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무스 이야기
유영일 지음, 김우선 그림 / 아름드리미디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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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수많은 물음표에 둘러싸여 머리를 감싸 쥔 마하무스의 표지그림이 모든 이야기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삶의 물음표들을 하나둘 외면하면서 자연스레 치열함을 잃어버린 채 그럭저럭 세상의 물살에 휩쓸려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도 보인다. 내 안에 축적된 수많은 윤회전생이 뿌려놓은 씨앗이 이생의 내 모습으로 열렸다는, 그래서 현생의 나는 다음 생을 위한 꿈의 씨앗을 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세류에 적당히 견고해지고 약아빠진 내 마음의 외벽에 닿으며 비눗방울처럼 톡톡 터진다.   

『마하무스 이야기』는 편안하게 공감할 수 있는 자극적이지 않은 철학 우화다. 해가 떠오르면 일어나고 기계적으로 일과를 처리하고 밤이면 적당한 피곤함에 몸을 누이며 하루를 살아내지만 어느새 돌아보면 의미 있는 시간도 없이 1년을 훌쩍 뛰어넘고 있음을 허무해하며 무작정 살아가고 있는 인생을 한 번씩 따끔하게 돌려세우는 자극이 필요하다. 살아온 이력만으로도 책 한권쯤 너끈하게 세상에 던져놓을 수 있을 거라고 허풍을 날릴 정도로 세상살이에 이골이 난 고집스런 방어벽을 단숨에 무너뜨릴 강펀치는 아니다. 하지만 끊임없는 도전보다는 적당한 선에서의 안주를 우선하고 가끔씩 솟구치는 삶의 근원적 물음에는 현실의 번잡스러움을 핑계 삼아 외면하기 일쑤인 적당히 늙고 적당히 젊기도 한 위치에 선 나를 잠시 돌아보게 하는 가벼운 자극을 주는 책이다. 


밤낮으로 사각사각 쏠기에만 정신팔려있는 다른 생쥐들과는 달리 마하무스는 쏘는 일에는 도통 관심도 없고, 솔개에게 채여 가면서도 밤톨을 입에 물고 있는 생쥐라는 존재에 대한 회의와 삶의 허무함을 느끼는 남다른 생쥐다. 어느 날부턴가 마하무스의 귀에만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이끌려 산꼭대기에 오른 마하무스는 치유사인 두루밝은빛을 만나 소리의 실체를 찾아 떠나는 여행길에 오른다. 여행을 통해서 스승인 두루밝은빛은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삶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외면하지 않는 자만이 두려움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르침을 마하무스에게 전한다. 쥐의 운명으로 살아가는 현재의 마하무스는 수많은 윤회전생을 통해 반복해 살고 있는 쥐로서의 삶의 축적이고 삶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물음표를 끌어안고 별난 쥐로 살아가는 오늘의 마하무스는 바라던 모습의 다음 생을 위해 품은 꿈의 씨앗이라는 가르침을 얻게 된다.


구도나 명상의 색채가 진한 책들은 간과하기 쉬운 보편적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준다. 1980년대를 휩쓸었던 크리슈나무르티, 오쇼 라즈니쉬, 바바하리 다스와 같은 명상가들의 글을 반복해서 읽고 책상 앞에 붙여두곤 했던 기억이 난다. 1990년대에는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끼고 살았었다. 나의 십대와 이십대의 시간들 안에 명상과 구도의 매력에 할애된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 책 『마하무스 이야기』는 꿈꾸는 자의 몫이다. 내면에서 샘솟는 무수한 물음표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서는 과정에 망설임이 없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창조해 나갈 의지에 불타는 ‘마하무스’들에게 권하고 싶다. 요리조리 빠져나갈 구멍들을 제법 알고 있는 적당히 나이든 세대보다는 모든 일에 곧 죽어도 일방통행인 저돌적인 젊음에 권한다.     

물론 세상에는 그저 쥐일 뿐인 쥐들이 절대 다수지. 먹이 사냥에만 눈과 귀와 혀를 팔고, 때가 되면 새끼를 불리고, 자식새끼들 걱정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 없다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고작 세 번 정도 경험하고는 세상과 작별을 하고 말지. 그것이 보통의 쥐들이 경험하는 쥐로서의 삶이야. 하지만 쥐들 중에도 그것만이 전부가 아닌 쥐들이 있단다. 그런 쥐들은 다른 힘센 동물들에게 속절없이 잡아먹히는 다른 쥐들을 보고 두려움에 벌벌 떨기만 하는 가엾은 짐승이 아니란다. 그들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그 근원의 법칙에 대해서, 왜? 왜? 왜? 하고 물음표를 머릿속에 그리게 된단다.…중략…그런 쥐들은 늘 물음표를 가슴으로, 머리로, 존재 전체로 품고 산단다. 나는 왜 쥐로 태어났는가?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걸로 끝인가?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는가? 물음표를 안고 사는 쥐들은 사각사각 쏠고 있는 자기 자신을 의식한다. (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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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된 삼형제 비룡소 전래동화 16
이현주 지음, 이수아 그림 / 비룡소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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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출판사마다 전래동화 시리즈를 펴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보니 비슷한 구성에 작가마다 조금씩 다르게 요리한 다른 맛의 이야기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권선징악에 집중하거나 풍자나 해학이나 익살의 재미에 중점을 두거나 아니면 으스스한 공포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지혜를 보여주거나 작가가 포커스를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같은 이야기도 살짝 다른 맛이 나곤 한다. 물론 그림 작가에 의해서 이야기가 전혀 다른 옷을 입게 되는 것도 중요하다. 어찌됐든 전래동화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 구전되어 세대마다 전해진 이야기들이 이제는 한국인의 유전자에 새겨져서 전해지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친숙한 이야기다. 『부자가 된 삼 형제』도 형제간의 우애와 위기에 처한 순간에 기지를 발휘에 모면하는 지혜를 이야기하는 전래로 자주 만나는 전래동화다.  

구전되는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전래동화는 무엇보다 술술 잘 읽히는 입말, 구어체의 문장이 기본이 된다. 책을 소리 내어 읽었을 때 어색하거나 막힘이 없어야 한다. 책을 읽어주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야 괜찮은 전래동화책이라 할 수 있다. ‘~습니다.’로 끝나는 문장의 전래동화는 첫 번째로 제쳐두는 이유다. 구어체의 문장과 다소 과장되고 황당한 이야기라도 웃음과 지혜를 준다면 사랑받는 전래동화로서의 기본은 갖춘 셈이다.

『부자가 된 삼 형제』는 매끄러운 구어체 문장과 익살과 해학이 넘치는 그림이 잘 어우러진 이야기다. 아버지와 가난하게 살던 삼 형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전 재산인 은돈 석 냥을 한 냥씩 나눠가지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진다. 은돈 한냥으로 각각 지팡이와 북과 장구를 산 삼 형제는 위기의 순간에서 목숨도 구하고 재물을 얻기도 한다. 가장 먼저 정승 댁 큰딸을 구해주고 부자도 되고 정승 댁 큰딸을 색시로 얻어 고향으로 돌아온 맏이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아우들을 기다린다. 세 채가 사이좋게 처마를 맞대고 있는 맏이가 지은 기와집은 삼 형제의 우애를 짐작케 한다. 둘째는 북소리를 이용해 맹수로부터 목숨을 구하고 호랑이를 잡아 가죽을 얻게 되고, 셋째는 말 그대로 호랑이 굴에서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며 짓궂은 꾀를 내어 금은보화까지 챙긴다. 고향으로 의기양양하게 돌아오는 두 동생들과 반갑게 맞이하는 맏이 내외의 엔딩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절로 훈훈하고 따스해진다. 의좋은 형제에게는 행운을 가장해서라도 복이 내린다는 옛이야기의 전형이다. 막내의 꾀에 넘어간 죄 없는 장사꾼이나 여우의 꾀에 맨 위에 올라섰다가 둘째에게 잡힌 호랑이는 막무가내로 선한 편에 서는 옛이야기의 가엾은 희생양이다. 이 또한 개연성을 논할 여지없이 일방 통행하는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들이다.   

우선 스토리가 비슷한 책들을 생각나는 대로 꼽자면... 시공주니어의 <삼형제>, 보림의 <호랑이 잡은 피리>가 있다. 조금씩 다른 맛이 나는 전래동화를 비교해 보면서 읽어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다. 책꽂이에 비슷한 이야기들을 여기저기 숨겨두고 아이와 숨은 책 찾기 놀이를 해봐도 재미있을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라 "어? 나 이거 아는 얘긴데..."하면서도 읽게 되는 것이 전래의 매력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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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으로 돌아간 악어가죽 가방 길벗어린이 저학년 책방 9
김진경 지음, 윤봉선 그림 / 길벗어린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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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지나 서로 교감한다. 그 소통의 흔적들을 하나씩 만나는 과정이 이야기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다. 채인선의 『노래기야 춤춰라』의 구두신고 춤추는 노래기 천개의 발은 로알드 달의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의 운동화 신는 지네와 소통하고, 김혜연의 『코끼리 아줌마의 햇살 도서관』의 사서와 여섯 살 진주는 로알드 달의 『마틸다』속 사서와 마틸다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밀림으로 돌아간 악어가죽 가방』은 제목과 간단한 소개글을 읽자마자 비네테 슈뢰더의 환상적인 일러스트로 만났던 『악어야, 악어야』를 떠오르게 했다. 나일 강가에 살던 악어가 악어 가게에 가면 근사한 물건들이 많다는 귀부인들의 얘기만 듣고 파리로 떠난다는 『악어야, 악어야』의 얘기와 도시 백화점 진열장의 악어가죽 가방이 다시 밀림으로 돌아가려고 시도한다는 얘기가 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파괴되는 자연생태계와 환경 문제일 것이다. 동요 악어떼..“정글 숲을 헤치며 가자, 엉금엉금 기어서 가자, 늪지대가 나타나면은 악어떼가 나온다. 악어떼!!” 내 아이의 아들이나 손자쯤 되면 아마 악어 또한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없는 동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악어는 왜 그리 멋진 가죽을 갖고 태어나서 이런 수난을 당하는 건지...『밀림으로 돌아간 악어가죽 가방』에서는 우쭐대기 좋아하는 악어의 먼 조상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임금님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자에게 큰상을 내리겠노라 선포하자 평소 뽐내기를 좋아하는 악어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보려 애쓴다. 악기 연주도 실패하고 노래도 해보려 하지만 굉장한 소음일 뿐이다. 아름다운 소리를 찾다 지쳐 벌렁 드러누워 우연히 꼬리로 배를 통 쳤는데 아주 그럴듯한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 길로 임금님의 궁전으로 뽐내러 달려간 악어는 임금님의 악사가 되어 궁전에서 살게 된다. 단지 그냥 뽐내고 싶었을 뿐인데 맘껏 뽐내며 살던 물웅덩이를 떠나 궁전의 돌바닥을 기어 다니며 살게 된 것이다. 악어의 고민만 깊어졌다면 다행일 텐데 악어의 배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는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 사람들은 악어를 마구 잡아서 뱃가죽을 벗겨 북을 만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등가죽으로는 가방이며 지갑이며 허리띠도 만들었다. 그때부터 악어들의 수난시대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뭐든 뽐내기 좋아하는 조상 할아버지 악어 때문에 지금 백화점 진열대의 어미와 새끼 악어가 가방이 되어 떡하니 올라와 있는 것이다. 깊은 밤 사람들 눈을 피해 이야기를 나누던 엄마와 아기 악어에게 마법과도 같은 푸른 불빛 회오리가 일어난다.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이 있는 뽐내기 좋아하는 조상 할아버지 악어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큰 가방 악어와 작은 가방 악어가 악어의 모습으로 변한다. 백화점 쇼윈도 유리를 깨고 하수구 뚜껑을 깨트려 하수구로 들어가 강을 타고 사람들 눈을 피해가며 밀림으로 돌아가게 됐다. 욕심 많은 인간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밀림 깊숙이 숨어버렸을 테지.

악어가죽 제품이 비싼 가격표를 붙이고 팔려나가게 된 시작점을 거슬러 올라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그럴듯하고, 판타지적 요소가 다소 황당한 상황에 튀어나오지만 그림책에서야 개연성을 따지고 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야기 말미에 혹시 우연히 길에서나 강에서 마주친 악어가죽 가방이 있었다면 아마도 밀림으로 돌아가고 있는 어미와 새끼 악어였을 거라는 센스 있는 유머도 밍밍한 맛이 날 수도 있는 빤한 마무리에 톡 쏘는 맛을 더해준다.

주변 사람들 중에 평소 사치나 허영과 거리가 먼 사람인데도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명품 백 하나 정도는 필요하더라는 얘기들을 한다. 집안 경조사나 격식 차려야 할 자리에 가면 소박한 옷차림과 존재감 없는 가방이 주눅 들게 한다는 것이다. 인간 스스로 눈부신 청춘의 빛이 사그라지는 나이의 자연스런 보상 심리를 작동시켜 겉모양새에서 보충하려 드는 것일까... 엊그제 한강에서는 인공섬에서 펼쳐진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의 모피쇼로 시끌시끌했다. 누군가가 들고 나온 피켓처럼 ‘모피는 동물의 것!!’...동물의 가죽은 엄연히 그 소유가 동물임을 인간들은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가장 멋지고 빛나는 모피를 만들려고 살아있는 짐승의 가죽을 벗긴다고도 한다. 누군가가 내 가죽을 벗기려 든다면 그 공포와 분노가 극에 달해 날뛸 게 빤한데 말 못하는 동물들의 그 슬픈 눈빛을 너무나도 쉽게 아무렇지도 않게 외면해버리는 게 아닌지 분개하게 된다. 내 것도 아닌, 남의 가죽을 벗겨 몸에 두르면 품위와 기품이 저절로 생겨나는 걸까? 우리 인간들도 뽐내기 좋아하던 악어처럼 뽐내고 우쭐대느라 후대의 원망이 하늘에 닿아 하늘나라에서도 편히 쉬지 못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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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laalthd 2014-01-19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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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층짜리 집 100층짜리 집 1
이와이 도시오 지음, 김숙 옮김 / 북뱅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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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기다리면서 100층짜리 집을 가장 멋있게 보여주기 위해 그림책을 어떤 형태로 만들었을지 궁금했다. 병풍처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그림책일 거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책을 받아보니 100층의 전경을 담아내자면 병풍책으로 만들었다가 펼쳐 보이면 엄청난 길이가 오히려 책읽기에 방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세로로 넘겨보는 방식은 독특하면서도 주르륵 펼쳐진 책을 주워 담을 수고를 덜어줬으니 아주 마음에 든다. 특히 아래에서 위로 들춰보기처럼 넘기는 게 아니라 바나나 껍질 까듯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보는 이 책의 방식은 한 층씩 올라가는 느낌이 들어서 더욱 좋았다.

10층마다 다른 동물들이 살고 있는 이 100층짜리 집은 각 동물의 습성을 고려한 인테리어가 가장 큰 특징이다. 온통 도토리로 꾸며진 다람쥐 집, 한눈에 보기에도 축축함이 느껴지는 개구리 집, 점박이 무늬의 무당벌레 집, 나무로 만들어져 아무데나 쪼아댈 수 있는 딱따구리 집, 화장실 변기마저 거꾸로 되어있는 박쥐 집...각층과 연결된 계단도 꼼꼼하게 신경써서 인테리어한 정성이 깃든 집이다. 그저 구경만 해도 집 주인의 습성이 어떨 지 저절로 알게 될 것 같다. 숫자에 관심 갖기 시작하는 아이라면 1부터 100까지 숫자세기의 재미와 함께 한 집 한 집 구경하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다.  

100층에 살고 있는 거미 왕자의 초대를 받고 찾아간 도치는 100층에서 바라본 밤하늘의 별이 아름다웠다고 하는데 하늘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서 그런 걸까? 나로서는 100층은 상상이 안 되는 높이다.^^ 엘리베이터 공사라도 한다면 어떻게 할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한번쯤 구경하고 싶어진다. 도치가 땅으로 다시 내려오자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100층짜리 집...언젠가 나에게도 초대장이 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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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그림책은 내 친구 2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장미란 옮김 / 논장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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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은 늘 개운하지 않은 뒷맛을 남긴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책을 덮고 나면 어김없이 처음부터 다시 한 번 훑게 된다. 뭔가 놓친 것이 있는 것이 있어 다시 살펴봐야 할 것 같은 찜찜함과 그림책에서 다뤄지는 주제에 대한 놀라움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편안하게 그림책을 읽었던 기억이 몇 편 없을 정도다. 하지만 내가 그림책에 대한 상식과 편견의 선을 넘게 된 계기가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들을 통해서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가족 간의 단절과 반목과 무관심을 꼬집으며 화해를 모색하는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작품들은 그 우울하고 암울한 분위기 때문에 읽고 나면 마음이 물 먹은 솜뭉치 마냥 무거워진다. 어느 순간에는 너무 적나라하고 어느 순간에는 알 듯 모를 듯 수수께끼 같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그의 작품은 나에게는 절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는 듯 벽을 맞닥뜨리게 된다.

<터널>또한 오빠를 돌로 만들어버리는 장면에서는 판타지로 받아들여야 하는 지 잠시 고민하게 만든다. 조용히 책을 읽거나 공상하기를 좋아하는 여동생 로즈와 반대로 밖에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뛰어놀기 좋아하는 오빠는 늘 티격태격한다. 오누이의 관계 개선에 물꼬를 트게 되는 터널이라는 공간을 끌어왔지만 터널 통해 들어가게 되는 세계에서 작가는 마음껏 환상을 풀어놓는다. 헨젤과 그레텔을 떠오르게 하는 오누이와 터널을 통해 도착한 숲에는 인적 없는 고요한 숲속의 모닥불과 마치 마녀의 집인 듯 자리 잡고 있는 집 한 채, 그리고 괴상하게 비틀어진 나무들은 기괴한 모습들이다. 그림 형제 원작에 그림을 그렸던 앤서니 브라운의 ‘헨젤과 그레텔’의 숲속 장면과 흡사한 장면이다.

매일 다투는 남매를 보다 못한 엄마는 둘에게 강제로 붙어있을 시간을 주며 사이좋게 놀다오라고 내보낸다. 걸터앉을 곳을 찾아 책을 읽는 동생과 이곳저곳 탐사를 시작한 오빠, 하는 수없이 함께 놀게 됐지만 여전히 따로따로다. 오빠는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한 터널 끝이 궁금해서 가보자고 하고 마녀나 괴물이 무서운 동생은 내키지 않아 한다. 동생을 두고 터널 속으로 기어들어간 오빠는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고 동생은 할 수없이 오빠를 찾아서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컴컴하고 축축하고 미끈거리고 으스스한 터널 속으로...

터널 속에서 두려움과 죽음과 불안함의 상황을 함께 겪고 다시 터널 밖으로 나오게 된 오누이는 모종의 연대감으로 예전과는 다른 관계를 이어 나가게 될 것이다. 서로의 영역으로 한발씩 다가가면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며 비밀스런 기억을 공유한 끈끈한 남매로 살아나가게 될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예전처럼 서로 다투고 놀리는 일상으로 되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남매간의 근간을 흐르는 정서는 신뢰와 사랑일 것이다. 남매간의 우애를 멋진 판타지와 환상적으로 조합한 작품이다. 늘 티격태격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아이들 앞에 슬쩍 놓아두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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