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것을 좋아하는 임금님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97
안노 미츠마사 글, 그림 | 송해정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대개의 경우 그림책을 고를 때는 작가에 대한 완벽한 사전지식을 갖춘 상태에서 대표작들을 우선 챙겨서 보는 편인데 이 책은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이 그림에 끌려서 선택한 책이다. 미리보기로 몇 장 살펴본 아이가 무턱대고 사달라고 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다른 책들과 함께 주문해서 본 책이라서 나중에 자료를 챙겨보게 됐다. 이 책의 작가인 안노 미쓰마사는 ‘여행 그림책’과 ‘수학, 과학 동화’로 유명한 모양이니 <커다란 것을 좋아하는 임금님>은 주류에서 조금 동떨어진 느낌도 든다. 아마 작가에 대해서 미리 알았더라면 다른 책을 먼저 읽었을 것이다. 우연히 발견한 이 책은 그림책이 보여줄 수 있는 상상의 세계에 대한 경외감이 들게 하는 책이다. 그림책으로 표현해 낼 수 없는 것이 있을까? 우리가 상상하고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는 게 바로 그림책 세상이다.

무조건 커다란 것만 좋아하는 임금님의 나라는 흡사 거인국에 온 난장이들 같다. 자기 몸집만한 왕관을 머리에 쓰고 다니는 임금님은 지붕보다 높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수영장만한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마당만큼 넓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다. 칫솔도 시계도 커튼도 나이프와 포크와 접시들도 모두 어마어마하게 큰 사이즈를 자랑한다. 심지어 초콜릿을 좋아하는 임금님을 위해 만들어진 초콜릿은 백 년 동안 먹고도 남을 만한 크기다. 초콜릿을 많이 먹은 탓에 충치가 생겨서 이를 뽑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임금님은 의사의 작은 집게가 성에 차지 않는다. 결국 대장장이들은 무지무지하게 큰 집게를 만들어내고 도르래 등을 이용해서 아주 커다란 집게로 아주 작은 충치를 뽑을 정도로 큰 것에 집착하는 임금님이다. 커다란 새장, 커다란 연못, 커다란 물고기, 커다란 화분에 집착하던 임금님은 화분에 심은 튤립 알뿌리에서 피어날 아주 커다란 튤립을 기다린다. 과연 커다란 것을 좋아하는 임금님 마음에 드는 꽃이 피어날까?

책 속에 등장하는 것들 중에 기형인 것처럼 거대한 모습이 아닌 것은 생명이 있는 것들뿐이다. 임금님의 명령에 따라 무조건 커다란 나라에서 버둥거리고 힘겨워하는 백성들, 새들, 말들, 사과 한 알, 화분에서 피어난 튤립까지...절대권력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자연의 영역이 아니겠는가. 엄청나게 커다란 화분에서 피어난 작은 튤립 한송이를 보면서 임금님은 막강한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을까?

끝으로 우리가 상상하고 꿈꾸는 세상을 담아낸 안노 미쓰마사의 무한상상력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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