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꽃 세트 - 전2권 (한정판 케이스 + 조정래 작가노트)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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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시계 초침이 한 금씩 자리를 옮기는 소리를 가만히 들으면, 생명이란 세월이라는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가는 유한한 존재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여든을 훌쩍 넘긴 노작가가 생사를 오가는 대수술을 겪은 후, 그 무심한 세월의 흐름 앞에서 건넨 화두가 사랑이라는 점은 깊고 묵직한 울림을 준다. 비정한 자본의 시대에, 유일하게 세월의 파괴력을 거스를 수 있는 가치가 바로 사랑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이 다루는 이재이와 윤소인의 서사는 세월과 자본이라는 두 가지 거대한 폭력 앞에 놓여 있다. 5년의 엇갈림 끝에 마주한 현실은 천문학적인 빚과 폐암이라는 벼랑 끝이다. 돈이 인간의 등급을 매기는 세상 속에서 가난을 멸시하는 가족들의 차가운 시선은 겨울바람처럼 이들을 몰아세운다. 그러나 이재이는 연인을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았고, 타인의 고통을 위해 자신의 가장 귀한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숭고한 동행을 선택했다.

 

밤에 피었다가 해가 뜨면 녹아버리는 서리꽃은 정말이지 덧없는 존재 같다. 누군가는 죽음 앞에 놓인 소인과 그녀를 지키려는 재이의 사랑이 그저 슬픈 결말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적어도 내겐 두 사람의 걸음이 체념이라기보다, 찰나 속에서 영원을 빚어내려는 치열한 투쟁이었다. 보림사에서 매일 아침 올리는 기도, 그리고 두 사람을 처음 이어주었던 반 고흐의 자취를 찾아 파리와 암스테르담으로 떠나는 묵묵한 여정이 이를 증명한다.

 

고독 속에서도 별을 그리며 찰나의 화폭에 영원을 담았던 고흐처럼, 죽음 앞에서도 캔버스를 마주하는 소인과 그 곁에서 초침을 멈춰 세우듯 그녀의 시간을 지켜내는 재이의 모습은 숭고한 예술로 다가온다.

 

누군가에게는 이 헌신이 불편할 수 있다. 효율과 손익의 잣대로 관계를 맺어온 우리의 모습이 겹쳐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한한 삶 속에서 우리는 진실한 온기를 채워 넣어야 한다. 서리꽃은 아침이 오면 스러지겠지만, 칠흑 같은 추위를 뚫고 꽃을 피워냈다는 사실만큼은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진실로 남으리라.



“본 서평은 해냄출판사 『서리꽃』 독자서평대회 응모작으로, 선정 시 상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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