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순으로 작품을 실은 선집을 10권서부터 거꾸로 읽어내려 갔다. 7권을 읽어야 할 차례에 도서관 책을 누가 먼저 빌려간 탓에 1권을 되짚어 골랐다. 식민지 시대 한국 단편소설들을 삼일절에 읽은 게 공교롭다.

중고등학생 때 읽었다고 까불랑거렸던 작품을 다시 접하니 묵직했다. 이상의 ‘날개‘는 그만한 나이에 이해할 수 있는 단편이 아니었다. 이번에 읽고 나서 그 멋들어짐과 나른함에 진정 박수쳤다. 첫 문장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와 마지막 문장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를 싸이월드 미니홈피 대문 프로필에 옮겨 적었던 겉멋든 시절이 문득 기억났다.

황석영 선생이 염상섭을 한국 근대문학의 출발지로 지목한 점이 흥미로웠다. 염상섭의 단편 ‘전화‘가 이 선집에 실린 첫 작품이다.

˝근대문학은 염상섭에 이르러 비로소 애매모호한 계몽주의를 벗어나 근대문학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한다. ... 염상섭이 매 작품마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끈덕지게 추적하고 있는 ‘돈‘의 행방에 대한 관심은 주목할 만하다. 소설이 아무리 고상하고 고매한 이념을 표방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돈‘으로 표상되는 자본주의 삶의 양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결국 소설이란 세속의 산물에 다름 아니라는 것.˝(신수정 평론가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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