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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날 - 오늘의 일기 ㅣ 보림 창작 그림책
송언 글, 김동수 그림 / 보림 / 2011년 12월
평점 :
30년을 훌쩍 넘은 시간을 마음이 되짚어 달려간다. 면 단위 하나 밖에 없었던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면 아랫마을 윗마을 온통 축제와 같았던 시절이었다. 매일 뛰어 노는 게 전부였던 아이에게 시간 맞춰 가야할 곳이 생겼고, 배우는 기쁨이 있고, 그래서 제대로 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기대감으로 설레고 긴장됐던 내 어릴 적 초등학교 입학하는 날. <학교 가는 날>에 소개된 동성국민학교 1학년 2반 구동준과 한솔초등학교 1학년 2반 김지윤의 교차일기를 읽으며 그 옛날 국민학교 입학하던 날의 기억와 올해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엄마의 마음이 조우한다. 나에겐 구동준도 김지윤도 낯설지 않은 아이들이다.
구동준이 초등학생이 되는 과정은 추억여행과 같았다. 소매 끝이 연실 닦아대던 콧물에 반질거리던 시절이라 초등학교 입학식 날에는 옷핀으로 고정시킨 하얀 손수건이 가슴에 훈장처럼 빛났었다. 학교 운동장은 입학하는 아이들과 동네 어르신들이 가득 메워서 북적거리고 소란스러웠다. 나란히 줄 맞춰 선 아이들의 얼굴엔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과 설렘이 가득했었다. 영희와 철수와 바둑이를 소리 높여 불러대는 것을 시작으로 글자를 깨치고, 셈을 익히며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는 느낌이었고, 뭔가 중요한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에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었다.
초등학생 김지윤의 모습은 바로 내 아이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취학통지서를 받고 아이의 지난 동영상들을 챙겨보고 아기 수첩과 앨범을 꺼내보며 감회에 젖는 지윤이 엄마가 곧 내 모습이었다. 대한민국의 치열한 교육현장에 첫 발을 들여놓는 아이를 보며 군대 영장 나온 날 기분이라는 지윤이 아빠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취학 전 예방접종도 마무리하고, 엄마 손이 가던 일들을 혼자서 해보도록 시켜보기도 하고, 초등학교 생활에 대한 적응 훈련도 시켜보는 마음은 아마도 부모의 불안감 때문이리라. 예비소집일도 커다란 행사였던 옛날과 달리 학교에서 배포한 유인물만 받아왔던 썰렁한 예비소집일은 맥 빠진 기분이 들었고, 한반에 50명이 넘어 북적대던 입학생이 고작 한반에 25,6명 정도가 전부인 오붓함도 낯설었다.
올해 초등학생이 된 아이의 운동회가 다음 주에 있다. 입학식뿐만 아니라 운동회 풍경도 사뭇 달라졌다. 바리바리 음식을 준비해서 온가족이 총출동하던 운동회를 생각한다면 큰 낭패를 볼 뻔했다. 맞벌이로 참석 못하는 부모들이 많아서 부모가 참석하는 아이들에게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끼게 한다는 의견이 있어서 점심시간을 급식으로 대신한다고 한다. 초등학교 입학을 기다리는 아이의 일상과 입학식 풍경이 시대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 책가방을 준비하는 것 말고는 매일매일 지구 최후의 날인 것처럼 푸짐하게 놀았던 행복이 있던 시절, 가끔씩 불안과 걱정이 슬며시 생겨났지만 신나는 놀이로 날려버리곤 했었다. 그에 비해 요즘 아이들은 한글과 기본 셈과 영어까지 욕심껏 무장하고 초등학생이 된다. 놀이로 허비할 시간이 아깝기라도 하듯 유치원 졸업식을 끝내자마자 바로 초등학교 입학이 다가온다. 옛날에 비하면 지식으로 무장하고 영특해 보이지만 왠지 불안감은 더 커지는 이 기분은 아마도 내 위치가 부모의 자리다 보니 느껴지는 감상일 것이다.
<학교 가는 날>은 여러 세대가 함께 둘러앉아 읽으면 좋을 그림책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가 있다면 안성맞춤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의 생활이 시대에 따라 잘 드러나 있다. 많이 달라보이지만 새로운 장을 여는 순간의 두려움과 설렘이 닮아있다. 가족 간에 이야기도 풍성해지고, 깔깔대는 웃음도 있고, 그러면서 서로 공감과 격려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 옛날, 큰 소리로 싸울 줄도 모르고 얌전하기만 한 딸을 초등학교에 입학시켜놓고 불안한 마음에 몰래 학교 운동장을 서성거렸던 친정 엄마의 마음에 절절하게 공감한다. 오늘도 나는 학교 등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서 운동장을 가로 질러 내게 달려올 아이의 표정을 살피며 마음을 쓸어내릴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