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여행 아빠랑 소리 내어 읽는 동화책 2
하인츠 야니쉬 글, 헬가 반쉬 그림, 최용주 옮김 / 큰나(시와시학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재래시장 골목을 지나다가 처음 마주친 달팽이, 그 상상을 뛰어넘는 몸 크기에 놀라고 느릿느릿 꼬물거리는 움직임에 놀라 저절로 뒷걸음치게 된다. 아마도 가물치, 미꾸라지, 누에...몸보신용 옆 친구들 때문에도 더 놀란 것 같다. 어느 날에는 주인장이 졸고 있는 틈을 타서 커다란 고무 통에서 줄줄이 빠져나와 길바닥에 가득 늘어선 달팽이들을 보면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저 녀석들 바다로 갈 건가봐.” 이적의 ‘달팽이’란 노래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내 의식 속에 각인된 달팽이의 이미지였다.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이적의 노래 속의 그 달팽이를 야니쉬의 그림책으로 만났다. 딱 그 노래가 떠올랐다. 오랫동안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사는 꿈을 꿨던 달팽이가 여행 가방을 챙겨 바다를 향해 길을 나선 것이다. 그렇게 바다를 향한 여행 3년째 걸을 때 쿵쿵 발소리가 나지 않게 신으려고 양말을 뜨고 있는 거인을 만난다. 달팽이의 꿈 이야기를 들은 거인은 뜨개질을 마치고 커다란 양말을 신고 달팽이를 손에 올려놓고 바닷가를 향해 걸어간다. 거인의 한 걸음이 달팽이는 기어서 보름 걸리니 바닷가로 향하는 거인의 손에 올려진 달팽이가 느끼기에는 주변 경치들이 휙휙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거인은 일흔일곱 걸음 만에 바닷가에 도착하고 거인과 달팽이는 푸른 물감처럼 푸른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다음날 달팽이는 파란색 바다색깔로 딱딱한 자신의 집을 칠하고 거인은 비어있는 등대를 거처로 정한다. 바닷가로 빨리 데려다 줘서 고마운데 거인에게 해줄 게 없다고 미안해하는 달팽이에게 거인은 이렇게 말한다.

“아니야, 네가 나한테 얼마나 큰 선물을 줬는데. 너는 내게 목표를 심어 줬단다. 목표 없이 사는 게 얼마나 지루한지 너는 모를 거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일흔일곱 걸음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바다는 거인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 바다뿐이겠는가 누군가에게는 평생 한번을 소원하는 곳 어디라도 거인은 그 간절함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쉽게 얻어지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지 못했던 거인은 달팽이와 친구가 되고 친구의 간절한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주변의 모든 것들을 전과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어쩌면 평생을 걸려야 도착할 바다를 향해 가는 달팽이의 무모함에서 그 순순한 열정과 꿈의 실체를 본 거인, 자신의 발소리에 놀랄 사람들을 위해 양말을 뜨고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달팽이의 여행에 동행을 해준 거인의 따스한 마음씨에 감동한 달팽이. 이 둘의 우정이 영원하길...

야니쉬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물론 ‘할아버지의 붉은 뺨’은 예외다. 유치&초저 아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그림책..^^) 그런데 독특한 그림 작가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 행운이 함께하는 작가다. 조간치의 일러스트로 내놓은 많은 야니쉬의 그림책들도 스토리보다는 조간치의 일러스트에 감탄한 경우가 많았다. 이 책도 그림작업을 한 헬가 반쉬의 그림들이 평범한 이야기를 예쁘게 그려주고 있다. 그림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달팽이와 거인의 여행길에서 ‘라푼젤’도 만나볼 수 있다. 

그나저나 이제 달팽이는 연체동물계의 철학자로 입지를 굳히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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