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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쾌한 해설과 그림이 있는 천로역정
존 버니언 지음, 릴랜드 라이큰 글, 오현미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4년 2월
평점 :
오늘 소개할 책은 존 번연의 <천로역정> 인데요.
참 유명한 고전인데다가 번역도 많이 되었죠?
저는 특별히 2024년, 작년에 새로 출간된 CUP판을 추천드립니다.
이유는 아래에 적어놓을게요.
1. 요즘 같은 시대에 ‘순례’라는 단어를 곱씹는다는 게 낯설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이 계속 버거워지고, 신앙은 점점 흐려지는 것 같은 시간 속에서 <천로역정>을 다시 소개하게 된 건, 어쩌면 꼭 필요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워낙 유명한 책이다. 많은 이들이 한 번쯤 책장을 넘겨보았겠지만, 과연 끝까지 읽으며 곱씹어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 역시 예전에 펼쳐봤지만, 기억은 흐릿하고 내용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3. <천로역정>은 고전이라 불릴 만한 요소들을 고스란히 갖춘 작품이다. 상징과 비유, 신학과 삶,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이 이야기는 단순한 ‘우화’가 아니라, 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깨어나고, 어떻게 길을 걸으며, 결국 어디에 도달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믿음의 여정’으로 여겨진다.
4. 작년에 새롭게 출간된 <천로역정> CUP판은 표지가 참 예쁘다. 그러나 내용은 더 예쁘다. ㅎㅎ 무엇보다도 ‘설명해주는 책’이어서다. 주인공 크리스천이 어떤 길을 어떻게 걷는지뿐만 아니라, 그 길을 왜 걸어야 하는지까지도 섬세하게 안내해주는 친절한 가이드가 함께 실려 있다. 그래서 더는 어렵고 막막한 고전보다 마치 신앙의 길을 함께 동행해주는 책처럼 느껴진다.
5. 이 책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 원문에 캐리 마스의 해설을 곁들인 본문이고, 다른 하나는 영문학자 릴랜드 라이큰의 <천로역정 가이드>이다. 전자는 각각의 장면이 지닌 상징의 의미와 역사적 배경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며, 후자는 <천로역정>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문학적으로 신앙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짚어준다. 마치 누군가 옆에서 “여기서 이 장면은 이런 의미야” 하고 설명해주는 느낌이었다. 단순한 묵상을 넘어서, 성경적 주제를 풍성히 풀어내는 신학적 텍스트이기도 했다.
6.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장면은 ‘절망의 거인’이 등장하는 대목이다. 크리스천과 소망은 길을 걷다가 '편해 보이는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결국 절망의 거인이 다스리는, 의심의 성에 갇히게 된다. 몸은 갇혀 있었지만, 진짜 갇힌 건 마음이었다. 나 역시 믿음의 여정에서 종종 선택을 해 왔고, 그 결과 괜한 불안과 절망 속에 주저앉기도 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순간에도 ‘약속의 열쇠’를 통해 우리를 빠져나오게 하신다는 걸 이 장면이 보여준다. 읽다보니 지나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7.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장면은 ‘충성’이라는 인물의 순교였다. 허영의 시장에서 그는 크리스천과 함께, 세상과 다르다는 이유로 체포된다. 재판 끝에 혼자 화형을 당하지만, 그 순간 하늘에서 내려온 수레에 실려 천국으로 올라간다. 고통의 절정에서 맞이하는 영광.
8. 세속 문화, 물질주의, 왜곡된 가치들이 지배하는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보고, 듣고, 행하며 살아갈 것인가. 답은 정해져 있지만, 이 장면을 통해 다시 한번 묵직하게 되묻게 된다.
9. 이번 판본에서 특히 좋았던 건, 번역이 정말 매끄럽고 가독성이 뛰어났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고전 특유의 문장 구조(?)에 종종 멈칫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엔 술술 넘어갔다.
10. 게다가 곳곳에 들어간 설명과 일러스트 덕분에 상상 속 장면들이 훨씬 또렷하게 그려졌다. 예전엔 어렵게만 느껴졌던 비유적 인물들도, 이제는 그들의 이름과 말, 행동 속에서 자꾸만 내 모습을 보게 된다. 그만큼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이입되었다는 뜻 아닐까.
11. 이 책은 오래된 고전이지만, 낡지 않았다. 오히려 요즘 같은 시대에 더 필요한 책이라고 느꼈다. 삶이 혼란스럽고, 신앙이 버거운 이들에게, <천로역정>은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자, 다시 일어서게 해주는 격려와 위로가 되준다. 여전히 좁고 험한 길을 걸어야 하는 우리에게, 이 책은 말해준다. "이 여정의 끝은,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12. 그래서 이 책을 믿음의 여정을 다시 정비하고 싶은 사람들, 혹은 신앙의 길에서 길을 잃은 듯한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교회 소그룹에서도, 청년부 리더 모임에서도 함께 읽으면 참 좋을 책이다. 무엇보다도, 혼자 무너져 있는 시간 속에서 ‘나만 이렇지 않구나’를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위로가 되어줄 책이다.
13. 당신은 지금, 어디쯤에 있습니까? 그 어디든 이 책은 좋은 동행자가 되어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