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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탁 톡톡 음매~ 젖소가 편지를 쓴대요 ㅣ 어린이중앙 그림마을 1
도린 크로닌 글, 베시 루윈 그림, 이상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와 고백하건대 순전히 아이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 처음 그림책을 들추고 다니던 시절에 지금 생각하면 아주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너무나 생소한 미지의 분야가 바로 그림책이었는데 마음에 거슬렸던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의인화 시킨 동물들의 이야기가 태반이라는 사실이었다. 짐짓 사람인 체하는 동물들의 행동이 유치해 보이고 과연 이런 책들을 아이들이 마음에 들어 할까 의문이 생기면서 그림책을 아래로 내려 보는 우를 범했었다. 한마디로 무식한 엄마의 어리석음이었다. 그동안 그림책 관련된 자료들을 통해서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고 3년 넘게 아이와 거의 매일같이 그림책 속에서 살다보니 직접적으로 깨닫게 된 사실 하나가 초창기의 내 무지를 확 날려준다. 보편적으로 어린이들은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는 읽고 싶어 하지 않고, 여자아이는 남자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도 읽지만,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정말 실제로도 그렇다. 그래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면 여러 가지로 제약이 따르니 아이들과 친숙한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은 의인화시킨 동물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이야기로 바꿔버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물론 젖소와 암탉과 오리가 타자를 치고 농부아저씨와 협상을 한다는 것이 그 어느 동물 주인공보다 사람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가 사람들의 세상에서는 아주 지리멸렬한 노동쟁의 현장이야기가 되겠지만 젖소와 오리가 구식타자기를 탁탁 톡톡 쳐대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아주 즐거운 일이니 그 즐거움을 날려버리지 말았으면 한다.
브라운 아저씨네 농장의 젖소들은 타자 치는 걸 좋아한다. 브라운 아저씨의 고물타자기가 어느 날 엄청난 사건을 몰고 온다. 젖소들의 헛간 문에 브라운 아저씨에게 보내는 편지가 나붙은 것이다. 헛간이 너무 춥다고 전기담요를 요구하는 글자가 타자기로 톡톡 찍혀 있다. 딱 잘라 거절하는 브라운 아저씨에게 또 다른 편지가 문에 나붙는다. 전기담요를 주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니 우유를 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다음날은 더 심각한 내용의 편지가 날아든다. 헛간의 암탉들까지도 합세를 해서 전기담요를 요구하면서 달걀도 줄 수 없다는 내용으로 번지며 브라운 아저씨를 압박해대는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브라운 아저씨의 경고장이 중재자로 나선 오리 편에 젖소들에게 배달이 되고 젖소들은 오랜 회의 끝에 최후의 협상안을 오리를 통해서 제시하게 된다. 결국 원만한 타결이 이루어진 듯 젖소들과 암탉들은 전기담요를 덮고 아주 편안하게 잠을 자는 장면이 나온다. 브라운 아저씨 또한 오랜 협상타결을 이루고 달콤한 잠을 잘 수 있었을까? 젖소들과 브라운 아저씨 사이의 중재자로 나섰던 오리의 멋진 한방이 기다리고 있으니 마지막까지 섣부른 마무리를 하지 말자. 역시 농장 연못에서 다이빙이나 하며 지낼만한 오리가 아니라 했더니 도린 크로닌과 베시 루윈의 최신작을 보니 대통령에도 출마를 한다고 한다.
굵고 대담한 필치의 수채화는 젖소가 타자기로 편지를 쓰는 희한한 농장의 이야기와 제대로 어우러진다. 실룩거리는 오리의 엉덩이, 젖소의 둔중한 뒤태, 동물들의 파업 현장으로 허둥대며 달려가는 브라운 아저씨의 모습... 굵은 테두리 선과 대충 그린 듯한 그림이 거칠고 지저분한 느낌보다는 농장의 파업현장을 생중계 하는 것 같은 현장감과 생동감을 주고 있다. 요구사항을 끝까지 관철시키는 젖소의 우직함이나 중재자로 나서서 마지막에는 잇속을 챙기는 오리의 영리함과 비교해서 동물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브라운 아저씨가 가엾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브라운 아저씨의 반격을 기대해 보는데 글쎄 더 큰 수난이 예상되니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