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똥 민들레 그림책 1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 길벗어린이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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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님의 작품들 속에는 선생님 자신이 녹아있다. 작품은 작가의 분신이라지만 이렇듯 완벽하고 진정성이 팍팍 느껴지는 분신이 존재하기는 힘들다.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들을  보면 소외되고 힘없는 사람들을 향한 시선이 늘 슬프도록 따스했던 권정생 선생님이 보인다. 특히 『강아지똥』은 온 몸을 녹여 아름다운 민들레를 피워낸 강아지똥처럼 살다 가신 선생님의 인생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아동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권정생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수십만 부가 팔린 『몽실 언니』『강아지똥』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허름한 5평 남짓한 흙집에 살며 고무신도 꿰매신고 한 달에 5만원으로 생활하며 교회의 종지기로 살았다는 이야기가 믿기기나 하겠는가. 그렇게 세상을 살다가 마지막 떠나시는 길에 남긴 말씀이 자신의 책으로 생기는 인세는 자신의 책을 사서 읽는 아이들에게 돌려주는 게 마땅하다 하셨다고 하니 이보다 더 완벽한 무소유가 어디 있으며 아동문학가로 사셨던 삶의 이보다 더 완벽한 마무리가 어디 있을까.


골목길 담 밑 구석에 자리한 강아지똥은 부리로 콕콕 쪼아대며 더럽다고 쏘아붙이는 참새나 길에 떨어진 흙덩이의 놀림에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소달구지에서 떨어진 흙덩이는 강아지똥을 달래면서 안타까운 사연을 들려준다. 흙덩이는 지난여름 가뭄이 심해서 흙덩이가 키우던 아기 고추를 살려내지 못하고 죽게 해버린 사연을 이야기하며 괴로워한다. 흙덩이마저 소달구지가 실어가 버리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존재라는 사실에 상심한 강아지똥은 그렇게 골목길 구석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게 된다. 슬그머니 싹이 돋아나고 있는 민들레가 하늘의 별만큼 고운 꽃을 피울 거라는 말에 자신의 한심한 처지가 떠올라 한숨짓던 강아지똥에게 민들레는 예쁜 꽃을 피우기 위한 도움을 요청한다. 자신이 쓰일 곳이 있다는 반가운 마음에 민들레 싹을 힘껏 껴안은 강아지똥은 사흘 동안 내린 비에 녹아 땅속으로 스며든다. 어느 화창한 봄 강아지똥이 있던 자리엔 아름다운 민들레가 피어올랐다. 하찮고 쓸모없는 존재인 흙덩이 한 줌이나 강아지똥 한 무더기도 예사로 보아 넘기지 않는 마음이 써내려간 고운 이야기다. 


처음 이 책을 아이에게 권할 때는 여느 아이들처럼 똥이나 방귀 같은 요소에 웃음보가 터지는 아이였을 때였다. 돌담 밑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똥을 한 무더기 누고 있는 강아지 흰둥이의 뒤태를 담은 표지그림부터 까르르 웃곤 했었다. ‘똥 똥’ 단어에는 어김없이 뭐가 그리 좋다고 깔깔거렸던 것이 서너 살 무렵이었다. 흰둥이는 변함없이 똥을 누고 있는 강아지지만 『강아지똥』을 읽는 아이는 해마다 커간다. 일곱 살 아이는 조금씩 강아지똥에 감정이입을 하고 있다. 출판사에서 『강아지똥』의 초판본 찾기 이벤트도 벌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강아지똥』처음 세상에 나온 게 1996년이다. 얼마 안 있으면 이 책을 읽고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어 자신의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 주며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 만큼의 세월이 쌓였다는 얘기다. 좋은 책은 시대를 가리지 않으니 그 아이들도 『강아지똥』과 함께 깔깔 웃고 가슴 아파하고 감동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4,50년을 훌쩍 뛰어넘어 감동을 전달하는 외국의 그림책들을 보면서 부러웠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강아지똥』이 그 출발점이 되어줄 것 같다.    


권정생 선생님의 글은 톡 쏘거나 자극적인 향신료가 없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무미건조하고 밋밋하다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극적인 맛은 순간의 미각을 확 돋워주기는 할 테지만 금방 질려버려서 오래도록 즐길 수는 없다. 물려버린 자극적인 음식에서 입을 씻고 마음을 씻고 싶을 때 찾게 되는 책이 바로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들이다. 민들레 꽃씨 날리는 봄에는 『강아지똥』을, 뙤약볕 아래의 채송화 봉숭아 접시꽃을 볼 때면 『오소리네 집 꽃밭』의 오소리 아줌마를 생각한다. 겨울이면 『황소 아저씨』의 마음씨 좋은 황소 아저씨와 새앙쥐 식구들에게 마음이 쓰이고, 눈이 녹기 시작하고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하면 『아기너구리네 봄맞이』의 호기심 많은 아기너구리들을 생각한다. 


읽고 난 후 쉽게 다른 책으로 마음을 넘길 수 없는 감동적인 그림책을 만나면 나는 늘 내 아이에게 감사한다. 독신으로 늙어갔다거나 아이가 없었다면 아동문학은 나와 상관없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내게 아이가 있어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으며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처럼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음을 항상 축복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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