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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5월
평점 :
어릴 때 자주 들었던 직업, 책에 자주 등장하는 직업,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직업.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직업, 사람들이 안다고 생각하는 직업들.
이렇게 직업을 말해보라고 하면, 서른 개쯤은 대부분 비슷하게 떠올리지 않을까.
직업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지만, 막상 생각해보면 우리가 인식하는 직업의 범위는 의외로 좁다.
관념이 일정한 틀에 갇히면, 어른이 되어서도 ‘일’의 외연을 넓히기가 어렵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직업이 아닌, 낯설거나 익숙하지 않은 직업을 찾아 나선다.
그들의 일하는 방식과 일터의 환경, 그리고 그 직업이 지닌 의미를 이 책에 솔직하게 담아냈다.
물류, 비스킷 공장, 로켓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직접 관찰하면서 그는 말한다.
“의미 있는 일이라는 개념을 너무 좁게 생각해선 안 된다. 의사나 콜카타의 수녀, 과거의 거장에게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추앙받지 않더라도 다수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직업은 시대적 배경,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좋은 직업’으로 인식되는 일들은 때로는 보이지 않는 계층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 직업을 신성시하도록 만든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는 이 책 안에서 ‘일을 통해 느끼는 기쁨과 슬픔’을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책의 제목이 <일의 기쁨과 슬픔>인 이유는, 마지막 문단에서 그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우리의 일은 적어도 우리가 거기에 정신을 팔게는 해줄 것이다.
완벽에 대한 희망을 투자할 수 있는 완벽한 거품은 제공해주었을 것이다. 우리의 가없는 불안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가 가능한 몇 가지 목표로 집중시켜줄 것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줄 것이다. 식탁에 먹을 것을 올려놓아줄 것이다.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게 해 줄 것이다.”
우리는 일을 통해 성취감과 좌절감, 기쁨과 슬픔을 느낀다.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속박과 자유를, 노동과 여가를 오가며 살아간다.
그 중심에는 ‘일’이 있고, 일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을 통과한다.
일 안에서가 아니라, 일을 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기쁨과 슬픔을 느낀다.
<일의 기쁨과 슬픔>이란 제목은, 아마도 ‘일 그 자체’가 우리에게 감정을 일으키는 수단이기 때문이 아닐까.
은행나무에서 도서를 제공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