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걷히기를>

‘밤으로의 긴 여로‘(유진 오닐, 민음사)를 읽고

톨스토이가 쓴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풀어내어 연극에 올렸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유진 오닐의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를 읽은 뒤 내 나름껏 뽑은 한두 줄 평이다. 희곡은 문자 텍스트일 뿐, 연출의 손을 거쳐 무대를 빌어 배우를 통해야 비로소 극이 된다. 활자로 찍어낸 이 작품을 눈으로 읽었을 뿐이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는 막이 내린 소극장 객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빠져들게 하는 텍스트이며, 등장인물은 피와 뼈와 살을 지닌 배우를 옮겨둔듯 생생하게 그려졌다.

작품에 등장하는 타이론 가족 네 식구는 저마다 흠이 있다. 떠돌이처럼 가족을 호텔에서 묵게 해왔고 땅 구입에 집착하며 돈에 인색한 아버지, 약물 중독에 조울증 증상을 보이는 어머니, 방탕한 데다 빈둥대는 큰 아들, 병약하고 냉소적인 작은 아들. 크고 작은 흠이 가족 간 불화의 요인이다. 각자 그 흠을 이해하려 하고 걱정하면서도 가시 돋친 말로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상대의 흠 때문에 분노를 느꼈기에, 흠으로 인해 겪은 고통이 컸기에 가족 간 벌어진 틈은 메우기 힘들고 자꾸만 벌어져 간다.
타이론 일가 역시 제 나름 이유가 있는 불행한 가족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희곡을 읽는 중간중간, 내 상상 속 무대에 올라 타이론 가족을 연기하던 배우들이 내게 익숙한 얼굴로 바뀌었다. 아버지가 내뱉는 말에 고개를 가로젓는 나, 어머니에게 빈정대는 형, 짜증내는 가족들이 보였다. 우리 가족이 소리치고 궁시렁대는 소리가 들렸다. 반갑잖은 풍경과 말들이 폐수에서 건져올린 오물처럼 기억너머 흉하게 떠올랐다. 가족 간 겪은 갈등의 기억을 마주하는 게 아팠다. 책을 읽다가 옛 기억이 갓 겪은 현실로 느껴져 종종 화가 치솟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타이론 일가의 모습에서 내 가족의 풍경 조각을 주웠다.

타이론 가족의 갈등을 지켜보는 데서 촉발한 불쾌감이 지속하지는 않았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오히려 개운했다.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어떤 면에서는 안도했다.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가정사 또는 가족 간 갈등은 존재해왔다. 재산이 없으면 없는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못 챙겨주면 못 챙겨준다고, 잘 대해주면 그것이 또 핑곗거리가 되어 미워하고 싫어하고 죄책감 느끼는 관계. 좀 야비한 정신승리일 수 있겠지만 이렇게 마무리 짓고 나를 다독였다. ‘어느 가족이든 문제가 있다. 그래도 우리집은 타이론 가족보다는 낫다.‘

밤으로 향한 하루동안의 긴 여정, 이 시간 내내 타이론 일가는 안개에 싸여 있다. 극 중 안개는 중요한 장치이자 상징이다. 앞이 보이지 않고 답답하며 불안하다. 타이론네 네 식구는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잠자리에 들 것이다. 바다에서 들리는 무적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칠 수도 있다. 다음 날도 비슷한 여정을 겪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타이론 일가에게, 혈육 때문에 눈물 흘리고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진부한 응원을 건네본다. 안개가 걷히길 빈다.

※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라는 제목 번역이 유감이다. 겹조사를 쓴 일본식 잔재 ‘~으로의‘가 거슬린다. 의미가 잘 와닿지도 않는다. 이것보다 ‘밤으로 향한 하루 동안의 긴 여정‘을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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