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어린이들 지식 다다익선 40
멤 폭스 글, 레슬리 스타웁 그림, 김기택 옮김 / 비룡소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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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글과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풍성한 그림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림에 글이 들러리를 선 것인지, 글에 그림이 들러리를 선 것인지 아리송한 그림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은 피부색이나 사는 곳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살아가는 모습은 다르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제를 조곤조곤 시를 읊듯이 들려주고 있는 인권 그림책이다. 액자틀의 느낌을 주는 테두리 그림의 문양도 독특한 분위기를 내고 그림도 색다른 느낌을 준다. 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만 남고 휑뎅그렁하고 단조로운 스타일의 이야기가 큰 매력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림이 주는 독특한 분위기가 기존 그림책들과 다른 느낌이 들어서 작가 프로필을 살펴보니 그림 작가에 대해서는 한두 줄의 평범한 소개글이 전부다. 글 작가인 멤 폭스가 중심이 되어 만든 그림책인 듯하다. 어린이책 작가이면서 인권운동가로 활동 중이고, 선교사인 부모님을 따라 어린 시절을 아프리카 짐바브웨이에서 보냈다하니 미국이나 유럽 그림책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그림 문양의 느낌과 인권에 대한 주제가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다. 가끔은 그림책의 분위기와 이야기의 소스를 나름대로 유추해 보는 것도 그림책을 즐기는 재미 중 하나다. 

 

다른 문화권, 다른 인종이 차별의 기준이 되지 않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그림과 곁들인 차분한 어조로 부드럽고 다소 밋밋하게 전하는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과 조금 다른 접근 방식을 택한 국내 그림책이 있다. 강경수의 『거짓말 같은 이야기』. 배고픈 동생을 위해 지하 갱도에서 오십 킬로그램도 넘는 석탄을 실어 올리는 키르기스스탄의 하산,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해 하루 열네 시간씩 카페트 공장에서 일하는 인도의 파니아, 말라리아에 걸리고, 맨홀뚜껑 아래서 혹은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더미에서 살고, 전쟁터에서 총을 잡아야 하는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의 모습을 대한민국의 평범한 개구쟁이 솔이의 모습과 겹쳐서 담담하게 전해주고 있다. 아이들의 인권이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같은 맥락의 인권 그림책이지만 시를 읊듯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리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 비해서 주제를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다. ‘세상사람 누구나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요.’처럼 주입식으로 들려주는 문장보다는 세계 각국의 어린이들의 실상을 단 몇 줄의 글에 담아서 담담하게 전하는 문장이 보호되어야 하는 어린이들의 인권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끄집어낸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훌륭한 주제라도 풀어내는 이야기가 밋밋하다면 지루하고 재미없는 공염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책, 결론적으로 이 글 첫 문장에서 말한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은 확실히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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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둑 호첸플로츠 1 비룡소 걸작선 7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글, 요제프 트립 그림, 김경연 옮김 / 비룡소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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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간격과 여백이 여유롭고 활자크기가 시원스럽고 삽화까지 군데군데 자리 잡은 책이라도 150여 쪽의 책 세 권을 일곱 살짜리 아이가 읽으려면 웬만큼 재미가 없어서는 끝까지 읽어내기 힘들다. 물론 엄마가 책 읽어주는 것을 들어주는 것도 재미가 없다면 읽어주는 사람의 노고도 없이 한숨을 푹푹 들이쉬고 내쉬고 한다. 보물 같은 이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도둑’이라는 제목과 차례에서 언급된 경찰, 마법사, 요정, 마술반지 등으로 미루어 우리 아이의 취향에 맞는 책일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보다 먼저 보려고 읽고 있는데 놀이하며 오가며 쓱쓱 훔쳐보더니 찰싹 붙어서 빨리 읽어 달라고 재촉한다. 첫 장을 넘기는데 삽화가 굉장히 낯익다. 서둘러 확인해보니 미하엘 엔데의 ‘기관차 대여행’ 시리즈의 그림을 그린 바로 ‘프란츠 요제프 트립’이다. 이 그림 작가와는 지난봄을 함께 한 인연이 있다. ‘기관차 대여행’의 번역본인 「짐 크노프와 기관차 루카스」와 「짐 크노프와 13인의 해적」을 밤마다 읽어주느라 쏟아지는 잠과 싸우고 하루에 읽어줄 분량을 정하느라 아이와 싸워야했었다. 800쪽 분량을 하룻밤에 다 읽어달라고 할 기세였으니 다 읽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었다. 미하엘 엔데의 환상적인 이야기와 찰떡같이 어우러졌던 요제프 트립의 그림이 환상적인 이야기에 사실감을 부여하는 듯한 역할을 톡톡히 해냈었다. 마찬가지로 ‘왕도둑 호첸플로츠’시리즈 『왕도둑 호첸플로츠』, 『호첸플로츠, 다시 나타나다!』, 『호첸플로츠 또 다시 나타나다!!』의 이야기에 실감나는 매력을 더한다. 

『왕도둑 호첸플로츠』의 등장인물들을 간략히 소개하자면...우선 언월도 한 자루와 단도 일곱 자루를 차고 다니는 왕도둑 호첸플로츠가 있다. 그리고 왕도둑 호첸플로츠를 잡겠다고 나선 용감한 소년 카스페를과 제펠이 있고, 손잡이를 돌리면 노래가 나오는 커피콩 가는 기계를 도둑맞은 카스페를의 할머니가 있고, 이 마을의 유일한 경찰임에 틀림없는 딤펠모저 경위가 세 편의 시리즈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다. 각각의 이야기들마다 추가되는 인물들이 더 등장하는데 1편에 해당하는 『왕도둑 호첸플로츠』에는 사악한 마법사 페트로질리우스 츠바켈만(헷갈리기 딱 좋은 이 이름을 지금 물으니 아이 입에서 1초도 지체하지 않고 튀어나온다. 이야기 속에 이름을 이용한 웃음 코드가 있어서 그런지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사악한 마법에 걸린 요정 아마릴리스가 등장한다.

어린이 책이 독자인 어린이들에게 사랑을 받으려면 몇 가지 갖춰야 할 장치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이야기 속의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인물들이 아닐까 한다. 잘나고 똑똑하고 완벽한 모습의 치밀한 완벽함이 아니라 어리숙하고 실수도 연발하고 반짝이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투영해놓은 인물을 아이들은 자신과 동일시한다. 『왕도둑 호첸플로츠』에 등장하는 빨간모자 카스페를과 초록모자 제펠이 그들이다. 할머니의 커피콩 가는 기계를 훔쳐간 도둑 호첸플로츠를 잡겠다고 나섰다가 도둑에게 잡히지만 꾀를 내서 마법사와 도둑에게서 도망치는 것도 모자라 마법사를 물리치고 요정 또한 마법에서 풀려나게 도와주고 도둑까지 잡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멋진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중 악당과 경찰과 마법사와 요정에 대해서도 각각의 캐릭터들의 고정된 이미지도 물론 즐기지만 본 모습에서 허점이 보이거나 반전을 보여줄 수 있어야 정말 살아있는 캐릭터가 된다. 악당인 왕도둑 호첸플로츠는 악명 높은 이미지와 달리 고작 할머니의 커피콩 가는 기계나 훔치고 무시무시한 칼을 차고 다니지만 후추 총을 주로 사용하고 집안 치우기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성격이다. 마법사 페트로질리우스 츠바켈만은 온갖 마법을 다 부릴 줄 알지만 감자 껍질 벗기는 마법은 성공시키지 못했다. 그런데 비극은 이 마법사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감자로 만든 것들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감자 벗기는 일을 시킬 만하고 마법을 훔치지 못할 만큼의 멍청한 하인을 찾고 있다. 이 마을의 유일한 경찰인 딤펠모저 경위는 사라진 아이들이 살아 돌아온 것보다 실종공고에 사용된 관청 용지 한 장을 더 아까워하는 관료주의적인 모습 뒤에 의협심과 인간적인 면모를 감추고 있는 인물이다. 이렇게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캐릭터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어가는 것은 순전히 작가의 몫이다. 곳곳에 웃음 코드들이 장착되어 있어서 아이들의 웃음이 영락없이 터져 나오는 부분이 있고, 악당들을 통쾌하게 혼내주고 의기양양할 법도 한데 할머니의 커피 기계와 자두 과자로 따스하게 마무리하는 이야기가 주는 재미와 웃음과 감동은 어린이의 눈으로 보고 어린이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어린이 책 작가가 마땅히 받아야할 영광이다.

 

『왕도둑 호첸플로츠』는 1962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전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어린이 책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미하엘 엔데의 ‘기관차 대여행’시리즈도 1960년과 1962년에 나온 작품이라 하니 1960년대는 독일 어린이들에게 축복 같은 시절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왕도둑 호첸플로츠’시리즈와 ‘기관차 대여행’시리즈는 우리 아이의 책읽기의 전환점이 되어준 책이고 열성적으로 읽어낸 책이다. 프로이슬러와 미하엘 엔데의 환상적인 이야기에 이어서 소개해주고 싶은 작가가 있는데 바로 ‘발터 뫼르스’다. ‘캡틴 블루베어’와 ‘루모’의 모험의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베드타임 스토리로 이미 알고 있는 아이가 좀 더 자라서 ‘발터 뫼르스’의 작품들을 만난다면 틀림없이 마음에 쏙 들어 할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흐뭇해지고 설렌다. 프로이슬러, 미하엘 엔데, 발터 뫼르스. 우연히도 죄다 독일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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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너도 피터 레이놀즈 시리즈 2
앨리슨 맥기 지음, 김경연 옮김, 피터 레이놀즈 그림 / 문학동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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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엄마에게 바치는 헌시(獻詩)

주말 아침에 고대하던 책을 받았다.

택배로 오는 책은 모두 자기 것이라 생각하는 아들 녀석의 1차 검열이 끝나고

아들의 재차 검열을 우려해 우선 후다닥 읽어가는데

순간...목구멍이 뻐근해짐을 느꼈다.

이 세상 누군가의 딸로 태어나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라면

누구나 느꼈을 감동이랄까...

의미없이 후다닥 읽어버리면 채 5분도 걸리지 않을 책이지만

밀려오는 회한과 벅차오르는 감동과 뭔가 알듯말듯한 슬픔과 미리 닥친 허전함...

이런 복잡한 감정들로 잠시 멍해있었다.


글을 쓴 앨리슨 맥기가 “나의 뼛속으로부터 우러난 글”이라고 했던가...

엄마라는 이름으로 써내려간 시가 피터 레이놀즈의 천진난만한 그림과

환상조합을 이룬 너무나 가슴 따뜻한 책이다.




‘어느 날 네 손가락을 세어 보던 날 그만 손가락 하나하나에 입맞추고 말았단다.’

세상에 나와 이제 20개월을 넘긴 내 아들...

하루 중 단1분도 사랑스럽지 않은 순간이 없고 어디 한군데 미운 모습이 없는 아이!!

부모에게 자식은 그런 존재인걸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새삼 사랑한다며 꼭 안아주었다.

 

‘이따금 난 지켜본단다. 네가 잠자는 모습을 꿈을 꾸는 모습을 그리고 나도 꿈을 꾼단다’

아이가 잠든 모습을 지키는 마음은 끝나지 않을 행복의 느낌이다.

유독 칭얼대는 날에는 얼굴에 불안이 없는지 신경써서 살피게 되고...

아이가 좀더 자라게 되면 마음에 불안이 없는지 살피게 되는 게 부모 마음이다.




‘언젠가는 슬픔에 겨워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는 날도 있을거야’

아빠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힘들 때면 그리워만 했던 나를 생각하며

늦은 결혼 늦은 출산 탓에 내 아들의 절망의 순간에 옆자리를 지켜줄 시간이

내게 충분할지...미리 슬퍼지는 대목이었다.

 

이렇게...한줄 한줄 내 아들의 엄마로 읽기 시작했다가

어느새 난 우리엄마의 딸로 책장을 덮었다.

 

‘언젠가 너도’...

유아서라지만 이 책의 진정한 주인은 세상 모든 엄마이다.


아들 녀석이 아직은 너무 어린 탓에

이 책의 여백으로 흐르는 넓고 깊은 마음을 읽어내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그 의미를 깨닫게 될 때 엄마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해 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동시에 무한한 책임감과 언제까지나 함께 하지못할 게 너무나도 뻔한 아들의 먼 미래가

자신감 넘치고 당당하고 감성이 풍부하고 사랑이 넘치는 모습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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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1-10-05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읽는 어머니를 둔 님의 아드님은 무척 행복한 아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책을 좋아하게된 것도 순전히 다 부모님 덕이거든요. 넉넉하지 않았던 살림에도 책은 무조건 사주셨던...행복하세요.
 
콩숙이와 팥숙이 비룡소 창작그림책 41
이영경 글.그림 / 비룡소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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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경 작가는 콩쥐와 팥쥐를 1950년대로 데려왔다. 각 어린이출판사의 전래동화 시리즈의 필수 아이템인 옛이야기 ‘콩쥐팥쥐’ 중 하나로 분류하려들면 자연스럽지 못할 이유도 없지만 사실 이 책은 옛이야기나 전래로 읽히기보다는 한국의 현대사를 기록한 생활문화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작가의 노력도 상당부분 이런 자료들을 뒤지고 공부하는 데에 할애한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영경은 작가 이름 앞에 대표작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한 「아씨방 일곱 동무」나 「신기한 그림 족자」처럼 ‘규중칠우쟁론기’라는 고전수필과 ‘전우치전’이라는 고대소설을 그림책으로 재구성하는 솜씨가 뛰어난 작가다. 부드럽고 여유로운 느낌의 그림과 옛이야기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담긴 편안한 구성이 동양화를 바라보고 있는 듯 따스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이런 전작들에 비해 『콩숙이와 팥숙이』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지면을 가득 채운 콜라주나 스탠실등의 기법들을 이용한 1950년대의 시대상과 풍물들에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작품 스타일의 변화에 적응하는 시간이 좀 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1950년대 시대상과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긴 이 그림책을 이끌어가는 이야기는 콩쥐팥쥐다. 지금까지 잔인한 부분을 쳐내고 끔찍한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뒤바꾸고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를 그럴싸하게 입힌 콩쥐팥쥐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권해왔었다. 황소와 두꺼비와 선녀의 도움으로 행복을 찾는 콩쥐 이야기까지가 아마 아이들이 지금까지 들어온 콩쥐팥쥐 이야기일 것이다. 이 책 『콩숙이와 팥숙이』는 그 뒷이야기까지 전해준다. 물론 결론부분의 끔직한 부분을 살짝 각색하긴 했지만 원전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동화를 접하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이런 각색은 분명 필요한 작업이다. 흔히 알고 있는 동서양 동화들의 원전을 보면 잔혹동화라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여과 없이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곤란한 게 사실이다. 사실 콩쥐와 팥쥐의 이야기도 팥쥐가 벌을 받게 된다고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가는 결말부분에 끔찍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팥쥐를 젓갈로 만들어 항아리에 담아 팥쥐 엄마에게 보내서 먹게 하는 벌을 내린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나중에 자라서 어릴 적 읽었던 동화의 원전을 읽게 된다면 그 배신감과 놀라움이 크겠지만 6,7세 아이들에게는 발설하기 힘든 진실이 아니겠는가.

전쟁이 끝난 직후의 가난하고 고달팠던 시절의 생활상들을 보여줄 추억의 물건들을 마음껏 만날 수 있다. 벽과 천장에 벽지 대용으로 덕지덕지 붙어있는 신문지, 창호지문, 양은도시락, 재봉틀과 옷본, 녹색 철대문, 물지게, 곤로, 귀했던 군것질거리들, 여자아이들의 장난감이었던 종이인형...지나고 나니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시절의 추억들이다. 자료 조사와 수집을 통해서 1950년대를 그림책 속에 담아내면서 콩쥐와 팥쥐의 이야기를 끌어다 놓은 발상이 꽤 실험적이라 느껴진다. 동화가 주는 터무니없는 환상과 환타지에 가까운 허구성을 꼼꼼한 취재에 의한 자료들로 시대를 재현하는데 필수적인 사실성과의 조화가 가능할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평소 애정을 갖고 차기작을 기다리는 작가의 기존 작품들과 다른 맛이 나는 색다른 작품이라 더욱 그랬다. 『콩숙이와 팥숙이』를 처음 읽었을 때의 낯섦이 반복해서 읽으니 점차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작가의 새로운 시도와 변화는 늘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개운하고 신선한 느낌은 부족하지만 이영경 작가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는 항상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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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길 위의 악당 비룡소의 그림동화 214
줄리아 도널드슨 글, 악셀 셰플러 그림, 이경혜 옮김 / 비룡소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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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여러 작품에서 콤비를 이룬 줄리아 도널드슨과 악셀 셰플러의 신작 그림책이다. <괴물 그루팔로>로 처음 만난 이 글 작가와 그림 작가의 공동 작품을 국내에 소개된 그림책들은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신간이 나올 때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악셀 셰플러의 그림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아이가 네 살 무렵에 즐겁게 읽은 책 「괴물 그루팔로」 때문에 이 작가의 작품들을 꾸준히 체크하는 편인데 아직까지 「괴물 그루팔로」를 뛰어넘는 반응을 보인 작품은 안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작가들에게도 「괴물 그루팔로」는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큰 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99년에 출간된 「괴물 그루팔로」라는 엄청난 성공작 때문에 후속작들이 괜찮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묻히는 경향이 있다. 독자인 나 또한 다른 작품들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니 말이다. 

『나는야, 길 위의 악당』은 나쁜 짓을 일삼는 길 위의 악당 찍찍이가 결국 오리의 꾐에 빠져 비참한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스토리다. 마음대로 남의 것을 빼앗고 훔치는 길 위의 악당 찍찍이 때문에 숲속 마을 친구들은 굶주림에 말라비틀어져 갔지만 악당 찍찍이는 악행을 그칠 줄을 모른다. 심지어 입맛 떨어지게 생긴 토끼풀이나 이빨도 안 박히게 딱딱한 도토리처럼 토끼나 다람쥐에게는 양식이지만 자신에게는 별 쓸모도 없는 것까지 닥치는 대로 모조리 빼앗을 정도이다. 악당 찍찍이는 어느 날 길에서 만난 오리에게서 과자와 빵이 잔뜩 쌓여있는 동굴 이야기를 듣게 되고 동굴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그길로 악당의 말과 음식이 가득 든 악당 찍찍이의 말을 달려 마을로 돌아온 친구들은 모닥불 가에서 잔치를 벌인다. 욕심에 동굴로 들어간 찍찍이의 말로는 보나마나 뻔한..^^

악셀 셰플러의 그림은 따스하고 색채가 화려하고 등장인물들의 표정 속에 감정들을 잘 담아내고 있다. 줄리아 도널드슨의 글은 극적인 효과가 조금 아쉬운, 편안하고 단순한 구성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콤비의 작품은 연령대가 낮은 유아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괴물 그루팔로」처럼 작은 생쥐가 덩치 큰 숲속 동물들과 괴물 그루팔로까지 속여 넘긴다는 극적인 장치가 없는 이 책을 읽고 그냥 평범하다고 던져두는 우리 아이가 십분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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