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을 지워라
빌 톰슨 그림 / 어린이아현(Kizdom)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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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우리의 주의를 끄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고, 글이 없을 때 하나의 이미지는 더 여유 있는 개념적 공간을 가질 수도 있고, 독자의 관심을 더 오래 머물게 할 수 있다. 글이 있다면 독자는 가장 손쉽게 볼 수 있는 설명글에 의해 상상력을 지배당할 수도 있다. -숀 탠-


 

숀 탠의 <도착>이 전 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나 브라이언 셀즈닉의 <위고 카브레>가 안내하는 환상적인 세상에서 그림이 차지하는 위치는 절대적이다. 글자 없는 그림책인 <도착>은 말할 필요도 없고, 글과 그림 어느 것 하나를 빼놓고는 미궁에 빠져버리게 되는 <위고 카브레>를 두고 2008년 뉴베리와 칼데콧 위원회가 고민에 빠졌었다는 후일담은 그들의 고민과 상관없이 듣기에 즐거운 얘기다. 그해 최고의 어린이 문학 글 작가를 선정하는 뉴베리상과 최고의 그림 작가를 선정해야하는 칼데콧이 <위고 카브레>를 어느 쪽으로 분류해야할 지 고민했다는 애긴데 결국 2008년 칼데콧 상이 <위고 카브레>를 차지했지만 말이다.^^

 

그림책을 시작한 것이 아이에게 읽어주기 위한 목적이었으니 언제나 책 선택에 스토리가 우선이었다. 그러다 내가 글자를 읽어가는 동안 옆에서 책에다 얼굴 디밀고 그림을 쳐다보는 아이의 시선을 생각하며 그림이 전하는 이야기가 풍성한 탄탄한 책들에 눈을 돌리게 됐다. 물론 글이 전하는 이야기가 기본적으로 흥미로워야 하고 그림이 그 이야기를 한껏 담아내면 좋고 숨은 이야기까지 전하면 더욱 좋다는 정도였다. 일러스트는 멋진데 아이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고 엄마인 나 혼자 즐기는 몇 작품 때문에 굳어진 기준이었다. 더군다나 글자가 없는 그림책은 관심 영역 밖이었다. 아이에게 그림만으로 만들어진 세상에 이야기를 맘껏 불어넣어보라고 하니 아이는 글자 없는 세상이 낯설고 재미없기만 하고, 상상력을 쥐어짜서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려니 창작의 고통(?)에 수고스럽고 성가셨다. 그래서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나 싶다. 그나마 작가와 엄마인 나와 아이가 함께 교감할 수 있었던 글자 없는 그림책의 작가는 ‘데이빗 위즈너’가 유일했던 것 같다. 그런데 눈높이를 위대한(나는 이 작가를 이렇게 부른다.^^) 데이빗 위즈너에게 맞춰놓았으니 다른 글자 없는 그림책은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데이빗 위즈너의 세계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앞의 글이 너무 길었는데 빌 톰슨의 <공룡을 지워라>가 글자 없는 그림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순간적으로 느꼈던 실망감의 배경은 이랬다. 하지만 책을 펼쳐 읽는 순간 이 정도면 꽤 완성도 높은 글자 없는 그림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끌어낼 수 있는 글인데 오히려 그림책 서두에 적은 몇 줄 글이 사족(蛇足)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빌 톰슨의 그림은 근접 촬영한 사진 같은 느낌을 준다. 사건 언저리의 잡다한 것들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오로지 사건의 중심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바짝 들이댄 카메라가 피부의 세세한 감정들을 놓치지 않듯 세 아이의 표정에 놀람과 공포 등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피부의 자연스런 주름, 옷의 구김, 사물의 음영, 빗방울과 빗방울이 그려내는 동심원, 햇빛과 구름까지 살아있는 표정들을 담아내고 있다. 도대체 이 물감의 정체가 뭘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빌 톰슨은 아크릴 물감을 사용했다고 한다.

<공룡을 지워라>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바짝 들이댄 시선처럼 하나의 사건에만 집중한 무난한 전개를 보인다. 비오는 날 공원에 간 세 아이들이 색색의 분필이 들어있는 가방을 발견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태양을 그리면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치고, 나비를 그리면 나비가 공원 한가득 팔랑거린다. 뭔가 짓궂은 표정의 사내아이가 그린 공룡 그림으로 인해 공원은 공포에 휩싸인다. 살아있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스가 아이들의 뒤를 쫒는다. 하지만 해결책 또한 마법의 분필에서 찾을 수 있었다. 마법의 분필이 들어있는 가방을 그대로 공원에 남겨두고 돌아가며 미련이 남은 듯 돌아보는 사내아이의 표정엔 아쉬움이 역력하다.

단순히 시간이나 계절의 흐름을 그려낸다든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풍경화를 감상하는 듯한 글자 없는 그림책은 지루하고 재미없다. 글자 없는 그림책의 최대의 이점, 그 공간 안에 상상력을 가득 채운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안에 독자가 오래도록 머물면서 과거로 혹은 미래로 세계를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는 열린 세상이 담겨 있었으면 좋겠다. 데이빗 위즈너나 손탠의 <도착>과 같은 걸작을 그래도 가끔은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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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합본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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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할 수확이 없었던 지난 11개월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굳은 위지로 달려들게 되는 12월의 시작, 그 육중한 몸매로 책장의 한자리를 제대로 차지하고 앉아서 언제쯤 눈길이 닿을까 기다리며 벌써부터 고서의 향기를 풍겨가는 책, 언제쯤 저것을 먹어치울 수 있을까 노려만 보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올해가 가기 전에 해치우기로 겁 없는 결심을 하며「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만나게 된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N.A. 바스베인스의 「젠틀 매드니스」등과 함께 애서가들에게 그 놀랄만한 몸집으로 명성이 자자한 책 목록에 이 책도 빠지지 않는다.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의 「위험한 책」에 등장하는 바닷가의 책으로 만든 집의 한 부분을 벽돌보다 더 튼튼하게 지탱해주고도 남을 만한, 떨어지는 책에 맞으면 반신불수가 될 수도 있을 위험한 책의 위상을 보여주는 묵직한 책들 말이다. 이런 책들은 흔히 두 번의 희열을 선사한다. 우선 덩치 값을 하느라 주머니 사정을 위협하는 가격의 벽을 넘어 우리 집 책장에 들여놓았을 때의 뿌듯함과 책장 앞을 오가며 노려보기를 계속하다가 작정하고 덤벼들어 마지막 장까지 말끔하게 먹어치웠을 때의 그 충만함이 바로 그것이다.

두 가지의 기쁨을 다 맛봤으니 이제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위한 친절한 안내서를 작성해 보자. 하지만 친절한 안내서가 되리라고 장담은 할 수 없다. 이 방대한 양의 글을 쏟아낸 작가조차도 오류들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포기하노라 공개적인 발언을 했으니 내게 따져 묻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혹시 내 안내서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또 다른 ‘이동조사원’이 시정하는 작업을 계속할 수도 있으니 알아서 업그레이드 하길 바란다.

이 책은 우선 여섯 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분권이 된 책들은 다섯 권인데 합본의 다섯 번째 이야기인 ‘젊은 자포드 안전하게 처리하다’는 분권된 책 4권에 보너스 스토리로 실렸다 한다. 시공간을 초월한 은하계 곳곳을 여행하는데다 영국이나 노르웨이처럼 경험은 없지만 익숙한 지명도 아닌 생소한 행성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오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얻게 되는 깨달음에 기준하면 어느 곳을 어떻게 여행했는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 책속으로 여행하고 싶은 히치하이커들을 위해서 간략한 정보만 요약해본다.

우선 중심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아서 덴트, 우회로 공사 때문에 집이 헐리는 순간 오래도록 알고 지내던 친구가 지구인이 아니라 외계인이라는 사실과 함께 초공간 고속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지구가 20분 후에 파괴될 거라는 엄청난 소식을 접하게 된다. 본의 아니게 지구의 마지막 생존자가 되어 목욕가운 차림으로 은하수를 여행하게 될 운명에 처한다. 포드 프리팩트, <히치하이커를 위한 여행 안내서>의 개정판을 준비하기 위해 자료 조사차 지구에 파견된 출판사 소속의 이동 조사원이다. 지구인 행세를 하며 지낸지 15년이 지났건만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 행성에 발이 묶여 지나가는 우주선을 만나 히치하이커를 해서 얻어 타고 떠나고 싶어 하는 참에 지구가 파괴될 순간에 가까스로 아서 덴트와 함께 탈출하게 된다. 자포드 비블브락스, 각각 독립적인 생각을 하는 두 개의 머리와 세 개의 팔을 가진 은하제국의 대통령이다. 은하계 역사상 가장 완벽하고 혁명적인 우주선 ‘순수한 마음 호’를 탈취해 우주를 지배하는 진정한 지도자를 찾아 나선다. 다소 충동적이고 난폭하고 제멋대로지만 매력있는 캐릭터다. 트릴리언(트리시아 맥밀런), 아서 덴트가 마음에 들어 했지만 어느 날 가장무도회에서 다른 행성에서 온 자포드의 매력에 흠뻑 빠져서 그와 함께 우주로 떠난다. 지구가 파괴된 후 지구를 극적으로 탈출한 아서 덴트와 재회한다. 훗날 아서 덴트가 유전자은행에 기증한 정자를 이용해서 랜덤이라는 딸을 얻게 된다. 이 중심인물들 주변의 흥미로운 캐릭터는 바로 로봇 마빈, 행성 하나 크기 만한 뇌를 가진 고급 로봇임에도 레스토랑에서 주차원으로 일하고 우주선의 문을 열어주는 하찮은 일에 쓰이는 신세에 대해서 심한 우울증과 편집증 증세를 보이는 로봇이다. 시니컬한 철학자의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마빈의 캐릭터가 더 멋지게 확장된 시리즈가 없어 아쉬움이 크다. 더글러스 애덤스가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하지 않았다면 히치하이커 시리즈는 계속 나왔을 테고 멋진 마빈을 그냥 그렇게 버려두진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인물 소개만으로도 벌써 전 우주를 한 바퀴 돌고 온 듯 힘이 든다. 이들이 시공간을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며 여행하는 행성을 대표적으로 몇 군데 꼽아보자면 행성을 주문 제조하는  행성 마그라테아, 그곳에서 지구라는 행성의 노르웨이 피오르드 해안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슬라티바트패스트라는 이름의 노인을 통해서 지구가 초지능적이고 범차원적인 존재들에 의해서 프로그램된 슈퍼컴퓨터였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한 컴퓨터 말이다. 그리고 초지능적이고 범차원적인 존재들의 정체가 밝혀진다. 그 밖에도 우주의 폭발장면을 보면서 만찬을 즐길 수 있는 우주 끝 레스토랑 밀리웨이스, 전 우주를 파괴하려는 크리켓 행성, 선사시대의 지구, 파괴되기 전의 지구, 지구를 그리워하며 떠돌다 지구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아서 덴트가 정착해서 샌드위치의 명인으로 살던 행성 라무엘라, 우주의 진정한 지도자라 불리는 노인이 사는 오두막. 시간을 거스르고 앞서가며 우주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이 기상천외하고 황당한 여행에 빠져들다 보면 차츰 내성이 생겨서 거대한 우주라는 개념이 시시껄렁해진다. 생쥐들이 주문 의뢰해서 만든 슈퍼컴퓨터 지구 안에서나 어느 행성 어느 시간대 속에서의 구성원들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책을 읽으려면 우선 Science Fiction이라는 장르의 구분에 너무 연연하여 기대치를 높이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놀라운 과학적인 지식의 경이로움 따위는 찾아보기 힘든 SF소설, 코믹 풍자소설이 SF의 옷을 빌려 입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지구가 폭발하기 전 아서 덴트의 집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도마에 오른 관료적 행정주의를 꼬집는 장면, 점성술의 점괘에 의거해 지구를 파괴해 버리고 마는 루퍼트 행성의 그레불론인,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기다리는 과정에서도 자신들의 잇속 챙기기에 바쁜 군상들을 보면서 전 우주를 희롱하는 더글러스 애덤스를 만난다.       

그리고 이 책에서 치밀한 구성과 논리와 개연성을 기대하지 마라.

앞의 이야기 속에 살짝 비친 복선을 뒤 이야기에서 발견했다 호들갑떨지 마라. 그건 아마도 어찌하다보니 그렇게 된 우연의 일치이지 작가가 의도한 바는 아닐 거다. 각각의 인물들의 결말을 굳이 알려고 하지 마라. 정 궁금하다면 히치하이커 시리즈의 광팬이었다가 더글러스 애덤스의 죽음으로 중단된 히치하이커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을 집필하게 된 이오인 콜퍼처럼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모아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기를 권한다. 누가 알겠는가? 시간 여행이 가능해진 세상이 온다면 당신의 이야기가 히치하이커 시리즈에 슬쩍 끼워 넣어질 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전 은하계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시‘롱랜드의 노래’를 쓴 랄라파에게 접근한 미래의 수정액 판매업자들처럼 어떤 변수가 개입한다면 가능할 법도 한 이야기다.(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 참조.) 라디오 드라마로 시작해서 책, TV드라마, 영화, 연극, 음반, 게임 그리고 타올 사업까지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시리즈 4번째 ‘안녕히, 물고기는 고마웠어요.’는 마감에 쫓겨 호텔에 갇혀서 원고를 썼을 정도라 하니 꼼꼼함과 치밀함까지 요구하기는 힘들 듯도 하다. 그나저나 타올 사업은 분명 대박이었겠다. 지나가는 우주선을 잡아 타고 우주를 여행하길 꿈꾸는 히치하이커의 필수품이 바로 타올이 아니던가. 언젠가를 대비해 슬그머니 솔기가 아주 튼튼한 타올을 미리 챙겨두고 싶어진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약간의 후유증을 조심하라.

아서 덴트가 알려주는 하늘을 나는 기술 ‘땅바닥을 향해 몸을 던지되 그 땅바닥이라는 목표물을 놓치는 것’ 그럴싸해 보이지만 2010년 지구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을 기억해라. 생쥐들이 주문 제작한 슈퍼 컴퓨터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너무 비참해 하지 마라. 로봇 마빈처럼 만성적 우울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주라고 별거 아니라는 거 이제는 다들 알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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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접시 위에 놓인 이야기 5
헬렌 니어링 지음, 공경희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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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과 그 반대편을 뭐라 부르면 좋을까...육식? 잡식? 아무튼 둘로 나눠 어느 한쪽에 서라고 강요한다면 나는 채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완벽한 채식주의자는 아니라서 두어 달에 한번 닭고기 가슴살을 먹는 정도고 다른 육류며 그 부산물들은 입에 대지 않는 편이다. 결혼 전 직장생활을 할 때는 구내식당의 점심 식사 자리와 회식 자리에서 혹은 교류가 깊지 않은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고기는 왜 안 먹어요? 원래 안 먹었어요?”라는 질문을 숱하게 들으며 살아왔다. 기분이 좀 좋을 때면 “아기 때부터 하얀 생선살은 받아먹었는데 빨간 고기는 톡톡 뱉어냈었데요. 그러니까 태어나서부터 고기는 입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에요.”하고 대답을 하지만 매번 날아오는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기에 지친 상태가 된다. 그런 나를 배려한다고 회식 메뉴를 고르는데 자꾸 내 이름이 거론되면 큰 죄를 지은 사람마냥 움츠러들게 된다. 지나친 배려가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몇 년을 함께 지내며 자연스레 깨닫게 돼서 나중에는 편해졌지만 말이다. 나 스스로 ‘채식주의자’라고 생각하거나 육식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채식의 장점을 떠벌리고 다닌 적이 없고 단지 육식을 좋아하지 않는 것뿐인데 나는 고기를 입에 넣고 있는 사람에게 “그런 걸 어떻게 먹어요?”라는 질문을 안 하는데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별스런 사람 취급하며 무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식상한 질문에 뻔한 대답...하지만 이 상황을 웃음으로 멋지게 날려줄 말을 찾은 건 20대 초반에 읽었던 <아라비안 나이트>에서였다. 우연히 발견한 문장, 지금은 앞뒤 내용도 생각 안 나고 그 방대한 책 속에서 다시 그 문장을 찾을 자신도 없지만 ‘내 뱃속을 동물의 무덤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글귀였다. 예상 질문에 이런 대답을 툭 던지면 한바탕 웃음으로 넘어가곤 했었다. 
 

결혼을 하고나서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주부의 입장이니 육류를 빼놓을 수가 없었다. 헬렌 니어링처럼 인생의 철학과 목표와 방향이 일치하는 동지 같은 남편 스콧 니어링과 함께 산다면 모를까. 성장기 아이에게도 균형 잡힌 영양을 위한 육류는 필요하고, 남편은 고기의 질을 따질 정도로 육류를 즐기는 사람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냄새 맡기도 힘들어하던 고기 요리를 먹지는 않지만 만들어 상에 올리기는 한다. 아이 입으로 들어가는 고기가 맛있다고 하면 뿌듯해지고, 간도 안 보고 요리하는데 맛이 좋다는 남편의 칭찬에 으쓱해 하는 걸 보면 난 ‘채식주의자’ 특히 헬렌 니어링의 강경한 채식, 자연주의 식사법의 편에 설 수는 없을 것 같다. 자신의 신념과 음식과 건강한 삶에 대한 철학을 채식과 자연주의 밥상을 들어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헬렌 니어링의 글이 다소 불편했다. 채식이든 육식이든 개인이 취향 정도로 생각하고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 내가 이럴진대 방대한 분량의 강경한 어조의 인용문을 읽어가는 내내 살인자 야만인 취급을 참아내야 하는 심기불편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까 싶다. 몇 개의 인용문을 예로 들면...

먼저 제 입을 핏덩이로 더럽히고, 제 혀를 도축된 것의 살에 닿게 하다니 대체 인간은 어떤 감정이나 마음, 이성을 가졌는지 의아하다. 움직이고, 지각하고, 목소리를 가진 것들을 죽여 그 시체 덩이를 식탁에 펼쳐 놓고, 그걸 맛좋은 식사라고 말하는 인간이 아닌가? 플루타크 
 

육식을 하는 자여, 그대는 사자, 호랑이, 구렁이를 야만스럽고 흉포하다고 말하면서, 하필이면 자기 손을 피로 물들이누나. 하지만 그런 동물에게는 살해가 생명 유지의 유일한 수단이다. 반면 그대에게 살해는 불필요한 사치이다. 왜 땅이 그대에게 먹이고 영양을 주지 못한다는 듯이 땅을 기만하는가? 그대는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넘치도록 갖고 있다. 사실 우리가 사자와 늑대를 죽이는 것은 자기 방어를 위해서지 먹기 위함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는 그런 동물은 평온하게 내버려둔다. 그리고 결백하고 길들여진 무기력한 동물들을 죽이는 것이다. 플루타크

 

창자를 창자 속에 묻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기괴한 죄악인가. 탐욕스런 몸이 그 안에 밀어 넣은 다른 동물의 몸을 취해 살찌는 것은 얼마나 기괴한 죄악인가. 살아 있는 생물이 다른 살아 있는 생물의 죽음으로 인해 살아야 하는 것은 얼마나 기괴한 죄악인가. 피타고라스

헬렌 니어링과 남편 스콧 니어링은 동물착취를 최소화하는 식이요법을 실천했다. 달걀이나 우유나 치즈를 사용하는 요리 또한 없다. 요리책이라 이름붙일 수 없는 이 요리책에 소개된 요리법은 야채와 과일과 견과 씨앗에 집중되어 있다. 단맛을 위해서는 꿀과 메이플 시럽을, 간을 위해서는 극소량의 천일염 정도를 첨가물로 사용한다. 조리법은 요리할 때 참조하려고 손때를 묻힐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서너 줄 분량으로 간단하고 단순하다. 육식에 대한 경계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부엌에서 요리에 매여 있는 시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한껏 높였다. 요리를 즐겨하는 부류가 아니라면 요리 시간을 최소화해서 나머지 시간에 음악이나 책을 읽든가 즐거운 일을 하는데 에너지를 쓰자는 페미니스트의 어조로 말이다. 강경하고 극단적인 자연주의 입장은 수용할 수 없더라도 신선한 천연의 재료와 첨가물을 최소화한 식단은 분명 건강한 삶을 위해 차용해 올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다. 요리가 고역이라 생각한다면 과감하게 부엌에서의 시간을 줄이자는 의견에도 찬성한다.  

 

세상에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과 요리를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 두 종류가 있는데 헬렌 니어링 자신은 요리를 잘하지 못하면서 잘하려고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는 요리를 잘하고 싶어 하면서 요리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사람이다. “나는 음식을 식도로 넘겨 뱃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일을 놓고 야단법석을 떠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배설물을 만들 것에 무엇 하러 마음을 쓰겠소?”라는 잔뜩 거드름 피운 말들보다 조지프 콘라드가 아내 제시 콘라드의 요리책 <소가족을 위한 간단한 요리>(1923) 서문에 적은 ‘좋은 요리라 함은 일상생활에서 소박한 음식을 성실하게 준비하는 것이지, 희귀한 요리를 기교 있게 꾸며 내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말의 소박함이 더 좋다.

‘대충 말고 철저하게 살자. 부드럽게 말고 단단하게 먹자. 음식에서도 생활에서도 견고함을 추구하자.’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 해줄만한 방대한 양의 인용문들은 수천 권에 이르는 도서관 서가의 요리관련 서적들 속에서 찾아낸 것들이다. 엄청난 독서량과 빈틈없이 완벽하고 꼼꼼한 성격이 보인다. ‘땀 흘려 일해서 먹고 살고, 땅에서 나온 먹거리로 건강한 삶을 살고, 여가와 휴식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삶의 틀에 갇히기보다 삶이 존중되는 조화로운 삶’을 꿈꾸는 데만 머물지 않고 실천하는 삶을 몸소 보여준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낸 니어링 부부의 범접할 수 없는 세계에서 난 그저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소박함만 배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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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을 보면 알 수 있어 과학의 씨앗 5
박정선 지음, 장경혜 그림 / 비룡소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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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른이라 해도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현재의 내 아이와 보조를 맞춰가면서 공감하고 감동받기 마련이다. 지금 그림책과 읽기책의 중간쯤 와 있는데 거꾸로 유아그림책을 읽는다면 아무래도 눈높이를 맞추기가 어려워진다. 아장아장 걸으며 종알종알 세상과 소통하는 아이들 눈높이에서 제대로 본다면 섬세하게 좋은 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미 유아그림책은 아이에게나 엄마인 나에게나 시시한 이야기가 돼버렸다. 비룡소의 <색깔을 보면 알 수 있어>는 과학그림책을 읽기 전의 유아에게 워밍업 차원에서 읽어주면 괜찮을 책이다. 색깔의 원리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얻기 전에 시각적인 차이를 통해서 색깔이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음으로써 과학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는 책이다. ‘과학의 씨앗’이라는 이 시리즈 타이틀에 담긴 기획 의도 그대로다.

색깔로 맛있는 음식이나 깨끗한 양말을 구분할 수 있고, 나무나 강물이 병들었는지 건강한지 구별해 낼 수 있다. 하늘과 공기의 색깔로 밤과 낮 그리고 사계절이 흐르는 것을 알 수 있고, 얼굴색을 통해서도 화가 났는지 행복한 지 감정을 읽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설명하는 듯 밋밋한 어조의 색깔 이야기에 알록달록 예쁜 색깔의 옷을 입혀준 장경혜 작가의 그림은 틀림없이 유아들의 눈을 즐겁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둥근 해가 떴습니다’, ‘우리 동네 미자 씨’,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등등 장경혜 작가의 그림 속에는 내가 알고 지내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녹아 있어 들려주는 이야기만큼이나 친근하고 따스하다. 일곱 살 아이는 한번 쓱쓱 넘겨서 읽어보고 아기 책이라고 던져두고, 엄마인 나는 장경혜 작가가 그려낸 풍경 속의 숨은 즐거움들을 찾아다닌다. 특히 별들이 가득한 푸른 밤하늘 정취에 흠뻑 취하고 만다. 4~6세 권장 도서라지만 3,4세 정도가 읽기에 적당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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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과 선녀 비룡소 전래동화 18
오정희 지음, 장선환 그림 / 비룡소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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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출간된 『옛이야기와 어린이책(김환희 저)』을 읽고 나서 여러 가지 다양한 각도로 만들어진 그림책들을 비교하면서 읽는 새로운 재미가 생겼다. 지금까지 전래동화나 세계명작처럼 이름난 원작을 재구성한 그림책인 경우에는 글 작가와 그림 작가의 역량을 따지거나 어느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지 비교해서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생각했었다. 읽을 책은 많은데 굳이 원전이 같은 이야기를 중복해서 읽어줄 필요가 있겠냐는 짧은 소견에서였는데 다양한 이야기들을 비교하면서 읽어줘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서 새로운 인식이 생긴 셈이다.

 

거의 대부분이 구전으로 글이 아니라 말로 전해져 오는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들이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른 특색을 보이는 옛이야기 중 작가가 어느 이야기를 취합하느냐에 따라 옛이야기의 방향이 결정된다. 특히‘선녀와 나무꾼’ 혹은 ‘나무꾼과 선녀’의 이야기는 다양한 진행과 결말로 유명하다. 같은 이야기지만 개개인이 조금씩 다르게 기억하는 옛이야기의 대표라 할 수 있다. 하늘나라로 올라간 선녀와 나무꾼이 재회해서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 하늘나라로 올라간 나무꾼이 하늘나라 임금이 내준 힘든 과제를 해결하고 선녀와 아이들과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 지상의 어머니가 그리워 땅에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지 못하고 슬퍼하다 죽어서 수탉이 되었다는 이야기 등이 있다. 이 책 『나무꾼과 선녀』에서는 ‘수탉 유래담’을 담아내고 있다. 여권신장 바람에 편승해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제목을 익숙하게 꿰찼을지는 모르겠지만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제목은 옛이야기의 초점이 선녀에게 맞춰줘 있고 나무꾼은 따라가는 캐릭터로 잡아나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비룡소에서 출간된 『나무꾼과 선녀』는 우리에게 익숙한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제목 대신 ‘나무꾼과 선녀’라는 제목을 택함으로써 나무꾼이 중심이 되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는 강한 의지를 짐작케 한다.

 

줄거리를 정리할 필요를 못 느낄 만큼 뼛속까지 아는 이야기지만 워낙 다양한 유형들이 소개된지라 이 책 『나무꾼과 선녀』에서 다루고 있는 방향을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보자. 사냥꾼으로부터 노루의 목숨을 구해준 보답으로 선녀의 날개옷을 훔쳐 선녀와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나무꾼이 아이 넷을 낳을 때까지 날개옷을 돌려주지 말라는 노루의 당부를 어기고 결국 날개옷을 꺼내 보였다가 선녀와 이별하고 만다. 다시 노루를 찾아가 하늘나라로 올라갈 방법을 찾게 된 나무꾼은 하늘나라에서 가족들과 재회를 하게 되지만 땅에 두고 온 어머님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이 커져만 간다. 보다 못한 선녀가 나무꾼에게 날개달린 용마를 타고 어머님을 뵙고 오라고 말하는데 오랜만에 재회한 아들이 좋아하는 박고지 죽을 서둘러 먹여 보내려는 어머니의 마음이 일을 그르치고 만다. 뜨거운 박고지 죽이 말 등에 떨어지고 그 바람에 나무꾼이 말에서 떨어지고 용마는 사라져서 하늘로 돌아갈 길은 영영 막혀버렸다. 밤낮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슬퍼하던 나무꾼은 죽어서 수탉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나무꾼과 선녀』가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장성환 그림 작가의 목탄화라 할 수 있다. 전래동화 대부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국적인 수묵화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그림이 눈에 띈다. 무심한 듯 거침없이 혹은 정성스레 꼼꼼하게 목탄으로 그려낸 그림이 하얀 여백과 어우러져 시원하게 열려있다. 하늘 아래 시원하게 드러난 계곡물은 그 발원지인 깊은 산을 짐작케 하고, 바위산이 멀리 보이는 숲은 그 깊이를 한없이 감추고 있고, 험준한 산세는 끊임없이 이어져 백두대간과 합류라도 할 기세다.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와 더불어 들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림의 힘이다. 

『나무꾼과 선녀』와 다른 각도로 나무꾼이 하늘나라에서 옥황상제의 과제를 이행하고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책은 시공주니어의 『선녀와 나무꾼』을 들 수 있다. 비룡소의 『나무꾼과 선녀』와 시공주니어의 『선녀와 나무꾼』을 함께 읽는다면 이 이야기의 거의 모든 이야기들을 읽는 셈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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