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소매상의 영업비밀 공개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유시민, 생각의 길, 2015) 을 읽고

유시민은 지식소매상이다. 연구자나 전문가가 생산한 지식과 정보를 정리하고 추려서 일반시민에게 공급한다. 국세청에서 인정하는 직업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명함에 정치인, 전 장관 같은 직함 대신 지식소매상이라는 명칭을 적기도 했다. 그의 뛰어난 영업능력은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과 여러 책을 통해 이미 널리 알려졌다. 그의 말글은 예리한 분석, 깔끔한 논리, 쉽고 간결한 표현을 지녔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그가 공개한 영업비밀은 단순했다. 첫째, 많이 읽지 않으면 잘 쓸 수 없다. 많이 읽을수록 더 잘 쓸 수 있다. 둘째, 쓰지 않으면 잘 쓸 수 없다.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 비결이라기보다는 지당하신 말씀, 누구나 다 아는 말이다. 글 잘 쓰려면 다독, 다작, 다상량하라는 송나라 문인 구양수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당연한 이 말을 유시민은 솜씨 있게 풀어나간다. 명확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풍부한 실제경험을 들어가며 논증, 책 읽기와 글쓰기 전략, 못난 글 피하는 법, 아날로그 방식의 훈련요령을 알려준다.

유시민 자신이 쓴 「항소이유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 몇 토막을 직접 고치며 더 나은 글이란 무엇인지 설명한다. 이것은 지난해에 출간한 글쓰기 책 『고종석의 문장』에도 나온 방식이다. 유시민이 모방했을 수도 있지만 흠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글을 스스로 깔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이 보여 신뢰가 가기도 한다.

글쓰기와 관련한 그의 경험담은 마음에 와 닿고 머리에 오래 남는다. 통합진보당 아메리카노 사건(궁금한 분은 검색해보시길)과 논점일탈의 오류를 연결한다. 민주화운동 시절 한 활동가가 유인물을 시장조사한 일화를 소개하기도 한다. 독자의 반응을 점검하고 타인의 평가와 비판을 듣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대목이다.

다른 글쓰기 책에서 보기 힘들었던 실명비판을 만났다. 임재춘의 원자력 발전에 대한 글(‘잘 쓴 문장이 아니다’, ‘예문이 전하는 정보가 참인지 의심스럽다’ p131, 132), 세월호 참사 관련 국무총리 담화문(‘평소 그런 글을 읽고 그런 글을 쓰기 때문에 늘 하던 것처럼 했을 뿐, 그들 자신은 아무런 문제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p172), 통합진보당 해산 헌법재판소 결정문(‘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보라. 음치가 부르는 발라드 노래처럼 들릴 것이다’ p214), 진은영 시인의 문예비평서(‘글쓴이 자신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지만 독자는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을 너무 많이 썼다’ p249)를 직접 거론하며 비판과 해석을 시도했다. 용기 있는 결정이다. 한국사회에 글쓰기문화가 바르게 자리 잡도록 앞으로도 예의를 지키는 범위에서 건설적 실명비판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길 바란다.

유익한 책이라 해도 읽는 게 의무로 다가오는 때가 있다. 하지만 유시민의 교양서는 한 번 잡으면 손에서 놓고 싶지 않다. 스릴러도 아닌데 계속 붙잡고 읽게 된다. 그의 글솜씨가 부럽다. 유시민이 밝힌 글쓰기의 비밀 아닌 비밀, 많이 읽고 쓰라는 철칙을 지키면 나도 그를 따라 잡을 수 있을까.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은 문명이 선사한 축복이다’(p275). 나도 마음먹고 이 특권을 한껏 누려 보련다. 그러려면 ‘머리로 이해하고 지나갈 게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고 익혀야 한다’(p?).

`이해는 생각만 해도 할 수 있지만 실천은 삶으로 몸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몰라서 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하지만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더 많다. 글쓰기도 그런 것이다.’(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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