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감자 하나 감자 둘 ㅣ 그림책 보물창고 36
신시아 디펠리스 지음, 황윤영 옮김, 앤드리아 유렌 그림 / 보물창고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펼쳐서 첫 장을 마주하고 있으면 마음 한편이 찌릿찌릿해진다. 자식들에게 알맹이는 몽땅 내어준 듯 막대기처럼 마른 몸매로 황량한 산비탈의 감자밭에 서 있는 오그래디 부부 모습은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 셔츠 깃처럼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하다. ‘오그래디 할아버지 할머니는 헐벗은 바위투성이 언덕에서 쓸쓸하게 살았어요. 자식들은 모두 제 갈 길을 찾아 아주 넓은 세상으로 떠났지요.’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굳이 시골에 거친 농사일로 손마디가 툭툭 불거진 부모님이 계시지 않더라도 자식들이 자기 몫의 인생을 살 때까지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는 부모님 생각이 절로 난다. 노후자금이 든든해서 한가로운 전원생활을 즐기는 모양새가 아니니 가슴이 더 아프다.
감자 하나로 부부가 세 끼니를 때우고, 할머니의 흘러내리는 머리를 고정시켜줄 머리핀도 하나, 어둠을 밝혀줄 양초도 단 한 자루, 만약을 대비해 아껴둔 금화도 딱 한 닢, 여기저기 구멍 난 담요도 한 장, 누더기 외투도 하나뿐이어서 겨울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번갈아 입어야 하는 상황이다. 남루하기 짝이 없는 생활이지만 하나뿐인 의자를 두고 호리호리한 몸 때문에 나란히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큰 욕심 없이 소박하게 사는 삶에 만족하며 사는 부부다. 말이 소박이지 사실은 극빈의 삶이다.
바위투성이 언덕 비탈에 가꾼 감자밭에 마지막 감자를 캐는 날(어이쿠 이를 어쩌나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감자밭 맨 끝 이랑에서 마지막 감자를 캐면서 오그래디 할아버지는 혹시 미처 찾지 못한 감자가 있을까 싶어서 땅을 좀 더 깊이 파다가 커다란 솥을 하나 발견한다. 감자밭의 마지막 감자 하나를 솥에 담아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서둘러 부르고 감자 하나가 둘이 되어 나오는 걸 보고 요술 솥임을 알게 된다. 무엇이든 두 배로 불려주는 요술 솥 덕분에 살림살이가 불어나는 과정은 신나기까지 하다. 고작해야 머리핀이 늘어나고 감자가 늘어나고 양초가 늘어나는 것이지만... 하나뿐인 의자를 둘로 만들려던 할아버지의 계획은 솥 안에 들어가지 않아 이뤄지지 않고 할머니는 고이 아껴둔 금화 한 닢을 요술 솥에 넣어 금화를 만들어낸다.
여기까지는 흔히 아는 화수분 요술 솥의 이야기들과 비슷한 결말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오그래디 할아버지 할머니가 빛나는 이유는 바로 이 순간부터다. 보통의 경우라면 금화 불리기에 전념할 텐데 살아가는 데 정말 필요한 것은 마음을 나누며 함께 늙어갈 친구라고 결론짓고 마지막으로 요술 솥을 멋지게 사용해서 또 한 쌍의 선량하고 소박한 오그래디 부부를 만든다. 그리고 미련 없이 요술 솥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놔서 또 다른 가난하지만 선량한 사람들에게 행운의 기회가 돌린다.
욕심 없고 만족함을 알고 착하게 살아 온 부부에게 요술 솥이 제대로 찾아와 그간의 노고를 위로해주고 친구라는 선물까지 줬으니 오그래디 부부의 여생은 편안할 터이다. 옛말에 ‘착한 뒤끝은 반드시 있다’ 하였으니 지금껏 내 것을 얻고자 남을 밟고 올라선 적 없고, 그릇된 일에 적을 둔 적이 없었으니 언젠가 내 고단한 삶에도 어떤 형태로든 요술 솥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