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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는 법 ㅣ 그림책은 내 친구 22
콜린 톰슨 글.그림, 이지원 옮김 / 논장 / 2010년 4월
평점 :
원주(原註: 원래의 글에서 단 주석이나 주해)와 역주(譯註: 번역자가 단 주석)가 난무하는 보르헤스의 작품을 읽다보면 단 몇 초간의 방심도 책과 멀찍이 떨어뜨려놓는 글의 오만함에 입이 딱 벌어지는 감탄과 더불어 나 자신을 먼지만큼 쪼그라들게 만드는 좌절을 함께 맛보곤 한다. 보르헤스를 읽음에 있어 역주의 도움이 절대적인데 간혹 역자마저도 ‘그 뜻이 애매모호하다’라든지 ‘...로 추측할 뿐 확실치 않다.’라는 의견을 피력할 때는 그래, 전문가들에게도 쉽지 않단 말이지..하면서 슬며시 미소가 새어나오기도 한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인한 정신적 피로감을 회복하려면 몇 달 혹은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보르헤스 얘기를 그림책 리뷰의 서두로 끄집어 낸 이유가 있다. 영생불사라는 심오한 철학적 주제를 환상적인 일러스트로 구현해낸 콜린 톰슨의 『영원히 사는 법』을 읽는 순간 바로 떠오른 것이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이었기 때문이다.
보르헤스는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단편에서 우주를 무한수의 육각형 진열실들로 구성된 도서관이라고 정의했다. 육각형의 각각의 면들은 똑같은 크기와 형태를 가진 다른 진열실들로 연결된 끝을 측정할 수 없는 영원의 도서관에서 인간은 불완전한 사서들이라는 것이다. 『영원히 사는 법』은 지금까지 출판된 모든 책이 꽂혀 있는 도서관의 문이 닫히면 도서관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책의 주인공 피터는 요리책 책장 ‘ㅁ’부분의 <모과류>라는 제목의 책속에 살고 있는 가족 중 한명이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에는 도서관에서 개인적인 혹은 세계 보편적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어 우주의 존재 이유를 밝히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는데 『영원히 사는 법』의 피터는 <영원히 사는 법>이라는 사라진 책의 기록 카드를 발견하고 그 책을 찾아 밤마다 도서관 도시를 헤맨다. 「바벨의 도서관」에 등장하는, 미래에 대한 비밀을 간직한 예언서를 찾아 방대한 육각형의 방들을 헤매는 사람들의 터무니없는 희망과 절망이 몇 년째 도서관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는 피터와도 함께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피터는 우연처럼 실마리를 찾게 된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에서 한 사서가 어느 육각형 방에서 나머지 모든 책들의 암호임과 동시에 완전한 해석인 책을 훑어보고 신과 유사하게 되었고 그를 찾으러 헤매는 숭배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영원히 사는 법』에서 네 명의 선인을 만나 <영원히 사는 법-초보자를 위한 영생>이란 책을 건네받고 ‘영원한 아이’와 대면한 피터는 「바벨의 도서관」의 숭배자들에게는 꿈의 실현일 것이다.
<영원히 사는 법>이라는 책을 읽고 자기 정신을 잃지 않은 유일한 사람, 그래서 영원한 삶을 살고 있는 영원의 아이는 영원한 삶을 피터에게 들려준다. 영원한 삶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영원의 아이의 모습을 묘사한 글로 대신해 본다. ‘아이는 어리면서 늙었고, 열 살쯤이며 동시에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피부는 아이처럼 매끈했지만 피곤해하며 활기가 없었습니다. 눈은 어려 보였지만 지치고 멍했습니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결국 가진 것은 끝없는 내일들뿐인 영생불사는 애써 구할 만한 매력적인 삶이 아님을 에둘러 말한다. 그렇게 원하던 <영원히 사는 법>이란 책을 손에 들고 있는 피터는 읽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 버리는 그 책을 절대 읽지 말라는 영원한 아이의 조언을 수용했을까? 영원한 아이로 살아갈 것인가 현명한 아이로 남을 것인가.
이 책에는 공공연하게 드러나 있으면서도 아는 사람만이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 숨어 있다. 지금까지 출판된 모든 책들이 꽂혀있는 이 도서관의 서가를 잘 둘러보면 큭큭 웃음이 터져 나온다. ‘전쟁과 편육’ ‘해저 2만 보리’ ‘채털리 부인의 사냥’ ‘폭풍의 언더웨어& 제인 데님’ ‘로미오와 줄자’ ‘베니스의 상추’ ‘와인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몇 권의 책제목만 소개해도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저자의 친절함인지 역자의 친절함인지 책 뒷부분에 원래의 문학작품들과 영화제목들이 실려 있다. 그림책을 읽는 아이들은 절대 모를, 어른들만 아는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훗날 많은 책들을 읽고 난 아이가 다시 꺼내보고 지금의 나처럼 키득키득 웃게 될 날을 고대한다.
철학적인 심오한 주제를 다룬 책, 어른의 마음에 반향을 크게 불러오는 그림책을 읽으면 항상 아이의 느낌이 궁금해진다. 일곱 살 아이의 우주에서 이 책은 어떤 이미지일까? 조심스레 물어본다. “만약에 영원히 사는 법이라는 책을 얻게 되면 어떻게 할 거야? 영원히 사는 법을 읽어볼래? 아니면 읽지 않을래?” “엄마는 참...책을 읽어보고도 몰라요? 영원히 사는 게 좋은 게 아니잖아요. 영원히 산다는 것은 시간이 얼어붙어 버린다는 거예요.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고 고통도 느껴보고 고통을 극복하고 행복도 맛보는 게 훨씬 낫잖아요.” 아이라고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책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편견은 우주 밖으로 던져버려야 한다. 그래, 내가 연못이라면 아이는 우주다.
보르헤스의 첫 밥벌이 수단은 도서관 사서였다고 한다. 지나친 독서로 인해 서른 살 이후부터 차차 시력을 잃기 시작해서 훗날 국립도서관장직에 임명됐을 때는 거의 시력을 상실한 상태였다고 한다. 애서가들의 눈을 사로잡는 환상적인 도서관의 모습을 위트 넘치는 유머를 담아 화려한 색채로 그려낸 콜린 톰슨은 색맹이라고 한다. 도서관장의 시력은 맹인에 가깝고, 세계가 열광하는 환상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그림 작가는 색맹이라니...삶은 진정 아이러니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