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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싼 당나귀 ㅣ 옛이야기는 내친구 2
서정오 글, 김영희 그림 / 한림출판사 / 2007년 10월
평점 :
꽤 괜찮은 어린이책을 많이 펴낸 한림출판사에서 옛이야기는 내친구 시리즈를 계속해서 펴낼 모양이다. '종이에 싼 당나귀'는 '저승에 있는 곳간'에 이은 두번째 옛이야기이고 세번째 책'호랑이가 준 보자기'에 이어 ‘도깨비 대장이 된 훈장님'까지 계속 출간되고 있다. 참고로 아이는 이 책 ‘종이에 싼 당나귀’를 가장 즐긴다. 할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입에서 전해져 오던 구전동화들을 정리해서 옷을 입히고 꽃단장을 시켜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아이들 앞에 선을 뵈는 일에 정성을 쏟는 이유는 뭘까? 세계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아이 앞에 들이대기 바쁜 엄마들의 추천목록에 옛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올라가 있는 이유는? 나 또한 전래동화를 읽고 자라온 세대이고 30년 전에도 전래동화 속 세상은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다른 옛날이야기로 여겼었는데 모든 게 바쁘게 돌아가는 현재를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옛이야기가 아니라 외계의 어느 별나라 얘기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옛이야기가 주는 권선징악의 구도 또한 아이들 책의 소재로 매력적일테지만 근본적으로는 모든 게 부족하고 궁핍했던 시절이었지만 정서적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풍요로웠던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일거다. 모든 게 너무 풍족해서 가진 것보다는 가지지 못한 것을 얻고자 고군분투하는 지금의 모습에서 잠시 비껴 서서 여유를 찾고픈 어른들의 숨고르기 일거다. 그래서 내 아이에게 부족했지만 행복할 수 있었던 뭔가를 전해주고자 애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니 엄마 뱃속에서부터 정해진 스케줄대로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도 한 몫 한 듯하다. 사라져가는 옛이야기에 시선을 돌려 현대에 맞게 끄집어내서 우리 아이들 정서에 따스함으로 흐른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니 반가울 따름이다.
옛날 옛적에...이렇게 시작하는 이야기엔 엄마 말이라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로 어리숙하고 효성이 지극한 아이가 등장한다. 품삯으로 받은 돈 서푼을 우물가에 두고는 빈손으로 돌아온 아들에게 호주머니에 넣고 왔어야 한다는 어머니 말이 다음날 품삯으로 받은 강아지에게 적용되고, 새끼줄로 모가지를 묶어서 끌고 왔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은 그 다음날 품삯으로 받은 생선으로 이어지는...안타깝게 어긋나서 결국 당나귀를 종이에 싸서 메고 간다는 결과가 빤히 보이는 얘기다. 이런 아둔한 행동이 나들이 나온 원님 딸의 눈에 띄어 뜻밖에 좋은 결과를 낳고 그래서 어머니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더란다..로 이어지는 해피엔딩 옛이야기의 전형이다.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이야기를 들려주듯 편안한 문체로 풀어나가는 서정오님의 글도 정감 있었고, 옛이야기에 어울리는 수묵화를 보는 듯한 김영희님의 그림 또한 글과 한몸처럼 잘 어우러진다. 곳곳에 붓에 물감을 묻혀서 흩뿌린 듯한 부분들은(특히 어리숙한 아이의 궤적을 따라서 다분히 의도적인..^^) 마치 화선지 위에 그린 듯한 느낌을 준다. 외국동화, 또는 어디서 들어본듯한 이야기라는 느낌은 전래-외국동화 짝짓기를 해보면 수십개는 족히 되니 세월과 함께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치며 첨삭되는 구전동화라는 특성상 그냥 넘어가도 될듯하다.
요즘엔 넘쳐나는 매체들 탓인지 어리숙한, 좋게 말해서 순박한 아이들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런 아이를 일터에 보내놓고 아이의 엄마는 하루종일 바늘방석이었을 것이다. 아이에게 첫심부름을 시켜놓고 몰래 뒤따라가는 엄마의 마음과 매한가지리라. 우리 아이가 읽어내는 책의 리뷰를 써나가는 나조차도 이 글을 쓰기 전에 길어진 손톱을 깎고 정갈한 마음으로 앉아있으니 말이다. 어리숙한 아이를 하루종일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 엄마도, 이율곡이라는 후대에 길이 남을 인물을 키워내 5만원권 지폐를 장식하게 될 신사임당도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 위대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