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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이 사는 나라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6
모리스 샌닥 지음, 강무홍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를 키우다 보면 조용하게 낮은 목소리로 아이를 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조용히 타이르면 아이도 그에 상응하는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꿈은 아주 쉽게 부서지기 마련이라서 엄마의 표정이 험악할수록 엄마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그나마 엄마의 말이 그 효력을 발생한다. 엄마의 입에서 ‘괴물딱지 같은 녀석’이라는 말이 흘러나오는 걸 보면 맥스는 아마도 전적이 화려한 말썽꾸러기일 것이다. 게다가 엄마의 말을 ‘그럼,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야’라는 말로 되받아 칠 정도면 이제는 혼나다 못해 살짝 반항을 하는 경지에 올랐음을 의미한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맥스’ 같은 녀석들이 너무나 흔하다. 그래서 ‘괴물들이 사는 나라’가 이제는 정겹기까지 하다. 워낙 입소문이 요란한 책이었고 오히려 아이들은 열광적으로 좋아한다는 평을 듣고도 처음에는 이 책을 아이에게 권하기가 살짝 꺼려졌던 게 사실이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칼데콧 수상작이라는 유명세와 더불어 험상궂은 괴물들이 가득한 그림책이 아이에게 너무 자극적이라서 출간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던 작품이다. 하지만 40년은 훌쩍 넘긴 지금의 세상은 그보다 더한 괴물들이 판치는 세상이니 그저 그림책 세상 속의 애교정도로 봐줄만 한다.
말썽피우기 일쑤인 맥스는 험상궂은 늑대 옷을 입고 못된 장난들을 일삼는다. 드디어 엄마의 극약처방이 내려진다. 저녁밥도 안주고 방에 가둬두기! 그런 엄마를 향해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라고 오히려 큰소리치는 맥스. 역시 말썽꾸러기 중 말썽꾸리기 맥스다. 방에 갇힌 맥스는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맥스의 방에서는 나무와 풀이 자라기 시작하더니 나뭇가지가 천장까지 뻗치며 방 전체를 뒤덮고 맥스의 방은 세상 전체가 된다. 드디어 맥스는 맥스호를 타고 넓은 바다를 항해하게 된다. 꼬박 일 년쯤 항해한 끝에 괴물나라에 도착하는 맥스. 맥스가 누구던가? 천하의 말썽꾸러기! 엄마마저 잡아먹어 버릴 거라고 대들던 괴물중의 괴물이 아니던가.. ‘무서운 소리로 으르렁대고 무서운 이빨을 부드득 갈고 무서운 눈알을 뒤룩대고 무서운 발톱을 세워 보이는’ 괴물들의 엄포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맥스. 드디어 괴물들을 꼼짝 못하게 하고 괴물나라의 왕으로 추대된다. 맥스의 세상이 되어버린 괴물나라..괴물소동은 지겨울 정도로 계속된다.
하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도 없는 장난은 금방 흥미를 잃게 마련이다. 맥스는 제멋대로 괴물소동도 지겹고 이제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엄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때 머나먼 세계저편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온다. 맥스는 으르렁대며 겁주며 울부짖는 괴물들을 뒤로하고 시간을 거슬러 자기 방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맥스의 방에서는 따뜻한 저녁밥이 맥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책에서 하얀 여백은 맥스를 감싸고 있는 온화하고 사랑 가득한 세계를 의미하는 듯하다. 흰 여백으로 둘러싸였던 그림부분이 맥스의 장난이 심해지면서 더 큰 비중으로 늘어나고 엄마에 의해 방에 갇히면서 점점 더 비중이 커지다가 급기야 맥스의 상상 속 나라인 괴물나라에서는 여백이 사라지고 그림이 온통 다 차지하고 만다. 그러다가 괴물나라 왕 노릇이 시들해질 무렵엔 다시 여백이 등장하고 마지막장으로 옮겨갈수록 그림부분은 계속 축소되다가 마지막장에선 모두 사라져버리고 ‘저녁밥은 아직도 따뜻했어.’라는 단 한 줄의 문장만 오롯이 남는다.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온 맥스의 늑대 옷 모자가 슬며시 벗겨져있다. 말썽꾸러기 맥스가 좀 의젓해지려는 모양이다.^^ 이렇게 의도된 화면구성을 따라가는 재미 또한 이 이 책의 매력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부분은 다 제각각일 수 있지만 아마도 여기엔 이견이 없으리라..
모리스 샌닥의 바램처럼 어른들의 시선으로 억지로 꿰어 맞춘 어린이가 아니라 제 나이만큼의 생각과 고민을 가진 살아 숨쉬는 ‘진짜 아이들’ 얘기가 넘치는 신나는 세상을 꿈꿔본다. 모리스 샌닥의 다른 작품 ‘깊은 밤 부엌에서’의 미키와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맥스의 이야기가 넘치는 세상이라면 엄마는 매일 밤 피로감에 쓰러질지언정 아이들에게는 그야말로 환상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