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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몰래 ㅣ 좋은책어린이 창작동화 (저학년문고) 29
조성자 지음, 김준영 그림 / 좋은책어린이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요즘 우리 집 아빠와 아들은 근처에 사는 아이의 이모부와 사촌형과 함께 캐치볼을 즐깁니다. 습하고 끈적끈적한 공기가 피부에 달라붙어 짜증을 불러오던 지난밤에도 ‘싸나이’들끼리 캐치볼을 하고 흠뻑 땀에 젖어 들어와 터프한 샤워들을 했지요. 야구에 흥미가 생겨서 푹 빠져 사는 사촌형과는 달리 사실 우리 집 녀석은 운동을 마치고 아빠가 사주는 간식거리들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어제도 넷이서 햄버거 가게에 들렀다 온 모양입니다. 햄버거나 콜라를 먹지 않는 우리 아이는 모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르는 햄버거 가게에서 멍하니 있다 보니 감자튀김이라도 먹어보라고 권한 것이 시작이 되었지요. 저도 햄버거나 콜라를 먹지 않으니 감자튀김 하나 먹자고 햄버거 가게에 들르기도 뻘쭘해서 자주 먹는 편은 아닌데 어제처럼 햄버거 먹는 사촌형과 세트 메뉴를 나란히 나눠먹으면 딱 좋지요. 아빠와 운동이나 산책을 가면 꼭 들르는 가게에서 사먹는 음료수도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마트에서 함께 갔을 때 사달라는 음료수가 있기에 물었더니 아빠가 사줘서 먹어봤는데 맛있더라는 얘기를 합니다. 이렇듯 엄마는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제재하던 것들을 아빠는 슬그머니 들어주곤 하지요.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엄마와의 시간은 집에서 늘 먹는 밥과 같습니다. 습관적으로 마시는 물, 저절로 들이쉬고 내쉬는 공기와도 같지요. 집보다는 일 때문에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아빠와 보내는 시간은 평소 엄마가 비싸다는 이유로 몸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규제하고 있는 자극적인 특별외식에 가깝지요. 고생은 좀 하더라도 어쩌면 신세계를 발견할 수 있는 모험 여행과도 같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 아빠와의 추억은 기억 속에 인상적인 흔적들을 남겨두곤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까지 사라지는 법이 없지요. 나의 어린 시절도 비슷한 기억들이 있습니다. 일찍 자라는 엄마의 성화를 피해 아빠와 애국가가 흘러나오는 시간까지 서부영화를 보곤 했었는데 웬만한 서부영화의 고전들은 그때 다 봤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위험하다고 꺼리셨던 스케이트를 사들고 들어오셨던 아빠의 모습과 학교에서 받아온 상장을 액자를 만들어 자랑스레 걸어두시던 모습도 생각납니다. 그렇게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시던 든든한 지원군의 모습 말입니다.
요즘 아빠들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아빠 몰래』에 등장하는 은지 아빠처럼 격무에 몸을 돌볼 시간조차 없어서 결국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로 바쁘고 피곤하게 살아가는 게 대부분의 아빠들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일터로 나가고 아이들이 잠든 다음에 들어오지요. 산타클로스도 아니면서 아이들이 잠 잘 때 왔다 가지요. 쉬는 날은 밀린 잠을 보충하듯 늦잠자기 예사이고 피곤해하고 귀찮아하는 모습에 함께 놀아 달라고 부탁하기도 사실 미안한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지요. 그러다 간혹 아이에 대한 열의가 넘치는 슈퍼맨 아빠를 보면 우리 아빠와 비교되면서 속상해하지요. 은지의 친구 지수의 아빠를 봤을 때처럼 말이지요. 깔끔한 외모에 영어도 완벽하게 구사하고 쉬는 날이면 지수와 어떻게 놀아줄까 고민하고 딸과 딸의 친구들까지 관심을 기울이고 출장 갔다 오면서 딸과 딸의 친한 친구들 선물까지 챙겨올 정도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아빠지요. 그렇잖아도 평소 아빠의 모습에 불만이 많았던 은지는 완벽한 아빠인 지수의 아빠를 보면서 드디어 화가 폭발하고 말지요. 친구 민경이가 알려준 쪽지 주문에 의지해 “우리 아빠, 지수 아빠처럼 되게 해주세요!”를 적어 가슴에 품고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은지. 소원 쪽지 때문인지 아빠를 관심 있게 관찰하기 시작한 은지는 배불뚝이에 아무 때나 방귀를 뿡뿡 뀌어대고 게임할 때 반칙도 스스럼없이 하는 아빠지만 늘 자신의 편에 서주는 아빠가 점점 좋아집니다.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해서 은지에게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하지 말라며 엄마에게 말씀하시는 아빠를 보면서, 응급실로 실려 간 아빠의 휴대폰에 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서 은지는 다른 누구의 아빠보다 자신의 아빠가 최고라 생각합니다. 은지의 말처럼 백골난망(白骨難忘)...세상 모든 자식들에게 부모는 이런 존재이지요.
아이가 어릴 적에 주말에 일하는 아빠 없이 어린이 도서관에 데리고 다니면 아이를 끼고 앉아 책을 읽어주는 아빠들을 부러워했었습니다. 그런 아빠를 아이에게 맞춰주지 못한 나의 남자 보는 안목을 자책했었지요.^^ 하지만 은지는 제게 말합니다. 다른 집 아빠와 비교하지 말라고 말이지요. 우리 집 아빠는 아이가 훌쩍 커서 함께 캐치볼 하러 다닐 나이가 됐으면 좋겠다고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입버릇처럼 말했답니다. 본인이 야구를 좋아하니 아들과 캐치볼 하는 흐뭇한 상상을 했었겠지요. 이제 아이가 제법 자라서 아빠와 캐치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갑니다. 어린이용 글러브를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얘기도 합니다. 엄마가 규제하는 컴퓨터 게임시간을 슬쩍 늘려주거나 엄마는 사주지 않고 미루는 것들을 냉큼 사주면서 엄마에게는 안 먹히는 일들을 도모하는 아빠와 아들의 관계는 앞으로 더 돈독해지리라 생각됩니다. 어제 컴퓨터 게임하다 문제가 생겼는데 아빠가 있어야 해결된다고 하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빠에게 증세를 보여줍니다. 물론 아빠는 단번에 해결해줬지요. 아침부터 엄지손가락 들어 보이며 “역시 아빠 최고야!!”를 외칩니다. 오늘도 캐치볼 하러 간다고 했는데 애석하게도 비가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