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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오줌보 축구 ㅣ 국시꼬랭이 동네 16
이춘희 글, 이혜란 그림, 임재해 감수 / 사파리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잃어버린 자투리 문화를 찾아서’라는 겸손한 타이틀로 시작한 국시꼬랭이 시리즈는 신간이 나올 때마다 ‘주목받는 신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꿰차며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는 책이다. 우선 떠오르는 제목들을 나열해보면 <똥떡>, <아카시아 파마>, <눈 다래끼 팔아요>, <고무신 기차>, <밤똥 참기>... 이 시리즈를 추천하는 연령대의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책장에 이 시리즈 한두 권쯤은 꽂혀 있을게다. 2010년 바로 오늘, 이 책을 아이와 함께 읽는 부모라면 이 시리즈가 소개하는 자투리 놀이 문화에 어정쩡하게 발을 걸쳐놓았으리라 짐작된다. 어제 일처럼 새록새록 떠오르는 옛 추억일 수도 있고 낯설지는 않지만 경험이 없기는 아이와 마찬가지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아이들의 부모 세대보다는 한 세대 정도 앞선 세대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리즈의 근간인 <돼지 오줌보 축구> 또한 내게는 절반 정도만 걸쳐있는 추억거리다. 지금이야 마트에 가면 다양한 부위별로 다양한 형태로 금액만 지불하면 골라 먹을 수 있는 먹거리지만 어릴 적만 해도 잔치에나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먹거리였다고 기억된다.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돼지 한 마리씩 잡던 시골할아버지 댁 마당 풍경이 떠오른다. 몸이 약했던 엄마에게 돼지쓸개를 먹이시려는 할아버지를 피해 다녔던 엄마의 얼굴도 떠오르고, 아직도 순대를 멀찍이 피해 다니게 된 결정적 이미지로 박혀있는 돼지창자에 이것저것 쑤셔 넣으며 순대를 만들던 시뻘건 손들에 대한 기억도 꽤 선명하다. 그 와중에 돼지는 버리는 게 하나도 없는 동물이라는 말과 함께 오줌보로 축구를 즐겼었다는 설명을 들은 기억이 난다.
이 책의 주인공 명수는 방앗간집 할아버지 환갑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바로 돼지 오줌보를 얻어 축구할 생각에 신이 난 것이다. 친구들과 편을 나눠 텃논에서 축구를 하지만 명수네는 한골도 넣지 못하고 공을 빼앗으려 뒤엉키는 바람에 돼지 오줌보 축구공마저 터져버리고 만다. 울음보가 터진 명수를 친구들은 잔치 음식과 짚 공으로 달래주면서 푸짐한 잔칫집 풍경으로 훈훈하게 마무리한다. 추수가 끝난 논에서 벌어진 축구 경기의 리얼한 중계는 차범근 해설자도 울고 갈 정도다. 축구를 하는 아이들과 응원하는 아이들의 표정 또한 생생하게 살아있다. 이 책의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 책을 추천한다면 아마도 이 부분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줄 것이다.
장난감이 넘쳐나서 확 달아올랐다 금방 식어버려 오래도록 마음을 주지 못하고 내팽개치기 일쑤인 요즘 아이들이 돼지 오줌보로 만든 축구공의 귀함을 알 턱이 없다. 그래서인지 옛 추억의 감상에 젖곤 하는 어른들에 비해 아이들은 이 책에 그저 어리둥절한 반응을 많이 보인다. 주된 독자층인 아이들보다 어른들에게 더 어필하는 책이라는 아쉬움을 떨쳐낼 수가 없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를 기반으로 하는 전통문화에 대한 책, 특히 사라져가는 놀이문화를 다루고 있는 이런 책들은 기획의도도 훌륭하고 사명감을 갖고 진행해야 하는 아주 소중한 작업이다. 늘 격려와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귀퉁이가 너덜너덜해지도록 꺼내보고 싶게 만드는 책 읽는 재미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변명 같지만 이 고민이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질질 끌고 온 이유임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