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을 한 번도 쳐 보지 못한 너에게 내인생의책 작은책가방 3
하세가와 슈헤이 글.그림, 양억관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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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을 한 번도 쳐 보지 못한 너에게>...아직까지 창공을 가르며 쭉쭉 뻗어나가 담장을 훌쩍 넘겨버리는 시원한 홈런 한번 날려보지 못한 내게 던지는 위협구 같기도 하고 내가 열심히 응원할 테니 힘내서 달리라는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 같기도 한 이 제목이 가슴에 와 툭 떨어진다. 책을 고를 때 평소 열광하는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면 표지 디자인에 끌려서 고르는 경우가 있고, 책 표지의 추천글에 도움받기도 하고, 그림책의 경우 일러스트의 선호도에 좌우되기도 한다. <홈런을 한 번도 쳐 보지 못한 너에게>이 책은 순전히 제목에 끌려서 앞뒤 안 가리고 선택한 책이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희망적이고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게 어린이책의 큰 기획 의도 중 하나일 텐데 야구만큼 인생의 단편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강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소재는 드물지 않을까 생각한다. 눈치 챘겠지만 난 야구광이다. 23세의 시인 서정주는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고 했지만 마흔을 넘긴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책과 야구라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다.

흔히들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라 한다. 야구를 지루한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소리라서 이제는 별 감흥도 없는 진부한 퇴물 취급을 받고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야구 경기를 오래도록 깊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 말이 주는 의미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야구가 펼쳐 보이는 플레이들이 인생을 떠올릴 만한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 이 책에서 센기치 형이 말하듯 야구는 선수가 홈, 즉 집을 나갔다가 세계를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점수가 인정되는 경기다. 출발점을 출발해서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은 홈런처럼 단 한방에 결정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쉽지 않다. 팀 동료들의 지원이나 희생이 따르기도 하고, 상대팀 선수의 실책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상대 투수의 견제에 여러 차례 베이스로 귀로를 해야 하고, 투수가 던지는 공의 구질이나 팀 동료의 타구 방향을 살펴 언제쯤 달려 나갈지 얼마만큼 내달릴지 판단해서 온 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 홈을 출발해 1루, 2루, 3루를 돌아 다시 홈까지 돌아오는 여정이 살짝 부풀려 오디세우스의 귀향에 맞먹는 험난한 여정을 지나서도 곳곳에 매복해 있는 묘한 변수에 의해서 끝내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리고 다시 그 여정을 되풀이하기 위해 새로운 이닝의 출발선에 새롭게 서야 하는 게 야구다.

평탄한 길만 계속되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사람을 해한 적도 없고 남의 것을 탐낸 적도 없이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내 손안에는 초라한 인생뿐이냐고 어디엔가 하소연 하고 싶은 게 인생이 아닌가. 쉼 없이 몰아치는 고난과 절망, 배신과 야유 속에서도 자기 몫을 살아내야 하는 게 인생이 아닌가. 야구에서 흔하게 통용되는 말 중에 ‘찬스 뒤에 위기가 오고, 위기 뒤엔 찬스가 온다.’는 말이 있다. 찬스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흘려보내면 곧바로 위기에 빌미를 잡힐 수 있고, 위기를 잘 극복하면 다시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앞서간다고 자만함을 경계하는 말이고 절망적인 상황을 잘 극복해내면 희망이 있다는 우리네 인생을 위한 완벽한 조언이 아닌가. 지금 나의 인생이 행운의 여신의 비호를 받은 듯 술술 잘 풀리고 있다면 지나친 오만함을 경계하라, 지금 나의 인생이 진흙탕에서 허우적대듯 절망적이라면 이제 곧 진흙탕에서 빠져 나올만한 기회가 찾아올 것에 대비하라.

리틀 야구단의 데구치 루이는 1사 1,3루 상황의 좋은 기회에 타석에 들어선다. 지난 타석의 성적은 연속 삼진. 스퀴즈를 예상했지만 감독의 사인은 강공이다. 꼭 쳐내리라 다짐하지만 결과는 2루수 앞 땅볼. 병살타를 쳐서 팀의 좋은 기회를 날려버린 거다. 시무룩한 루이의 심부름 길에 센 형을 만나서 오늘 시합의 스윙 동작에 대한 조언을 듣는다. 홈런 욕심에 스윙 동작이 컸던 루이에게 타격 자세를 알려주고, 왕정치나 조지마 같은 홈런 타자들 또한 오랜 시간의 연습과 훈련과 연구가 밑거름이 돼서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었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센기치 형과 루이의 꿈은 딱 한번이라도 멋진 홈런을 쳐보는 거다. 오직 자신만의 힘으로 집을 나갔다가 세계를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그 맛을 경험해 보고 싶은 거다. 교통사고로 걸을 수도 없을 거라던 센 형은 재활훈련을 통해 다시 야구를 꿈꾸고 있고 루이는 기초훈련부터 차근차근 해서 우선 안타부터 쳐야겠다는 결심을 하며 홈런을 꿈꾼다.

아마 센 형과 루이는 평생 동안 홈런을 치지 못할 지도 모른다. 야구 천재들이 모여 있는 프로야구 선수들 중에도 홈런 한번 쳐 보지 못한 선수들이 많다. 한 시즌 최고 타자 또한 열 번의 타석에서 고작 3,4번의 안타를 칠뿐이고, 최고의 홈런 타자는 자신이 넘긴 홈런의 개수의 두 배 이상의 삼진을 당하기도 한다. 최고의 타자라 불리는 몇몇 선수들은 자기를 선택해준 구단이 한군데도 없었던 연습생부터 출발해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경우도 있다. 찬란했던 순간만큼 빛나지는 않지만 지금도 묵묵히 자신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노장 선수들도 있다. 깨끗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홈런, 분명 야구에서 꽤 매력적인 요소지만 홈런 맞을 각오하고 두려움 없이 정면 승부하는 투수에게 박수를 보내기도 하고 몸을 날린 호수비와 재치 있는 플레이에 더 열광하기도 한다. 오랜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자신이 섰던 그라운드에 입 맞추는 은퇴선수의 모습에 울컥 감동의 눈물을 쏟기도 한다.          

야구가 담아내는 이런 진한 페이소스에 야구팬들의 야구사랑 또한 감동적이다. 2005년에 월드시리즈를 우승한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88년 만에 월드 시리즈 우승을 맛봤다. 시카고의 화이트삭스 팬 중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팀의 우승을 태어나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도 많다는 뜻이다. 500만원이 넘는 월드시리즈 티켓을 구입한 어느 할머니는 화이트삭스의 광팬이었던 자신의 아버지도 못보고 돌아가셨던 우승의 현장에 지금 와 있는데 그 값이 얼마가 됐든 그게 아깝겠냐고 했다 한다. 나 또한 13년을 기다려 내가 사랑하는 팀의 우승을 지켜봤던 감동을 간직하고 있는 터라 충분히 공감한다.

처음으로 야구장에 갔었던 그날을 기억한다. 조명탑에 불이 들어오고 녹색의 잔디밭에 하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눈앞에서 뛰어다니던 그 꿈의 구장을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아마도 야구팬일 것이다. 야구팬의 입장에서 야구에 대해 넘쳐나는 사랑을 담아낸 그림책이다. 늘 꿈과 희망을 지니고 살라는 야구가 주는 희망적인 메시지에다 이렇게 멋진 야구에 빠져들지 않고 버틸 수 있겠냐는 손짓이 담겨있다.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 이후 리틀야구단이 많이 생기고 생활야구 시설과 경기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WBC의 도쿄대첩이 생각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하나쯤 나와 줬으면 하던 야구 그림책이 일본 작가에게서 나왔다는 게 살짝 아쉬워진다.^^ 요즘 야구에 푹 빠져서 캐치볼 글러브를 장만하고 TV 야구 중계에 집중하는 조카를 비롯해서 야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야구의 기분 규칙들과 함께 권해주면 좋을 그림책이다. 그렇게 야구의 재미에 빠져들다 보면 아마도 야구가 담아내는 매력적인 이야기들은 스스로 자연스럽게 알게 되리라. 그나저나 내 인생의 홈런은 언제쯤 날릴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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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보글 마법의 수프 웅진 세계그림책 14
클로드 부종 지음 / 웅진주니어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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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주말 아침, TV속 북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잠시 보고 있었다. 카메라에 잡힌 여인네들의 얼굴이 어쩜 그리도 곱던지...남남북녀라고 우선 떠올릴 수 있었던 말을 제쳐두고 가장 먼저 든 생각. 하도 깎아 대서 신석기시대 빗살무늬 토기의 불편해 보이는 밑 부분처럼 뾰족해진, 소위 말하는 ‘V라인’이라는 얼굴에 덩달아 얼마나 날카로워져 있었는지 그 동글동글한 얼굴이 너무나 푸근하고 예뻐 보이는 거다. 마음을 흔드는 빼어난 미인도 없지만 설사 그런 미인을 눈앞에 두고도 어느 정도의 개보수를 거쳐서 만들어진 얼굴일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산다는 연예인들의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과거 사진들의 충격도 그렇거니와 주변에도 평생의 콤플렉스였던 부위에 손을 대서 몰라보게 예뻐진 사례들이 너무나 흔하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획일화된 미인의 얼굴에 별다른 감흥이 없는 거다. 마녀 라타투이의 마법의 수프가 만들어낸 라타투이를 쏙 빼닮은 일곱 명의 꼬마 마녀들을 통해서 이 얼굴이 저 얼굴 같은 개성을 잃어버린 현대의 미녀들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면서 모음 차이로 하늘과 땅처럼 갈리는 진정한 ‘미녀’와 ‘마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아마 그림책 세계에서 튀어나올 수만 있다면 마녀 라타투이는 현실 세계로 당장 튀어나와 예뻐지는 마법의 손길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어느 날  잡지 속 미녀의 얼굴과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견주던 마녀 라타투이는 자신도 잡지의 미녀처럼 예쁜 여자가 되기를 소원한다. 예뻐지는 마법 수프를 만들겠다는 생각에 부엌에 있는 마법의 책을 다 뒤지지만 마녀의 마법의 수프 요리법은 죄다 공주를 두꺼비나 오이로 만드는 요리법 밖에는 없다. 레시피에도 없는 예뻐지는 마법의 수프를 직접 만들어 보기로 작정한 라타투이는 여기저기서 이상야릇한 재료들을 집어넣어 수프를 끓인다. 과연 이 재료들고 예뻐지는 마법의 수프가 만들어질지 의문스러운 재료들을 배짱좋게 넣어서 완성한 마법의 수프를 우선 고양이, 박쥐, 두꺼비, 생쥐, 부엉이 등에게 먹이고 그 동물들을 금고 안에 집어넣고 문을 잠가둔 뒤 다음날 수프의 효과를 기다릴 작정을 한다. 미녀가 되는 꿈을 꾸며 밤을 보낸 마녀 라타투이는 금고 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란다. 일곱 명의 꼬마 라타투이들이 배고파 죽겠다고 수프를 끓여내라고 소리를 질러대고 난리가 난 것이다. 예뻐지겠다는 꿈은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라타투이는 새 식구들을 먹이느라 하루 종일 일만 해대야 할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잘 가라, 사진 속의 여자여!
잘 가라, 미녀의 꿈이여!   

  

라타투이의 마지막 탄식이 어쩐지 심하게 공감이 간다. 아침에 식구들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해놓고 남편 깨워서 아침상 차려주고 시간 맞춰 아이 깨워서 아침밥 먹이고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 유치원 버스 태워 보내고 집에 들어와 커피 한잔 마시고는 바로 빨래며 청소며 아이 간식과 저녁 찬거리 장보고 오면 벌써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 된다. 결혼한 지 6년. 아이 어릴 때 거치적거렸던 머리카락을 질끈 동여 묶던 스타일 그대로 몇 년을 지내다보니 머리카락의 윤기도 사라지고, 그마저도 요즘엔 흰머리가 삐쭉삐쭉 나와서 가끔씩 남편에게 머리를 들이밀어야 한다. 피부의 탄력도 예전과 같지 않고, 일상의 피곤함마저 쉬이 찾아온다. 잡지 속 미녀의 꿈은 고사하고 나의 눈부셨던 시절도 지났다는 증거들이다. 눈부시게 빛나던 시절을 지나온 이 모습으로 앞으로 채워갈 남은 시절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해봐야 하는 시점이다. 눈부신 외모는 다시 찾아올 수 없어도 나만의 은은한 향기 정도는 풍기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라타투이의 탄식은 이렇게 나의 탄식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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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kj jf 2011-03-27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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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ffg 2011-03-27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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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여행 아빠랑 소리 내어 읽는 동화책 2
하인츠 야니쉬 글, 헬가 반쉬 그림, 최용주 옮김 / 큰나(시와시학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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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 골목을 지나다가 처음 마주친 달팽이, 그 상상을 뛰어넘는 몸 크기에 놀라고 느릿느릿 꼬물거리는 움직임에 놀라 저절로 뒷걸음치게 된다. 아마도 가물치, 미꾸라지, 누에...몸보신용 옆 친구들 때문에도 더 놀란 것 같다. 어느 날에는 주인장이 졸고 있는 틈을 타서 커다란 고무 통에서 줄줄이 빠져나와 길바닥에 가득 늘어선 달팽이들을 보면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저 녀석들 바다로 갈 건가봐.” 이적의 ‘달팽이’란 노래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내 의식 속에 각인된 달팽이의 이미지였다.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이적의 노래 속의 그 달팽이를 야니쉬의 그림책으로 만났다. 딱 그 노래가 떠올랐다. 오랫동안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사는 꿈을 꿨던 달팽이가 여행 가방을 챙겨 바다를 향해 길을 나선 것이다. 그렇게 바다를 향한 여행 3년째 걸을 때 쿵쿵 발소리가 나지 않게 신으려고 양말을 뜨고 있는 거인을 만난다. 달팽이의 꿈 이야기를 들은 거인은 뜨개질을 마치고 커다란 양말을 신고 달팽이를 손에 올려놓고 바닷가를 향해 걸어간다. 거인의 한 걸음이 달팽이는 기어서 보름 걸리니 바닷가로 향하는 거인의 손에 올려진 달팽이가 느끼기에는 주변 경치들이 휙휙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거인은 일흔일곱 걸음 만에 바닷가에 도착하고 거인과 달팽이는 푸른 물감처럼 푸른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다음날 달팽이는 파란색 바다색깔로 딱딱한 자신의 집을 칠하고 거인은 비어있는 등대를 거처로 정한다. 바닷가로 빨리 데려다 줘서 고마운데 거인에게 해줄 게 없다고 미안해하는 달팽이에게 거인은 이렇게 말한다.

“아니야, 네가 나한테 얼마나 큰 선물을 줬는데. 너는 내게 목표를 심어 줬단다. 목표 없이 사는 게 얼마나 지루한지 너는 모를 거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일흔일곱 걸음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바다는 거인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 바다뿐이겠는가 누군가에게는 평생 한번을 소원하는 곳 어디라도 거인은 그 간절함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쉽게 얻어지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지 못했던 거인은 달팽이와 친구가 되고 친구의 간절한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주변의 모든 것들을 전과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어쩌면 평생을 걸려야 도착할 바다를 향해 가는 달팽이의 무모함에서 그 순순한 열정과 꿈의 실체를 본 거인, 자신의 발소리에 놀랄 사람들을 위해 양말을 뜨고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달팽이의 여행에 동행을 해준 거인의 따스한 마음씨에 감동한 달팽이. 이 둘의 우정이 영원하길...

야니쉬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물론 ‘할아버지의 붉은 뺨’은 예외다. 유치&초저 아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그림책..^^) 그런데 독특한 그림 작가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 행운이 함께하는 작가다. 조간치의 일러스트로 내놓은 많은 야니쉬의 그림책들도 스토리보다는 조간치의 일러스트에 감탄한 경우가 많았다. 이 책도 그림작업을 한 헬가 반쉬의 그림들이 평범한 이야기를 예쁘게 그려주고 있다. 그림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달팽이와 거인의 여행길에서 ‘라푼젤’도 만나볼 수 있다. 

그나저나 이제 달팽이는 연체동물계의 철학자로 입지를 굳히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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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은 배의 용감한 선장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05
유리 슐레비츠 지음, 최순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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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유리 슐레비츠의 작품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비오는 날>이나 <새벽>과 같은 수채화를 보는 듯한 잔잔한 그림책은 내 취향이 아니다. 그림책의 영역에서 맘껏 누릴 수 있는 환상적이고 기발한 이야기들을 선호하는 나는 그림에 대한 설명문 같은 글과 글에 대한 묘사 이상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그림, 이런 잔잔함에는 감동받지 않는다. 아서 랜섬의 글에 그림을 그렸던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와 하늘을 나는 배>는 제외하고 글과 그림 작업을 모두 한 <보물>, <비밀의 방>, <내가 만난 꿈의 지도>에서도 내가 찾는 기발한 상상력을 발견하지 못했다. 교훈적이고 철학적인 메세지를 자꾸 심어주려는 의도가 참 불편했다.  음...뭐 랄까...일러스트는 뛰어나지만 이야기보따리가 빈약하다고 해야 할까? 중국의 한시나 동양 사상에 기대거나 자신의 어릴 적 경험담을 제외하고 그의 이야기보따리 안에 뭐가 더 들어있을까 의문이 생긴다. 이쯤에서 비범한 상상력과 평범한 상상력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이건 아무래도 <마지막 휴양지>의 리뷰를 끝낸 후유증인 것 같다.^^)

유리 슐레비츠의 최근작 <나는 작은 배의 용감한 선장> 속의 배를 타고 상상의 세계로 항해를 떠나는 소년의 모습에서 단박에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1963년작 <괴물들이 사는 나라>와 2009년작 <나는 작은 배의 용감한 선장>. 두 작가 모두 그림책의 노벨상이라 하는 칼데콧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작가들이다. 세계가 인정한 자질을 두고 내가 재평가를 하려 든다는 건 건방진 일이지만 호불호는 분명히 존재한다. 평소 별로 선호하지 않은 그림책 작가의 책을 고른 건 순전히 아이의 선택이었다. 선원 호루라기와 바다로 떠나는 항해에 마음이 끌렸던 아이는 두말 않고 이 책을 카트로 옮겼다. 하지만 엄마인 나는 순진하지 않으니 또 이렇게 슬슬 비틀기 시작한다.

맥스호를 타고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항해를 떠나는 우리의 귀염둥이 악동 맥스의 이야기와 자연스레 비교하게 된다.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테다 협박하며 엄마에 의해 방에 갇히게 되면서 항해를 시작하는 맥스와 다르게 이 책의 소년은 엄마의 도시락 환송까지 받으며 항해를 시작한다는 출발이 좀 다르다. 맥스의 항해는 괴물들마저도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악동짓으로 괴물나라를 평정한 맥스 스스로가 만류하는 괴물들을 뿌리치고 귀가를 결정했지만 이 소년은 상상의 세계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으려는 순간 알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황급히 발을 빼게 된 경우다. 악동 맥스에 비하면 아주 순진한 아이의 모습이다. 이 책 또한 두려움에 당당하게 맞서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끝을 맺고 있지만 그림 하나 없는 깨끗한 여백에 ‘저녁밥은 아직도 따뜻했어.’ 달랑 한 줄만 덩그러니 남은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끝부분이 전하는 감동이 더 진하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비범한 상상력의 결과물이고 <나는 작은 배의 용감한 선장>은 평범한 상상력의 결과물이라 말하고 싶다. 46년의 시공간을 지나는 동안에도 위대한 상상력은 세련됨에서 촌스러움으로 갈아타지 않는다.

맥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글을 이곳에 잔뜩 남긴 이유는 맥스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에 남겨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 유리 슐레비츠를 엄청 씹었다. 내가 그림책을 몇 년째 읽으며 눈만 높아진 게 분명하다. 아..뭔가 살짝 부족하다,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 장점이 많은 작가다. 그러니 칼데콧 상이 한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를 선택했을 것이다. 절대 못났다는 게 아니라 너무나 위대한 작가의 작품이 연상되는 작품에 도전했다는 게 유리 슐레비츠의 실수라고 생각한 것이니 (유리 슐레비츠가 이곳에 들어와 이 글을 볼 리는 없고..^^)유리 슐레비츠의 팬이 혹시 이 글을 보거든 이런 시각도 있겠거니 넘어가 주길 바란다. 아무래도 어제 결혼식의 먹어볼 것 없었던 호텔 스테이크가 너무 질겼던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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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휴양지
로베르토 이노센티 그림, 존 패트릭 루이스 글, 안인희 옮김 / 비룡소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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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른한 잿빛 오후 지루한 일상에 무시당하고 있던 상상력이 휴가를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추억의 조각들에 매달려 보려 하지만 추억이란 낡은 모자일 뿐이고 상상력은 새 신발이다. 잃어버린 새 신발을 찾아 집을 나선다. 마지막 휴양지, 잃어버린 상상력을 찾아 나선 화가의 빨간 자동차가 도착한 그곳. 이곳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아주 수다스러워지거나 아예 침묵하는 두 가지 극단적인 방법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렇게 리뷰를 쓰기 시작했으니 내 손은 침묵하는 쪽을 애초에 포기한 모양이다.

이 그림책은 당연히 유아용 그림책이 아니다. 하지만 그림감상을 목적으로 유아에게 보여주고자 한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 아는 만큼 보이는 그림책이 바로 이 책이다. 우선 이 책을 손에 들고 심호흡을 한번 하고 입맛도 한번 다셔보고 손도 몇 번 비벼보고 약간의 뜸을 들이다가 어디 한번 들어가 볼까 하는 심정으로 시작했던 책이다. 이 책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니 내가 이 책속의 인물들을 얼마나 알아볼까 스스로도 참으로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 휴양지>, 이 책은 로베르토 인노첸티가 문학에 바치는 헌사이다. 작가의 잃어버린 상상력의 해답을 문학 작품들 속에서 찾으려 한다는 발상이 탄생시킨 그림책이다. 이 책의 1차 재미를 느낄 수 있으려면 그동안 문학작품들과 가까이 교류한 세월들이 있어야 한다. 그 세월 동안 안데르센의 ‘인어 공주’,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허먼 멜빌의 ‘백경’, 스티븐슨의 ‘보물섬’,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이탈로 칼비노의 ‘나무 위의 남작’...을 만난 적이 있다면 작가인 로베르토 인노첸티와 만나 악수 정도는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작품으로 만나기는 어려웠어도 추리소설계의 전설적 인물 메그레 경감과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에 대해 주워들은 이야기까지 보탠다면 인노첸티와 악수를 나누며 통성명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몇몇 정체가 불분명한 인물들의 실체 파악을 못했더라도 마지막 휴양지에서 만난 인물들이 상상력으로 무장한 인물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는 신호를 보낸다면 아마도 인노첸티와 가벼운 허그 후 어깨 한번 툭 치면서 “그런데 그 미키마우스 그려진 줄무늬 잠옷 입은 그 남자 말이예요...”하면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위에서 언급한 책들을 못 읽어봤더라도 걱정은 접어둬라. 친절하게도 책 뒤편의 덧붙이는 말에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으니까...

그럼 숨은그림찾기 같은 1차 재미를 뒤로 하고 2차 재미를 찾고자 한다면 1차 재미에 상상력을 보태보자. 낡은 추억의 모자라도 쓰고 마지막 휴양지의 곳곳을 헤집고 다녀보자. 마지막 휴양지의 사람들은 누구 하나 평범한 사람이 없다. 호텔의 하녀도 우람한 간호사도 키 큰 신비한 방랑자도... 지금까지 내가 읽어왔던 책들과 영화적인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미 나와 있는 정답 말고 나만의 해답을 찾아내 휴가 떠난 내 상상력을 놀래켜 보자. 1차, 2차의 재미 위에 부수적인 재미를 더 보태자면, 마지막 휴양지의 손님들이 등장하는 모험 가득한 상상의 세계를 아직 모르고 있다면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해 보는 방법도 있다. 계속해서 또다른 모험과 상상의 세계로 열린 책 속으로의 여행을 멈추지 않으며 내 안의 상상력이 지루함을 못 견뎌 휴가를 떠나는 일이 없게 만들어야 함은 잊지 말아야한다.

내 낡은 모자는 마지막 휴양지에서 코지모를 만나 무척 반가워했다. 달팽이 요리를 먹으라고 강요하는 아버지에 반항의 제스처로 나무 위로 올라간 후 죽음의 그 순간까지 내게 즐거움을 선사했던 코지모에 이어서 나는 이제 메다르도 자작을 만나러 간다. 반쪼가리 인간이라니...칼비노의 상상력에 발을 한번 맞춰봐야겠다.

잃어버린 상상력을 만날 수 있는 그곳, 호기심을 씨 뿌리고 상상력을 거두어들이는 그곳으로 떠나보시라. 특히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몰라 불현듯 불안감에 휩싸일 때 위로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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