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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양 딜라일라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48
존 베멀먼즈 마르시아노 글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림책을 선택하는 여러 가지 이유들 중 단순하게 양을 너무 좋아하는 아이 때문에 양이 주인공인 이 그림책을 골랐다. ‘마들린느’시리즈로 잘 알려진 루드비히 베멀먼드의 손자의 작품이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할아버지의 ‘마들린느’를 그리워하는 팬들을 위해 마들린느 시리즈를 선보이다가 처음으로 자신의 캐릭터로 만든 주인공이 바로 아기 양 ‘딜라일라’라고 한다. 사랑스럽고 정이 많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찾아나가는 용기 있는 아기 양이다.
딜라일라가 레드 아저씨네 농장에 오게 된 이유는 순전히 레드아저씨의 형편 때문이었다. 양을 대량으로 기르는 농장에서 훈련이 잘 된 양은 너무 비싸서 레드 아저씨의 형편에는 어림도 없기에 훈련받지 않은 아기 양을 살 수 밖에 없었다. 딜라일라와 레드 아저씨는 농장의 모든 일을 함께 한다. 농장에는 1년 내내 할 일이 넘친다. 힘들고 고된 일이 될 수도 있지만 레드와 딜라일라는 서로를 의지하며 즐겁게 일을 한다. 추운 겨울에도 딜라일라를 따뜻한 집안에서 재우며 함께 아침도 먹고 서로의 존재에 대한 감사를 나누며 지낸다. 봄이 찾아오고 겨우내 자란 딜라일라의 털을 깎아 시장에 내다팔아 큰돈이 생긴 레드 아저씨는 딜라일라를 위해 양을 더 사기로 한다. 양공장에서 배달된 12마리의 양들은 제대로 훈련받은 양들이었다. 걸을 때도 줄을 맞춰서 걷고 목소리도 한 목소리를 낸다. 12마리의 양들이 하루 종일 농장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양털생산’을 목표로 그저 풀을 뜯어먹는 일이었다. 딜라일라는 농장 일을 돕는 즐거움이나 숨바꼭질의 즐거움에 대해서 알려주려고 하지만 오히려 딜라일라만 외톨이가 될 뿐이었다. 슬퍼하는 딜라일라를 보면서 레드 아저씨도 슬퍼진다. 훈련받은 양들에 비해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낀 딜라일라는 결국 양들과 같이 행동하기로 하고 딜라일라의 표식인 레드아저씨의 종이 달린 목걸이를 떼어내고 양의 무리 속에 섞여 생활하게 된다. 다른 양들처럼 하루 종일 풀만 뜯어먹는 생활이 계속된다. 그렇게 계절이 지나고 다시 봄이 찾아오지만 레드 아저씨는 내내 슬픔과 외로움이 가득한 얼굴로 묵묵히 힘든 일만 했고 딜라일라도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결국 다른 양들과 같아지기를 거부하고 레드의 친구로 다시 돌아온 딜라일라...레드와 딜라일라는 기뻐서 얼싸안는다. 다시 눈부시게 행복한 날들이 계속된다. 결국 자신이 다른 양들에 비해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않아 '모자람'이 아니라 행복의 가치기준이 '다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딜라일라를 보고 있자니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다른 12마리의 양들을 보고 있자니 제도권 안에서 틀에 박힌 교육을 받고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자유로운 영혼의 즐거움조차 모른 채 제대로 된 길인지 가고 싶은 길인지 의식조차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는 건 아닌지 안쓰러운 생각과 함께 말이다. 남들과 다르지만 행복을 찾아 과감한 선택을 한 딜라일라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내 아이는 자꾸만 제도권 안으로 밀어 넣고 있는 이중 잣대를 갖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정해진 틀과 형식과 규범 안에서 숨막혀 한다면 슬쩍 딜라일라의 이야기로 대안을 제시해 주고 진정한 행복을 찾아 나서는 아이의 어깨를 토닥거려줄 수 있을까?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이가 행복해 하는 일이라면, 이렇게 '행복한 딜라일라'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