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리네 집 꽃밭 민들레 그림책 2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 길벗어린이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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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리 아줌마가 살짝 들여다보고 탄성을 질렀던 학교 꽃밭은 내 어릴 적 초등학교의 모습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 한눈에 보기에도 금방 이름이 튀어나올 정도로 낯익은 얼굴들이다. 봉숭아, 채송화, 접시꽃, 나리꽃, 맨드라미, 다알리아, 과꽃... 친근하고 편해서 소홀하게 대접했던 꽃들이었는데 요즘은 구경하기 힘든 꽃들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100미터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운동장도 없는 학교가 대부분이니 화단 가꾸기에 공을 들이는 학교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하긴 운동장은 그 주인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수업이 끝나도 가방 집에 던져두고 다시 운동장으로 달려가 뛰어놀곤 하던 아이들이 요즘은 너무 바쁘다. 어릴 적에 늘 보고 자랐던 꽃들이라 수십 년이 흘러도 그 모습을 바로 알아보는 것처럼 아이를 자연 속에서 키워야 하는데 식물도감에서 사진이나 그림으로 만나니 내겐 소중한 추억이 아이에겐 특별할 것 없는 일에 호들갑 떠는 엄마로 비칠 뿐이다.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면서 옛일이나 주절거리며 늙어가는 노인네가 되는 것 같지만 여러모로 아쉽고 안타깝다.   

회오리바람에 날려 읍내 장터까지 날아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학교 운동장 둘레의 꽃밭을 구경한 오소리 아줌마는 집으로 돌아가 그렇게 멋진 꽃밭을 만들기로 작정한다. 오소리 아저씨를 재촉해서 꽃밭 만들기를 시작하지만 오소리 아줌마는 오소리 아저씨의 괭이질을 매번 막아서게 된다. 괭이가 쪼는 자리마다 패랭이꽃, 잔대꽃, 용담꽃 들이 이미 자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제야 집 둘레에 지천으로 핀 꽃들을 새삼 발견하게 되는 오소리 아줌마... 이른 봄 진달래 개나리부터 겨울 산 하얀 눈꽃까지 오소리 아줌마네 집은 이미 근사한 꽃밭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오소리네 집 꽃밭>은 우리 땅에서 자라나는 꽃들에 대한 애정과 그 속에서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삶의 행복을 오소리 부부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강아지 똥처럼 보잘 것 없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과 우리 것에 대한 향수가 이야기 속으로 자연스레 흐르는 권정생 선생의 글이 정승각의 그림과 잘도 어우러진다. 특히 스케치처럼 보이는 앞 뒤 표지 안쪽의 그림들을 보면 오소리에 대한 습성과 꽃들의 특징에 대한 메모를 보면 참 정성을 많이 들였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메모를 꼼꼼히 살펴보니 오소리는 한번 짝짓기를 한 짝과 평생을 함께 한다고 하니 오소리 부부의 모습이 더욱 정겹고 부럽다. 회오리바람에 날려 장터까지 갔다 왔으면서 제 발로 걸어서 갔다 왔다고 시치미 뚝 떼고 말해도 그런가보다 믿어주고 갑자기 꽃밭 만들자고 성화를 부려도 귀찮은 내색 없이 괭이질을 하는 오소리 남편은 노년을 함께 하고픈 내 남편상에 거의 근접한 모습이다. 오소리 부부처럼 사계절 자연이 그려내는 그림 속에 들어가 그렇게 하하하 호호호 함께 웃으며 늙어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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