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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을 드려요
하인츠 야니쉬 지음, 엄현아 옮김, 젤다 마를린 조간치 그림 / 넥서스주니어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새옹지마(塞翁之馬)’ 속의 늙은이는 인생사, 불운에 지나치게 슬퍼하지도 또 행운에 지나치게 기뻐하지도 말 것을 경계하는 초탈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 책 <행운을 드려요>에 등장하는 네모씨는 막무가내로 낙관적이다. 식사를 하기 위해 식탁 위자에 앉아 아내의 음식을 기다리는 네모씨와 두 발을 네모씨 다리 위로 걸치고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고 있음이 분명한 표정의 강아지 뿌뿌, 그리고 네모씨의 아름다운 아내...그렇게 세계 제일의 행운아라고 믿고 있는 네모씨의 일곱가지 행운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집을 나서다 계단을 굴러 바닥으로 떨어진 것도, 바닷가로 난 길을 따라 걷다 배가 와서 부딪게 된 것도, 공짜표로 바다 여행을 떠나려다 다리 위에서 가방을 놓쳐 옷들이 죄다 물에 빠진 것도, 배에 묶인 밧줄에 발이 걸려서 바다 속으로 빠지게 된 것도 네모씨 한테는 죄다 행운이었다니 참으로 한없이 낙천적이다. 다소 어이없어 하는 표정과 이야기 초반까지만 해도 열심히 이야기하는 네모씨와는 달리 ‘의자 옮기는 소리’와 ‘서로 다른 생각 둘’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네모씨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던 아내도 차츰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 시점에서 이 책의 독특한 그림과,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는 이중적 이야기 구조에 대한 설명을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이 책의 그림은 나무판에 연필과 물감으로 그린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서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모든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 있고, 나무가 흡수한 물감은 나무 자체의 은은함이 더해져서 본래의 색깔보다 몇 곱절은 더 고와 보인다. 보도블럭도 하늘도 바다도 해변가 모래사장도 모두 나뭇결 위에서 표현되고 있어서 아주 색다른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 책의 또 한가지 독특함은 네모씨가 들려주는 과거 이야기 속에 현재의 상황을 나타내주고 있는 연극의 지문과 같은 몇 단어들을 나열하여 현재의 네모씨네 상황을 얘기해 주고 있다. 이야기와 함께 식사가 진행되면서 줄어드는 감자빵의 개수라든지 식탁 밑의 상황이라든지 네모씨와 부인의 마음상태를 나타내는 소리로 현재의 상황을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마지막 장의 ‘입술 넷, 입 둘, 뽀뽀 하나, 끝!’는 정말 위트 넘친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것도 잃어버렸던 열쇠를 찾게 되어서 기막힌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강물에 가방을 빠뜨려서 옷들을 죄다 잃어버린 것도 오래된 옷들을 과감하게 없애 버릴 기회를 잡은 거라고 생각하는 네모씨의 이 터무니없는 낙천주의와 긍정적인 사고가 수많은 행운을 불러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옆에 있으면 저절로 전염이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사람 네모씨는 자신의 인생 최대의 행운으로 부인을 만난 사건을 꼽는다. 자세한 내막은 책으로 만나보시길, 더불어 네모씨의 기분 좋은 터무니없음에도 살짝 전염되어 보시길 권한다.
그리고 보너스 Tip 이 책은 저렴하면서도 색다르고 감동적인 프로포즈를 궁리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적극 권하고 싶다. 혹은 발렌타인 데이나 기념일에 틀에 박힌 선물에 식상해 하는 연인을 위해서 신선한 무언가를 찾는다면 그런 분에게도 추천한다. 그림책은 아이들의 특권이기는 하지만 아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