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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아저씨 ㅣ 민들레 그림책 5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 길벗어린이 / 2001년 1월
평점 :
권정생 선생님의 글에 어울리는 그림 옷을 입혀주신 정승각님과 함께 작업한 그림책들을 좋아하는데 『강아지똥』『오소리네 집 꽃밭』『황소 아저씨』가 그것이다. 특히『황소 아저씨』는 겨울철에 읽으면 추위마저 녹일 정도로 마음 한켠이 훈훈해지는 따스한 이야기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앞에서 언급한 세 작품 중 아이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은 『황소 아저씨』이다.^^
황소 아저씨의 포근하고 넉넉한 마음이 겨울 추위를 녹인다. 생쥐 남매들은 추운 겨울날 엄마를 잃었다. 날씨는 춥고 양식은 귀하고 먹이를 구하는 방법마저 서툴 게 뻔하다. 제일 큰 언니 생쥐는 아직 볼볼 기어 다니지도 못하는 동생들을 위해 덩치가 산만한 황소아저씨 구유의 밥찌꺼기를 찾아 황소 아저씨의 등을 타넘는 모험을 감행한다. 황소 아저씨의 등을 타넘다 들켜 두려움에 떨며 사정하는 생쥐에게 황소 아저씨는 몇 번이라도 괜찮으니 배부를 때까지 가져가라고 넉넉한 인심을 베푼다. 등을 타넘지 않고 궁둥이 밑으로 돌아가겠다는 생쥐에게 동생들 기다릴 테니 등 타넘고 빨리 가라는 말까지 보태는 황소 아저씨는 외양간의 산타클로스다. 인심 넉넉하고 사람 좋은 얼굴의 미소란 바로 이런 걸까? 턱을 괴듯 앞발 하나 구유에 걸치고 구유 속 음식 찌꺼기에서 콩 한 조각 챙겨든 생쥐를 바라보는 미소에 흐뭇함과 푸근함이 넘쳐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한다. 이 그림은 『황소 아저씨』의 앞표지 그림이기도 하다.
아기 생쥐들이 그동안 굶어죽지 않게 음식을 나눠준 고마운 황소 아저씨를 처음 만나러 가면서 꽃단장 하는 모습은 귀엽고 앙증맞다. 추녀 밑 고드름을 녹여 눈곱 닦고 콧구멍 씻고 수염 씻는 모습과 막내둥이에게 왼쪽 볼에 코딱지 묻었다고 지적하는 언니 말에 바로 얼굴을 씻는 아기 생쥐들의 모습에 인정을 베풀어준 고마운 분에 대한 감사가 담겨있는 천진난만한 예의와 첫 대면의 설렘이 함께 한다. 아기 생쥐들이 구유에 들어가 찌꺼기를 실컷 먹는데 구유는 황소 아저씨의 밥그릇이니까 똥을 누거나 오줌을 누거나 코딱지를 묻혀서는 안 된다고 하는 장면과 함께 아이가 가장 유쾌하게 읽는 대목이다.
『황소 아저씨』의 정승각님의 그림은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투박하고 거칠고 입체감을 주는 독특한 느낌을 준다. 손바닥으로 지면을 쓸어보면 입체감이 느껴질 것 같은 독특한 느낌은 각종 동물들과 물건들을 돋을새김 부조를 뜨고 모시를 풀칠을 해서 덮은 위에 그린 그림에서 나오는 것이라 한다. 푸르스름한 색과 은가루 같은 흰 색이 주조를 이룬 그림이 황소 아저씨와 아기 생쥐들이 외양간에서 함께 가족처럼 살게 되는 후반부에 가서는 따스하고 밝은 황금빛이 푸른빛을 조금씩 몰아낸다. 인정 많은 황소 아저씨와 생쥐들이 가족처럼 더불어 살아가며 따뜻하게 겨울을 나게 될 외양간은 어느 곳보다 따스하고 밝은 세상이다. 그림이 들려주는 또 하나의 메시지다.
가난한 사람들의 겨울나기는 더욱 힘들다. 기초생활마저 힘든 가정에 겨울 추위는 이중고를 던져 준다. 그래서인지 날씨가 추워지면 가슴 저린 이야기들을 자주 듣곤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근근이 겨울을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쓸쓸하게 생활할 것이다. 우리 동네 노인정의 무료급식 줄은 요 며칠 매서운 날씨에도 여전히 길다. 엄마를 잃고 어린 동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언니 생쥐의 두려움을 다독거려주는 황소 아저씨의 푸근한 인심처럼 따스하고 훈훈한 소식들이 많이 들려왔으면 한다. 책 속 이야기에서 멈추지 말고 이 책을 읽은 아이가 황소 아저씨가 될 수 있는 멋진 기회를 찾아 나서서 주위에 작은 따스함이라도 나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