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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꽃을 피웠어요 - 정일근 시인의 우리 곁의 이야기 2 ㅣ 좋은 그림동화 18
정일근 지음, 정혜정 그림 / 가교(가교출판)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권장연령대도 초등 1,2학년이고 쪽수 또한 만만치 않은 75쪽이다 보니 다섯 살인 아들 녀석에게는 권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더군다나 아들의 취향으로 미뤄볼 때 한눈에 척 보기에도 시적인 동화라 잔잔한 느낌이 팍팍 드는 이 책을 과연 좋아할까 싶은 마음이 강해서 책꽂이에 꽂아두고 며칠 째 방치해 두고 있었다. 아이의 책장도 아니고 엄마의 책장에 꽂아둔 책을 기가 막히게 찾아낸 아들은 그림책이 분명하니 서둘러 읽어달라고 했다. 비교적 긴 글을 읽어주고도 시큰둥할 거라는 나의 예상을 깨고 아이는 잠들 때까지, 다음날 눈뜨자마자 읽어달라고 졸라댈 정도로 이 책에 빠져 버렸다. 게다가 세 번 네 번을 넘아가며 읽어주기 힘들 지경이 되어 그만 읽으면 안 되겠냐는 내 말에 아이는 “엄마도 목련나무처럼 참아야 해요. 그러니 빨리 참고 읽어요” 하면서 응수하니 정말 할 말이 없어진다. 온몸에 뜨거워져서 불이 붙을 것처럼 뜨거워도 결국 끝까지 참아내고 꽃을 피워낸 목련나무처럼 엄마도 참고 읽으라는 말에 결국 반복해서 읽어주는 것 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다섯 살 꼬마의 마음을 끄는 이 책의 매력이 뭘까?
특별한 기교나 화려함이 없이 잔잔한 목련나무 이야기의 매력은 편안함에 있다. 처음으로 꽃을 피워내는 목련나무의 이야기로 시작부터 결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불꽃놀이처럼 펑펑 꽃눈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 되면 함께 탄성을 지르며 교감하게 되는 것은 정일근 시인이 물 흐르듯 편안하게 풀어낸 글을 우선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춘 글은 다섯 살 목련나무와 다섯 살 아이 사이의 교감을 이끌어내서 정말 목련나무와 아이가 소통을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중반부에 등장하는 봄바람 할아버지도 아이의 흥미를 끌었고, 꽃을 피워내는 아픔을 참아내는 과정은 아이에게도 세상에 태어나 처음 시도해보는 어려운 일들에 대한 성취동기를 자연스레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예를 들면 아이가 요즘 힘들어하는 ‘한글 쓰기’를 슬쩍 던져봤더니 처음 하는 거라서 서툴지만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안하겠다고 던져 버리면 ‘바보’가 되어버린다고 아이 스스로 이야기를 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동안 몇 달 동안 내가 아이에게 던졌던 잔소리는 물거품이었고 이 책 한 권을 통해서 아이가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 되었으니 또 한번 책의 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내 아이도 인고의 시간 뒤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꽃나무로 자랄 것이다. 어떤 자태와 어떤 향기로 피어날 지 사실 벌써부터 기다려지긴 한다. 하지만 엄마인 나에게도 참아내고 이겨내야 하는 시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즐거운 기다림...
이 책의 그림 또한 잔잔해서 처음엔 너무 밋밋하지 않나 싶은 느낌이었지만 글과 조화를 이루기에 너무 튀는 그림은 어울리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봄바람 할아버지’는 너무 마음에 든다. 부드러운 선으로만 표현된 ‘봄바람 할아버지’의 모습에 목련나무를 걱정하고 안쓰러워 하는 표정과 봄바람처럼 푸근하고 넉넉한 표정을 담아낸 그림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정일근 시인이 담아내는 글에는 자연의 향기가 묻어난다. 연작동화라 하니 다른 작품들도 만나보고 싶어진다. 한권의 책이 마음에 드니 더 나아가 가교출판의 좋은 그림동화 시리즈에도 눈길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