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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은 권력이다
박정자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원래 부산의 한 독서토론회 오프모임에 참가해보려고 산 책이다. 아쉽게도 다른 일정 때문에 그 모임에는 가지 못했지만... 내 개인 취향대로만 읽는다면 이 책은 내가 따로 펼치지도 않았을 책이다. 억지로 첫 페이지를 열었다. 이로인해 오히려 깨닫게 되었다. 책을 혼자 읽는 것보다 독서모임을 조직해서 읽는 게 훨씬 다양하고 넓은 시야를 얻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내가 관심 갖고 있는 분야 이외의 영역에 대해서도 탐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는가? 읽고 난 후에 서로 생각 나눔을 하면서 내가 찾지 못했던 면을 타인을 통해 알 수도 있지 않는가?
자발적으로 읽기 시작하진 않았지만 책을 덮고 난 후에는 자발적으로 이렇게 후기를 쓰고 있다. 한국십진분류표 100(철학) 항목에 속하는 책을 정말 오랜만에 읽었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주었다. 활자 속의 이론들을 내 주변 현실에 적용하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저자는 '시선이 인간관계의 기본인 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는 내용으로 시작해서 사르트르의 대타이론, 헤겔의 인정투쟁, 벤담의 판옵티콘, 푸코의 권력이론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 감시하는 시선, 공간 및 건축과 권력, 의료권력, 현대 전자 감시체제 등을 차근차근히 설명했다.
2년 전 쯤 미셀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읽다가 어려워서, 뭔말인지 알아먹기 힘들어서 포기했었다. 이 책의 친절한 안내자를 통해서야 '감시와 처벌', 그 이외 푸코의 몇몇 저서 내용을 약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푸코가 기존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전복적 사유자라는 것도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아직 원전을 읽을만한 내공은 안되나보다. 가공식품 같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입에 잘 맞는 이런 해설서를 조금 더 접한 후에나 원전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감시하는 눈'을 갖고 일을 하고 있다. 권력과 권위의 시선을 구비하는 게 내 직책의 필수 준비 사항이다. 하지만 원래의 나는 그런 눈보다는 '우는 눈'을 지니고 싶어한다. 자끄 데리다가 말한 연민과 비탄의 따뜻한 눈, 저 아래 낮은 곳에서 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눈. 그런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우리의 삭막하고 팍팍한 인간관계를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