로 숨어 들어갈 필요가 없다.

는 것이란다.

그러니 결국 내가 앉은 이곳이 바로 나의 꽃밭이고 내가 하는 모든 생각과 말들은 다양한 색깔의 꽃처럼 끊임없이 피고지고하면서 나를 표현해 주는 것이지 싶다.

 

 


어린 시절 신문지상에 연재되던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을 훔쳐 읽으며 자란 나는 후에 알게 된 “술꾼”이라는 단편으로 그를 통속작가가 아닌 기상천외한 상상력의 작가로 새롭게 인식했었고 우연히 접하곤 하였던 잡지 ‘샘터’ 속 가족이야기로 그도 나와 같이 ‘이 시간을 살아가고 있구나.’ 라는 동질감을 느꼈었는데 “꽃밭”을 읽으면서는 이제 그도 늙었구나 하는 생각 이전에 우주의 질서 속으로 순응하며 들어오는 한 창조물로 여겨진다.

그런 생각으로 책을 보니 그의 꽃밭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것을 눈치 채게 된다.

불친절하다고 느낀 은행 직원에게 건물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는 양 당당했던 젊은 시절의 그가 나이 들어가면서 자신이 했던 행동이 소인배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는 것.

가톨릭에 귀의한 시간을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어마어마한 내적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모습. - 그 때문인지 이후로 그의 글엔 종교적 표현과 산문도 여럿 눈에 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사계절의 그림자가 지나가는 그의 꽃밭에서 일어나는 느리고도 아주 작은 변화들인 것이다.

조금씩 변해가는 그의 꽃밭에서 그는 아직도 기다린다고 한다.

“그 님이 누구신지 아직 나는 모르지만 그 님은 마침내

내 생애의 ‘꽃밭’에 내가 바라던 손님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오실 터이니 눈부신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마련해 두고” 기다린다고 한다.


 

책 말미에는 암투병을 하고 있는 화가 김점선의 꽃밭 이야기도 나온다.

혼수상태에 이르기까지의 아주 극심한 고통속에서도 그녀는 정신만 차리면 베란다의 제라늄 화분을 걱정했다고 쓰고 있다.

급기야 수술 후 첫 번째 항암 주사를 맞는 날의 이른 아침엔 링거병을 한손에 받쳐 들고 몰래 병원을 빠져 나와 제라늄 화분들 밑으로 물이 줄줄줄 흐르도록 흠뻑 물을 주었단다.

제라늄이 살아나니 자신도 살아나고 있다고 믿은 그녀의 거룩한 임무 완수는 생의 마지막까지도 포기할 수 없었던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끈질긴 애착이었을 것이고, 책임감, 그리고 동질감이었을 것이다.

힘든 시간을 보낸 후 그녀의 제라늄은 본래의 자유를 되찾았고 김점선도 자신의 행복을 확인하였다.

 

올가을 들어 나의 꽃밭엔 때 이른 서리가 내렸다.

주변 분들이 하나씩 둘씩 기력을 잃어가고 예전의 화사한 빛깔을 잃어가니 꼭 내가 아니어도 그 분들로 인해 나의 꽃밭도 활기를 잃고 한동안 많이 부대끼었다.

조그마한 나의 꽃밭은 누구에게나 위안을 주는 향기로 가득 찼으면 좋겠지만 한 낮의 뜨거운 태양을 맞서 감내할 만큼 강건하였던 그것은 이제 소슬하니 부는 바람에도 바스락거리는 마른 잎 소리를 내고 있다.

제 아무리 화려한 꽃과 너른 잎을 자랑하고 깊은 뿌리를 묻고 있어도 외부로부터 오는 찬바람이나 건조한 열풍에는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나의 꽃밭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진행형이라 그 여파가 심했다.

어서 이 시련의 계절이 가고 다시 꽃피는 봄이 돌아와 평등한 봄볕을 이웃과 함께 나눠 받으면서 벌도 불러오고, 나비의 날개도 쉬게 하면 좋으련만.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어찌 그리도 농염한지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산에 누워 하늘을 보네.
청명한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푸른 하늘이여.
풀어놓은 쪽빛이네.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 최한경 / 꽃밭에 앉아서


 

최한경은 조선시대 세종조때 유생으로 성균관 유생 시절에 박소저란 여인을 사랑해서 지은 연애시 한 수를 자신의 인생을 기록한 '반중일기'에 남겼다 한다.

~~~~~~~~~~~~이런 발견이 책을 읽는 즐거움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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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서평단 알림
-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기타오 요시타카 지음, 이정환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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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날짜로 일을 그만 두었다.

집에다가는 일을 그만 두었다고 했지만 그래도 한 가닥 여지는 회사에 두고 나왔다.

어제도 남편이 버스 정거장에 나와 서 있다가 ‘그 동안 수고했어.’ 했다.


나는 프리랜서이고, 일의 양도 그리 많지 않고, 경력도 짧지 않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긴 세월동안 너무나도 익숙하게 서로를 이해 해 온 터라 제3자가 볼 때에는 왜 그만두지? 하는 의문도 생길 것이다.

진작부터 친정 엄마는 절대 일을 그만 두어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나와 동갑인 사촌 제부가 이번에 대기업에서 명퇴를 했다며 걱정을 하시는 엄마의 마음에는 일이 곧 밥 벌어 먹고 사는 밑천이라는 생각이 짙게 깔려 있기에 일에서 보람을 찾는다거나 자아실현, 진짜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 따위는 빛 좋은 개살구처럼 허울뿐인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일을 그만 두어야 할까? 다녀야 할까? 고심하는 중간에 이 책을 받아 보았다.

yes24나 교보엔 리뷰가 50~70개 이상 달려 있으니 가히 이 책의 인기를 실감 할 수 있었다.

그토록 많은 이들의 눈을 집중시킨 “일”은 어떤 책일까?

저자 ‘기타오 요시타카’는 노무라 증권에서 ‘손 정의’의 소프트 뱅크를 거쳐 SBI홀딩스를 창업한 사업가로 유교주의 경영 철학을 원용해 인간학의 가치를 역설했다.

그는 고전을 즐겨 읽으며 고전을 바탕으로 형성된 사고는 어려운 상황에 부딪치거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할 때에 반드시 큰 힘이 된다고 믿고 있다.

동양에서의 일에 대한 전통 관념은 ‘공공에 봉사하는 것’ 이며 ‘천명에 다라 행’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미국식 사고방식이 동양의 직업관에 깊이 파고들어 일은 곧 ‘자기실현, 즉 자신을 위한 이상일 뿐’, 더 이상 자신의 천직에 힘쓰는 것으로 삶의 보람을 찾는 사람은 보기 힘들어졌다고 꼬집고 있다.

미국에는 기부나 여러 형태로 공공을 위한 자선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반드시 일을 통해 공공에의 봉사를 실현하려는 동양의 사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공공을 위해 일하는 것 =공공을 위해 봉사 하는 것.

난 아직 한 번도 내가 하는 일을 봉사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아주 근사한 직업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껴 보지 못했다.

날마다 마감 시간에 쫒기면서 한 달에 한 번쯤 월급날에는 내가 한 일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 통장을 들여다보면서 만족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요 근래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한 때는 우리 가족을 위해 일한다고 어개를 으쓱하기도 했었는데 여자가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르는 일이다.

같은 여자의 입장으로 딸이나 며느리의 사회생활을 적극 지지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희생이 일순위이고 그 다음으로 그네들을 위해 일한다는 명분을 세워주는 아이들의 희생 또한 무시 못 하는 부분이다.

다음으로는 일하는 아내를 둔 가장의 희생도 있다.

나의 경우를 보면 알량한 ‘나의 일’을 내세워 주변 사람들의 많은 희생을 당연한 것처럼 독식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의 일터로 떠난 시간동안에 다른 식구들의 괴로움은 잊었던 것 같다.

어찌보면 이 책에서 말하는 요지와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히 나는 이 책을 보며 보다 근원적인 내 ‘일’의 문제점을 알게 되었다.

생계유지나 공공을 위한 봉사가 제 아무리 중요하다손 치더라도 내 가족, 내 주변의 희생이 따른다면-더구나 선택권이 없는 아이들의 희생이 따른다면 기꺼이 일을 그만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오늘 아침에도 이야길 한다.

“아~! 정말 좋다. 자기가 출근을 안 하고 집에 있는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어. 조금만 덜 쓰고 조금 더 절약하고 살자.”

나 역시 그 말에 동감한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하셨고 말년엔 딸을 일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셨던 친정엄마, 한참 엄마 손이 탈 나이에 다시 일을 시작해서 본의 아니게 독립적으로 키워진 우리 큰 딸과 엄마 젖을 3개월도 못 먹은 우리 아들, 그리고 늘 세심한 배려로 지원함에 있어 남자로서의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희생할 수밖에는 없었던 남편.


이제부터는 내가 그들을 위해 봉사하며 보람을 찾아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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