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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
정용준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6월
평점 :
<너에게 묻는다 - 정용준>
2023 보건복지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건수는 연간 2만 5천에서 3만 건에 이른다.정서적 학대와 방임은 눈에 잘 드러나지 않기에, 실제 학대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너에게 묻는다>는 이러한 정서적·신체적 학대를 저지르는 부모, 가족의 주변 환경,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 사건들을 취재하고 방송하는 관계자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 책은 하나의 사건을 향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가가는 여러 사람들을 보여주며, 아동학대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다층적으로 비춘다.
1부: 불꽃과 얼음
아동학대를 자극적인 방송 소재로 소비하는 사람들과, 이에 분노하는 사람들의 대비가 뚜렷하게 그려진다.
소재가 곧 시청률이고, 자극이 있어야 가십이 되고 관심을 끌며 결국 돈이 되는 사회. 그 안에서 느슨한 연대, 타인에 대한 무관심은 아동학대 피해자들을 더욱 고립시킨다.
“가정 폭력이나 아동 학대 사건은 여성청소년계가 담당해요. 이게 문제죠. 아동은 원래 보건복지부 담당인데, 가정 내 문제는 또 여성가족부가 맡게 되는 거예요. 언뜻 보면 두 부서에서 모두 관심을 가질 것 같지만,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죠. 서로 업무를 미루거나, 막상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혼란이 생겨요. 그래서 경찰 내에서도 아동 학대는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요.”
교육기관에서 아동학대 징후가 보이면 교사는 경찰에 신고할 의무가 있다. 신고하면 경찰이 사안 조사를 위해 학교에 오고, 구청 직원도 함께 온다. 그러나 이후 교육기관은 해당 아동의 학대 판정 결과나 어떤 보호나 지원을 받는지 알 길이 없다. 경찰, 복지, 학교가 함께 협의하거나 공유하는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각자의 역할만 충실히 수행할 뿐이다. 경찰은 수사를, 구청은 복지를, 학교는 교육을 맡는다.
말하자면, 통합적인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태다.
2부: 함정
사법 제재가 미약함에 분노한 사람들이 사적 제재를 감행하면서, 이야기는 급격히 전개된다.
이 소설은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하는 데 집중되기보다 오히려 사적 제재를 지지하는 이들의 심리, 그리고 주인공이 왜 아동학대 사건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를 따라가며, 학대를 겪은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둠 속에 살아가는 현실을 조명한다.
“유희진은 취재 차량 뒤에 서서 시위 현장을 바라봤다. 그들 곁에 서서 함께 외치고 싶은 마음과, 그들의 입을 막고 팔을 끌어 시위를 끝내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하는 것. 수취인불명 딱지를 받고 되돌아올 편지를 계속 쓰는 것. 텅 빈 객석을 향해 부르는 노래. 이제는 이런 일을 숭고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덧없는 말은 덧없는 말. 무의미한 건 무의미할 뿐. 다른 무엇이 되지 않는다.”
시위 장면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피켓을 들고, 종이를 나눠주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그리고 무심한 표정 뒤에 경멸을 담은 채 지나가는 행인.”
하지만 무서운 건 무엇일까.
시위를 해도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무력감, 냉소적인 마음이다.
시위하던 사람이 무심해질 때가, 아는 자들이 등을 돌릴 때가 가장 무섭다.
3부: 질문들
마지막으로, 작가는 그동안 참아왔던 질문들을 쏟아낸다.
각 인물의 과거를 되짚으며, 아동학대 피해자의 이후 삶이 어떤지, 그 경험이 어떻게 다른 기억과 감정들을 불러오는지를 보여준다.
사적 제재는 과연 정당한가.
우리는 그저 이웃이고, 행인이고, 어쩌면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사람들인데, 무엇을 해야 할까.
작가는 인물 간의 대화를 통해 이 모든 질문들을 던지며 생각하게 만든다.
한 사건이 일어나면, 다른 여러 사건들이 실타래처럼 꼬여 줄줄이 이어진다.
되돌릴 수 없는 순간들이 생기고, 누군가의 인생은 폭력 속에서 파멸해 간다.
특히 아이들을 향한 무차별한 폭력은 때때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탈을 쓰고 찾아온다.
사랑.
과연 어디까지가 사랑일까.
안온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