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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되는 그리스로마 신화 ㅣ 공부가 되는 시리즈
글공작소 지음 / 아름다운사람들 / 2011년 1월
평점 :
신화는 세상을 향해 난 창이다. 아는 만큼 볼 수 있는 세상이 넓다. 넓은 창을 갖느냐 좁다란 창을 갖느냐 혹은 콱 막힌 벽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당연히 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이 다른 법이다. 신화를 연구하는 학자가 아닌 이상은 역사와 문화와 예술과 건축 등 다방면에서 이해의 폭을 넓게 하기 위함이 신화를 읽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인류가 지금까지 지나온 길 곳곳에 스며든 신화를 만나는 일은 매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 옛이야기처럼 친숙하고 즐거운 일이다. 처음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기 시작한 게 중학생 무렵이었다. 3학년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이듬해 3월이 될 때까지의 무료하고 어정쩡한 시기에 친구들에게 책과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었다. 주말의 명화나 명화극장을 통해 본 영화 얘기로 시작된 이야기가 슬슬 책 얘기로 넘어가면서 즐겨서 소재로 삼았던 이야기가 그리스로마 신화 속 이야기였었다. 이야기를 시작할 때면 앞에서 옆에서 순식간에 몰려들던 친구들의 기대에 찬 눈빛이 행복하게 기억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는 판타지와 로맨스와 출생의 비밀과 복수와 호러와 전쟁과 모험 활극 등이 죄다 들어있는 매력적인 이야기였으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면 그리 즐거워했음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까뮈의 ‘시지푸스 신화’처럼 문학작품의 주된 모티브가 되거나, 무수한 문학작품 속에서 많이 인용되거나 비유되는 그리스로마 신화 속 이야기가 감질난 느낌이 들어서 본격적으로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처음 읽은 그리스로마 신화도 생각난다. 범우비평판 세계문학전집의 1번이 ‘그리스 로마 신화’였는데 범우사 사르비아 문고를 한창 읽을 때라 자연스레 같은 출판사의 책을 골라 읽게 됐다. 다 읽었음에도 장님 코끼리 더듬듯 흥미로운 부분만 떼서 기억하고는 그저 끝냈음에 만족하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어설프게나마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비록 문고판이었지만 ‘오이디푸스 왕’이나 ‘아가멤논’같은 책들에도 무턱대고 덤벼들곤 했었다. 십대 시절, 넘쳐나던 호기심이 무모한 도전을 이끌었던 시기의 시작이 그리스로마 신화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만큼이나 흥미로웠던 ‘아라비안 나이트’ 또한 신밧드의 모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알리딘의 요술램프가 ‘아라비안 나이트’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서점을 돌며 ‘아라비안 나이트’의 완역판을 찾아다닌 것도 그 시절의 이야기다. 물론 제대로 된 ‘아라비안 나이트’ 완역판을 만난 건 5,6년의 세월이 더 흘러 1992년이 되어서였다.
처음 신화를 읽을 때는 그리스 신과 로마 신의 명칭에 대한 정리가 필요했다. 같은 신임에도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서 다루는 명칭이 달랐음을 모르고 신들의 명단이 두 배로 부풀어 있음을 알고 황당했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서로 많이 헷갈린다. 성인이 되고 신화는 이렇게 읽어야 재미있다는 것을 알려준 책은 단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다. 신화 속 장소와 신화를 소재로 한 예술 작품들을 곁들여 소개한 이 책은 신화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어준 셈이다. 이 책 이후로 국내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루는 방식이 가벼워지고 친근해지지 않았나 싶다. 어린이들을 위해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출판돼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고, 어른 아이 책 구분 없이 화려하고 다채로운 그림과 사진으로 옷을 입은 신화 이야기들을 자주 만날 수 있게 됐다. 물론 지금 리뷰로 써야 할 부분에 사설만 길어지고 있는 이 책도 그런 맥락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올림포스 최고의 신 제우스의 아버지인 티탄족 크로노스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흥미롭고 비교적 잘 알려진 신화 이야기들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지루하거나 골치 아플 틈 없이 재미있게 읽었다. 신화에서 영감을 얻거나 신화를 재현한 미술 작품들을 풍부하게 실었고, 신화에서 유래한 흥미로운 상식들을 본문 옆에 박스를 달아서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신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그리고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놓고 있어서 앞뒤로 오가며 책을 읽어야 하는 수고를 덜어줬다. 예를 들면 아킬레우스와 트로이의 목마와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이야기는 한군데 모여 있어야 이해가 빠르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게 되고,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느라 고향을 떠났다가 오래도록 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됐고, 오디세우스의 아내인 페넬로페는 집에 남아 모두가 죽었다고 단정 지은 남편을 기다리며 구혼자들의 구애에 시달리며 옷감을 짜야했으니 말이다. 이 책은 그런 구성력이 좋다. 갈피를 잡을 수 없게 여기저기로 튀던 이야기들을 연결시키려고 엄청 애를 먹으며 읽던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생각하면 세상 참 좋아졌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헤라클레스의 열두 과업, 테세우스의 여섯 가지 모험, 바람둥이 제우스, 판도라, 피그말리온, 에로스와 프시케, 나르키소스, 오이디푸스, 카산드라...낯설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공부가 되는...’ 시리즈 중 하나로 출간된 책이라 제목에 턱하니 ‘공부가 되는 그리스로마 신화’라고 붙은 게 흠이라면 흠이다. ‘공부가 되는..’이라면 부모들은 확 덤벼들지 몰라도 아이들의 마음은 저만큼 도망가 버리지 않을까 싶다. 호기심과 흥미만 갖고 슬슬 빠져들다 보면 아마 저절로 신화에 대한 지식이 쌓이게 될 텐데 말이다. 최근에 보도된 소식에 따르면 트로이 전쟁이 신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것이 유적지가 발견되면서 밝혀졌다고 한다. 한 아마추어 고고학자의 연구와 열정으로 트로이 유적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도 이 책에 소개되고 있다. 이 책 한권만 제대로 읽어도 그리스로마 신화의 별미들을 많이 맛본 거라고 할 수 있다. 신화 속 다른 이야기들이 궁금하다면 호기심을 더 확장시키면 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