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공부 5일 완성 - 마흔 살에 시작하는, 2021년 최신개정판
박민수(샌드 타이거 샤크)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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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한 이유

1. 육아휴직 기간동안 금융 코어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2. 은근한 종목추천 없이 기본만 정리되어 있어서

3. 주식 관련 어휘를 찾기 용이한 구성

4. 한국경제 신문 구독과 더불어 실전 적용 주식을 시작해보고 싶어서

5. 이해하기 쉽게 풀이된 실전 예시

서론

2019년 겁도없이 주식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단순히 저렴하다는 이유로 동전주를 매수했다가 상폐당하기도 하고, 고점인줄 모르고 진입했다가 물려서 잃은 적도 많았다. 시드가 적어서 다행이었다고 해야하나….

어쨋든, 지난 코로나 사태 이후로 주식을 제대로 알고 접근해야겠다고 확실히 느꼈다. 2020년 4월, 사무실 과장님들은 매번 말씀하셨다. 지금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모든 주식이 세일 중이니, 무엇을 사더라도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이득일 것이라고. 그 땐 뭘 몰라서 넘겼던 내 자신에게 어퍼컷을 날리고 싶다. 무지성으로라도 아무거나 우량주 하나 골라서 샀더라면 지금쯤….

사무실 과장님들의 지속적인 제안에 오히려 반감 갖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기사 이 분들은 2008년도 겪어보신 분들인데 나보다 훨씬 잘 알면 더 잘 알겠지.

그래서 주식 기본 서적을 찾아보던 와중 가장 기본 중 기본을 다루고 있는 것 같은 이 책을 선택했다.

주요 내용 정리

본 책은 첫째 날 (종목 고르는 비법을 공부하자), 둘째 날 (주식 매매 원칙을 공부하자), 셋째 날(호재 뉴스에 대해 공부하자), 넷째 날(악재 뉴스에 대해 공부하자), 다섯 째날(주의해야할 이슈를 공부하자)로 크게 다섯 목차로 나뉘어져 있다. 일단 인버스 투자와 해외 기업투자 등을 제외하고 첫째 날, 둘째 날 항목에 집중했다. 뉴스를 읽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아서 (한국경제 읽기 전까진 2018년 취업준비 이후 단 한 번도 뉴스를 읽지 않았음) 뉴스 대비 주식 공부 부분을 읽을 때 어려운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첫 장부터 주식과 주식회사, 보통주와 우선주 등 가장 기본적인 개념부터 설명한다. 사실 대강 이런 것이 있다 정도로만 알 뿐 시가총액, 최대주주 등의 개념을 직접 검색해보는 경우는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시작하기에 앞서 기초 지식을 필수적으로 쌓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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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날씨 - 위기가 범람하는 세계 속 예술이 하는 일
올리비아 랭 지음, 이동교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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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꿈꾼다.

사람들이 단일한 형태가 아니라 복잡하고 역동적이며 뒤섞인

커뮤니티 속에서 사는 삶이 훨씬 건강하다는 것을 깨닫는 날을.

특권 의식과 억압에 기반한 행복은

문명화된 의미의 행복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날을.


대부분 작품의 배경이 20세기, 최소 20년 전 이상이었으나 나에게 너무 진보적으로 다가온 작품이다. 읽다보면 진보성과 원시성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작가는 테디베어 우드 개발을 반대하며 대학을 그만두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본 경험을 갖고있다. 자연을 파괴하는 지상의 구성원이 아닌 원초적인 인간으로서 자연과 융화의 존재가 되기위함이였다. 그러나 이미 문명을 겪은 그녀로는 이 원시적인(잠자리에 쥐가 기어다니고, 머리맡 뱀과 마주하며 불을 피우고 물을 길어서 씻던) 경험을 통해 자연에서의 고립은 자신을 갉아먹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스트레스이면서 동시에 지속적인 행복의 원천임을 깨닫는다.

이런 올리비아 랭이 풀어내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작품과 그들의 삶이 시대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또 시대는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집중한다. 또한 올리비아 랭 그녀를 포함한 한 때는 삼류였던 작가들이 혐오와 위태로운 세상 속에서 예술을 풀어나갔는지를 제시한다. (삼류였던 그들은 훗날 일류로 평가받거나 새로운 의미로 재평가된다.) 이로써 이 작품으로 흥미로운 예술가들을 알게되었다. 특히 데릭 저먼, 크리스 크라우스, 샐리 루니의 작품은 다시 한 번 찾아볼 예정이다. 초반에는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떠오른 작가들을 주로 다루고 있는지라 그들의 예술관이 다소 번잡하고 어려워서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후반부에 맨부커상 후보에 오르거나 영국 BBC 에서 드라마화된 작품을 제작한 21세기 작가들이 등장하며 나의 이목을 끌었다.


/

…두 번의 붓질이 겹쳐서 미세하게 색이 진해진 부분처럼 아주 사소한 디테일에 시선이 머문다. 그 외에는 달리 시선을 붙들 데가 없기 때문이다. 관점도, 종결도 없이 오직 눈부시게 빛나는 개방만이 있을 뿐이다. 마치 창문 없는 방 안에 바다가 들어온 것 처럼

- 예술가의 삶, 애그니스 마틴. 114쪽

사실 이 작품은 매우 적나라한 퀴어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주된 내용은 예술가와 그들의 삶이지만 적지 않은 그들의 삶이 퀴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진보된 관념은 사랑과 그 방식에도 적용되었다. 태초부터 만들어진 그들의 천재성이 어쩌면 당시 아류로 분류되던 정체성과 불가분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들은 입구도, 출구도 없는 사랑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퀴어를 왜곡된 사랑의 방식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면 [이상한 날씨]는 다소 불편한 작품이 될 수 있다. 퀴어를 옹호하거나 혐오하지 않는 나도 간혹 노골적인 표현이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예술은 하나의 언어였다. 누군들 나 자신으로 살고 싶지 않은가. 시대가 받아들여주는 자아와 부정당하는 자아 사이에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술이었다. 그리고 작품으로써 그들과 유사한 갈등을 겪는 이들과 세상에 경종을 울렸다. 워나로비치, 저먼, 존조셉, 글럭스타인 등이 그렇다. 눈부시게 빛나는 개방만이 있는 세상을 바랐던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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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을 향해 서서 손을 맞잡고 복잡한 춤을 추는 사계절의 신들처럼 우리 인간은 느리고 세심하면서도 때론 항상 엉성하게 스텝을 밟으며 구체적인 발전을 이루기도, 의미 없는 회전에 접어들기도 한다. 그사이 함께 춤을 추던 동지들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며 장관에 패턴을 더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선율을 선택할 수도, 어쩌면 춤의 스텝을 조절할 수도 없다."

- 시간이라는 음악의 춤, 235쪽

어떤 의미로 이 작품은 진화 중인 인류의 양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메이저들은 마이너라고 규정한 이들을 핍박하고 마이너가 메이저로 변모하기도 하면서 무리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는 일련의 발전 과정, 동시에 원시적인 모습으로 회귀하기도 하는 양상 말이다. [이상한 날씨]에서 예술가들은 가장 진보적이면서도 가장 원시적인 모습을 보인다. 영국 아방가르드 영화계를 대표하는 데릭 저먼은 급진적 퀴어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정원사였다. 에이즈로 사망하기 전까지 파괴된 미래와 존재하지 않을 미래에 대한 공포를 뒤로한 채 정원을 가꾸고 사랑을 나눴다. 어쩌면 데릭 저먼은 마이너한 본인의 정체성을 메이저한 작품으로 승화시키며 성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은 동일선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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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파괴하는 소설, 순수하게 사적 내러티브를 제공해야하는 임무를 거부하는 회고록, 《아이 러브 딕》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는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를 이어받은 최근의 후계자로는 실라 헤티Sheila Heti의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How Should a Person Be》, 제니 오필Jenny Offil의 《사색의 부서 Dept. of Speculation》, 메기 넬슨의 《아르고노트》처럼 정치적인 목적으로 회고록과 소설을 결합한 작품들이 있다.

크라우스가 "외로운 여자 현상학"이라 칭한 이런 책들의 선조를 꼽는 건 더 어렵지만, 버지니아 울프와 앨리스 노틀리Alice Notley, 윌리엄 버로스William Burroughs,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 그리고 제인 볼스를 떠올릴 수 있다.

- 서평, 《아이 러브 딕》, 346-347 쪽

[이상한 날씨]에서 언급하는 여류 작가들은 목적이 명확하다. 특정 시대에서 여성은 비주류로 여겨지기 쉽상이었다. 이들은 보부아르의 [제 2의성]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답습된 사회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주체 의식이 부족할 수 밖에 없게끔 육성되었던 여성의 틀을 벗어 던졌다. 발칙하고 자극적인 클리셰로 작품을 이끌어가는가 하는 반면 특유의 섬세함을 활용해 그들의 시선 속 삶으로 인도한다. [이상한 날씨]를 읽으며 가장 좋았던 점 한 가지를 꼽으라면 지체없이 수많은 여류작가들을 알게 되었던 점을 꼽겠다. 앞서 언급한 여류 작가 이외에도 올리비아 랭은 힐러리 맨틀에 대한 단상을 남겼다. 힐러리 맨틀은 [울프 홀]과 [Bring up the Bodies]로 무려 두 번이나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싸워서 굴복시킬수는 없고 손을 내밀어서 내게 오도록 해야 하죠. 그래야만 와서 이야기가 돼요."

작품으로써 웅장한 역사적 서사를 남긴 그녀의 삶은 나에게 많은 것을 전해주었다. 그녀는 혐오와 분노의 시대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그것이 삶에 선순환적 동력이 될 수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시대에 휩쓸려 자신이 겪었던 아픔에 머물러 있었다면 힐러리 맨틀은 진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통을 고통으로 짓이기지 않고 묵묵히 시간을 견디는 것, 맨틀이 주고자 하는 지혜를 나에게도 녹이고 싶어졌다.


/


바스키아, 호크니, 라우션버그 등의 예술가들은 당대에는 즉시 인정받지 못했다. 그들은 혐오와 싸우며 그들만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그것을 일류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세상에 그들의 흔적을 완벽히 남겼다.

사실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생소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모르는 사람들의 전투적인 일대기를 훑는다는 느낌으로 접근했다. 중간에 자주 등장하는 섹션28과 같은 법안에 대해 검색해봐야 했고, 특히 작품에 대한 설명이 활자로는 다가오지 않아 독서와 동시에 작품을 감상해야하는 과정이 번거롭다고도 느껴졌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이상한 날씨]가 아니었다면 알 수 없었던 작품들이 있었다. 특히 오키프를 알게 된 것이 매우 기뻤다. 마음을 평안하게 만드는 색채와 왠지 가슴 설레는 부드러운 선, 한순간에 매료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제 2의 오키프, 맨틀, 바스키아, 호크니, 라우션버그들은 또 어떤 싸움을 하고 있을 것인지,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빛을 보는 그 때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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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 - 어느 책에도 쓴 적 없는 삶에 대한 마지막 대답
빅터 프랭클 지음, 박상미 옮김 / 특별한서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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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당신들이 나를 찾아온다.

당신들은 내게 말한다.

우리를 위해 살아달라고.

삶에 대한 의무감이 나를 에워싼다.

그래서 나는 당신들을 죽인 그들을 죽일 수가 없구나.

붉게 타오르는 태양 속에도

나를 응시하는 당신들의 눈빛이 있다.

푸른 숲속에도

내게 손짓하는 당신들이 있다.

당신들이 빌려준 목소리로.

지저귀는 새들이 나에게 말한다.

당신들이

내 목숨을 살려주었다는 것을.

(1946년, 프랭클의 시)


1905년에 태어난 빅터 프랭클, 그의 어린 시절은 따뜻하고 즐거웠다. 여느 행복한 가정의 서사가 시작될 때 등장하는 이야기처럼 엄격하지만 자상한 아버지와 늘 사랑을 베푸는 어머니, 친구같은 형과 여동생까지. 그런 그가 세계적인 심리학자, 로고테라피의 창시가가 되기까지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인생 자체가 로고테라피 심리학의 대표적인 표본이 되어, 지금까지도 역경을 인생의 걸림돌이라 여기는 많은 내담자들의 한 줄기 빛이 되주고 있다. 이런 그의 이야기를 담은 [빅터 프랭클]은 경어로 시작되어 유머러스한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과는 대비되는 어둡고 비극적인 그의 삶을 보여준다. 그리고 인생 전반에 걸쳐 그 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하나의 연구로써 승화시킬 수 있었는지 제시한다.


로고테라피가 안내하는 '삶의 의미 찾아내는 법'

① 창조가치 :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② 체험가치 :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③ 태도가치 :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자주 접했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는 다르게 빅터는 현실에서 삶의 의미를 추구할 것을 명시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과 사회의 규범은 항상 갈등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삶은 시련의 연속이라 한 반면, 빅터는 무의식보다 현재 본인이 처한 환경에 닥친 시련을 극복하고 그 것을 본인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빅터는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아내와 부모님, 형을 잃고 만신창이가 된 채 현실로 복귀했다. 지옥과 다름없었던 곳에서 그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로고테리피 정신에 입각한 그의 정신력 덕분이였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인 현실을 부정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느니 오히려 그것을 직면해서 작품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수용소 이후의 빅터가 제시한 로고테라피는 다소 무겁고 깊은 느낌을 받았다. 책에 따르면 빅터는 선천적으로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언급된다. 이는 그가 애초에 삶을 즐기고 사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특화되어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닥친 시련에 대해 무의식과 미련이라는 방해요소로 발목을 잡히지 않고 앞으로 진전할 수 있었다. 수용소 이전의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가 마음의 공허함과 정신적 고통을 경감시키고 경험으로써 받아들일 수 있게끔 도모했다면 수용소 이후의 로고테라피는 버틸 수 없는 시련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그것을 삶의 의미로써, 인생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는 발판으로써 역할에 충실하다. 단순히 삶의 시련을 넘어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무의식에 가둬버리지 않고 삶의 일부분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좋아하는 철학가 에밀 시오랑은 말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인간에게 최선이다."

그렇다. 태어났다면 고통과 시련은 피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빅터 프랭클의 가르침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이미 태어난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덩그러니 놓여진 것은 이미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빅터는 그의 삶 전체를 바쳐 고통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삶을 더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앞으로 다가올 고통을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여 마음의 면역을 키우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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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나기라 유 지음, 김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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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간식으로 내줄게. 비축용 크래커에 바르면 맛있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자 유키가 환하게 웃었다.

"왠지 요즘 어머니는 정말 '어머니' 같아."

"응?"

"오후 간식이라니."

유키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뒤뜰로 나갔다. 열일곱살 유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갓난아기였을 때, 어린아이였을 때, 초등학생이었을 때, 중학생이었을 때의 유키를 떠올렸다.

─ '어머니' 같아.

그러게, 이제 와서 말이지. 서글픈 웃음이 나왔다. 나는 언제나 일 때문에 바빠서 유키의 곁에 거의 있어주지 못했다. 유키는 언제나 아무도 없는 아파트에 돌아와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오후 간식은 한 번도 만들어준적이 없었다.

─ 늦었지만 기회를 얻어서 다행이야.


얼핏 보면 전혀 접점이 없어보이는 조합의 네 사람이 모였다. 네 사람이 '만났다' 라는 표현도 생각났지만 그들은 우연히 '만났다'라기 보다는 어떤 공통 속성을 지니고 '모였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작품은 유키의 현실도피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노우에 무리에게 괴롭힘 당하고, 심부름 담당인 학교폭력 피해자 유키는 머릿속으로 가해자 무리를 저주한다. 정말 고통스러운 저주는 아니고 주문할 음식을 잊어버린다던지 같은 가볍고 유머스러운 저주이다. 고통스럽고 잔인한 저주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유키는 태생적으로 선한 인물같았다. 어느 날 뉴스에서 흘러 나오는 지구멸망설, 한 달 뒤면 지구가 멸망한단다. 그런데, 유키가 도쿄에 꼭 가야하는 이유가 생겼다.


급격히 시야가 흐려져서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앞으로 한 달이면 죽는 이 마당에, 세상에 태어난 기쁨을 곱씹고 있다. 이런 막바지에,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어째서? 어째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나는 여기에 있는 누구보다도 머리가 나쁘다.

202쪽

신지는 야쿠자다. 정확히 말하면 야쿠자 아래 잡일을 도맡아하는 하수꾼이다. 몸을 쓰는 일밖에 할 줄 몰라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만 한다. 그리고 마음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들짐승같은 사나이다. 그런 그가 우연히 만난 학교폭력 피해자 유키. 미혼모 시즈카의 부탁으로 도착한 이 곳에서 유키를 구한다. 그렇게 뭉친 네 사람. 유키, 유키에, 신지, 시즈카. 쌩뚱맞은 조합의 네 사람의 여정이 시작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전개가 펼쳐진다. 남긴 피붙이 하나 없어 스스로를 고독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은 신지,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그가 기쁨의 눈물을 흘릴 만큼 가슴 벅찬 일은 무엇이었을까?


죄송해요, 하고 유키에가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고마워"

"네?"

"자기가 누군가를 상처 입혔다는 사실은 잊고 싶은 법인데, 계속 기억했다가 사과해줬잖니."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너무 용서해도, 너무 용서하지 않아도 안 된다. 이 아이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있다. 당찬 겉모습과 달리 섬세하다.

241쪽

가수 Loco를 보겠다며 무작정 도쿄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전차에 탑승한 유키에는 유키가 없었다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좋은 집안의 미소녀였으며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상위 영역의 여학생이였다. 초등학생 시절 남몰래 도쿄에 가겠다며 혼자 앉아있던 그녀에게 유키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준 적이 있었다. 유키에는 유키의 위로에 마음의 위안을 얻었지만 재회했을 때에는 어린 마음에 노골적으로 그를 무시했었다. 그럼에도 유키는 끝까지 유키에에게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타인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유키에에게는 누구에게도 말 못한 사정이 있었는데….


우리가 맞은 만큼 누군가를 떄려도 우리가 맛본 고통은 상쇄되지 않는다. 그것을 젊었을 때 이해했다면 조금 더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 인생 경험이 필요해서, 이해했을 때에는 지나간 실수를 되돌아보는 처지일 때가 흔하다. 그러니 하다못해 더는 나빠지지 않도록 뒤늦게나마 막아보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부조리해도 우리에게는 그것이 성장이다.

254쪽

아들을 혼자 키우는 단단한 엄마 시즈카.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냐는 물음에 늘 점잖고, 건강한 훌륭한 사람이었다고만 답한다. 그러나 점잖고 훌륭한 남자와 아이를 가졌을 것이라고는 상상이 안되는 거친 그녀의 모습이 어딘가 아이러니하다. 홀로 아이를 키우며 힘든 내색 없이 살아왔던 그녀에게 한 달 이라는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헌데 하나뿐인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와 함께 도쿄에 가야한다고 통보한다. 그에게 쥐어주는 칼 한자루와 돈.

결국 그녀는 아들의 위험을 감지하고 아들을 찾아가 함께 여정을 떠난다. 야쿠자였던 전 애인, 사랑하는 아들, 아들이 좋아하는 여학생이라는 희한한 조합과 함께하는 마지막 한 달간의 시간. 아이러니하게도 무리 안에서 그녀는 삶의 소중함을 느낀다. 함께 밥을 지어먹고, 시간을 보내고 농담을 주고받는 평범한 가족의 일상. 시즈카가 그것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던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좋아요'를 누른다. 혹은 누르지 않는다. 상대방도 좋아요를 누른다. 혹은 누르지 않는다. 마지막 날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번식하듯 연결되어 간다.

385쪽

가수 Loco가 오사카에서 마지막 공연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마지막 공연일 뿐만 아니라 청중에게도 마지막 공연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번식하듯 연결되어 간다' 라는 말이 와닿았다. 지금도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되어간다. 인터넷에 접속해 누군가에게 게시물을 전달하고, 의도하지 않아도 같은 네트워크에 접속한 익명의 이들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우리가 진정으로 소중하게 생각해야할 것을 분간하는건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인간은 너무 많은 선택지가 주어지면 오히려 혼란스러워한다고 한다. 차고 넘치는 관계와 정보 속에서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들을 잊고 산다. 그것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말이다.

그래서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는 극단적인 환경을 제시한다. 한 달 뒤에 지구에 혹성이 떨어져 모두가 죽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것을 추구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그러나 한 번 쯤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보며 최선을 솎아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극단적인 상황이 오지 않았음에, 최선의 것들이 내 곁에 있음에 "다행이야,よかった。" 라고 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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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기의 달이 뜨면 - 1940 런던 공습, 전격하는 히틀러와 처칠의 도전
에릭 라슨 지음, 이경남 옮김 / 생각의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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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ccess is the ability to go from one failure to another with no loss of enthusiasm.

성공이란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를 거듭할 수 있는 능력이다.

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

[폭격기의 달이 뜨면]은 1940년과 1941년 경 영국의 총리 처칠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논픽션 작품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2차 대전 동안 일어난 크고 작은 상황을 열거해 놓은 형식으로, 처칠의 정치적인 행보뿐만 아니라 가족사, 개인사까지 두루 짚어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2차 세계 대전에 대한 정보보다 처칠의 인간적인 면모와 그의 가족들의 사사로운 사건들이 흥미로웠다. 특히나 친구이자 동료인 비버브룩에 대한 믿음과 집착은 위풍당당한 한 나라의 수장으로서 처칠이 아니라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는 한 인간으로 비춰질 수 있게끔 느껴지게 만든다. 그래서 처칠의 인간적인 모습들과 그의 측근들이 겪은 재밌는 일화들을 중심으로 소개해볼까한다.


1940년

콜빌은 자주 전화를 받았고 그때마다 처칠을 찾았다. "윈스턴을 찾으러 장미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콜빌은 일기에 그렇게 썼다. 그는 처칠에게 프랑스인들이 곧 항복할 것 같다고 말했다.

처칠은 말했다. "그들에게 말하게. …그들이 함대를 우리에게 넘긴다면 결코 잊지 않겠지만 만약 그들이 우리와 상의하지 않고 항복한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야. 그들의 이름을 천년 동안 욕되게 할 것이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덧붙였다. "물론 아직은 그러지 말게."

129쪽

물론 아직은 그러지 말게… 이 부분을 읽고 피식했다. 오로지 물리학자 린드만에게 초점을 두고 어떻게해서든 승리를 쟁취하려는 처칠, 그가 자신만만하게 외친 결코 용서하지 않을것이며, 천년 동안 욕되게 할 것이다! 이후에 덧붙인 기운빠지는 이 한마디. 실행력이 뛰어난 처칠이지만 동시에 사리를 잘 살피는 훌륭한 계략가이기도한 그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


메리 처칠과 그녀의 친구 주디 몬태규에게 조종사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두 처녀는 노퍽에 있는 주디의 시골저택인 브레클스홀Breccles Hall에서 '한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메리의 표현대로 "특별한 친구"가 되었고 …"건초더미에서 가벼운 애무를 하거나 그냥 정원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남자들은 대부분 20대였고 중산층 출신이고 미혼이었다. 메리는 그들에게 묘한 매력을 느꼈다.

197쪽

물론 훗날 메리 처칠은 적십자사에서 활동하며 자원봉사단으로 전쟁에 합류한다. 그러나 크고 작은 공습으로 사상자가 날마다 늘어가는 판국에 폭격기 조종사들과 저택에서 희희낙락하고 있는 모습은…. 생각해보면 국가에 큰 위험이 닥칠 때마다 목숨을 잃고 고통받는 이들은 힘없는 민간인들이었다. 영국 최고 권력자의 막내딸이 조만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조종사들과 이토록 평화로운 희롱을 즐기는 것은 큰 일도 아니리라. 하지만 읽으면서 썩 유쾌하지 않았다.


전쟁의 트라우마를 진정시키는 가장 보편적인 처방은 단연 차(茶)였다. 차는 전쟁을 견딜 힘을 주었다. 사람들은 공습이 계속되는 중에도, 산산조각이 난 건물에서 시신을 찾다 잠깐 쉴 때도 차를 끓였다. …선전 영화에서 차를 끓이는 모습은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의 상징적 비유로 사용되었다. …전쟁 중 런던을 다룬 한 연구 자료는 그렇게 밝혔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차 한 잔은 실제로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린드만은 처칠과 각별한 사이였지만 그의 만류는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일주일에 3온스로 늘어난 차 배급제는 1952년까지 그 효력이 지속된다.

그러자 사람들은 사용한 찻잎을 다시 쓸 수 있도록 말렸다.

274쪽

처칠의 최측근 중 한명이었던 린드만은 전쟁으로 가장 심한 고통을 받는 계층이 노동계급과 일용직임을 언급한다. 동시에 차 배급과 사기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으므로 엄격한 차 배급제를 지양할 것을 간접적으로 제안한다. 그러나 처칠은 여전히 적은 양의 차 배급을 유지한다.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는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영국 국민들의 차 사랑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차 배급제가 이루어진 나라는 몇 없을 것이니….


특히 부자연스러운 것은 그런 회색 바탕과 대조되는 핏빛이었다. 작가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은 폭탄을 밪은 건물에서 빠져나오는 군인들을 본 어느 날 밤 "먼지가 뽀얀 찢어진 잠옷에 핏빛 반점이 선명한 남녀들이 문간에 서있는 연옥"을 보았다.

309쪽

영국 전시소설의 대가 그레이엄 그린이 폭격의 현장에 있었구나. 그의 소설 [사랑의 종말The End of the Affair]의 배경이 폭격을 맞은 영국 런던이다. 루프트바페의 3차례에 걸친 공습은 영국을 무너뜨렸다. 하늘이 불타고 지상은 화염으로 가득찼다. 회뿌연 먼지는 사망자와 생존자를 가리지 않고 덮쳤다. 장면을 상상하며 읽으니 [사랑의 종말]의 장면 장면이 스치는 듯 하다.


1941년

비버브룩의 입장은 확고했다. 그는 토라진 학생처럼 1월 6일 월요일에 애당초 장관이 되고 싶었던 적도 없다고 처칠에게 말했다. …그는 다시 한 번 새 의장직을 거절하면서 항공기생산부 장관직도 사임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지나친 요구였다. "자네를 놔줄 생각은 추호도 없네." 처칠은 그렇게 답장했다. "자네가 그렇게 비정사적이고 쓸모없는 고집을 부린다면 나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고 느낄 것이네." 보기에 따라서는 총리의 의견 전달이 아니라 버림받은 애인의 편지에 더 가까웠다. "…내가 얼마나 자네의 조언에 의지하고 위로를 받는지는 누구보다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자네가 이렇게 나오다니 믿을 수가 없네."

489쪽

애초에 처칠이 비버부룩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위임했다. 그는 전시에 급박하게 신설된 항공기생산부 장관직뿐만 아니라 처칠의 크고 작은 업무를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버브룩이 저토록 강경하게 사임을 주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비버브룩은 2차대전이 마무리 될 때까지 처칠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비버브룩은 처칠의 믿음직한 친구로, 든든한 조력자로써 영국사의 한 획을 긋는다.


"하지만 이건 진짜다. 카페드파리가 당했다. 죽은 사람도 부상자도 많이 나왔다. 그들도 우리처럼 춤추고 웃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에서 한순간에 거대하고 무한한 미지의 세계로 사라졌다."

일행이었던 메리의 친구 톰 쇼네시Tom Shaughnessy는 그 비극을 사후세계와 연결시켜 상상했다. "카페에서 급사한 사람들이 갑자기 살아나 여기 있는 우리를 본다면 이렇게 말할 거야. '계속해. 음악, 주세요. 계속해, 런던.'"

551-552쪽

만일 메리 처칠이 카페드파리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있었다면 2014년까지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우연과 우연이 겹쳐 사라진 자와 살아남은 자로 나뉘었고, 살아남은 그들은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 했던가. 전쟁이 발발하던 이 시기의 선택은 몇가지 변수로 생사의 갈림을 결정지었다. 흥겨운 순간이 생존의 비명으로 뒤바뀌는 순간은 찰나였다. 여담으로 처칠의 딸 메리는 참 운이 좋은 여인네같다.


같은 주 수요일에 비버브룩 경은 처칠에게 또 다시 사표를 제출했다. "나는 정부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오랜 우정을 인정하는 말로 문제를 얼버무렸다. "헌신과 애정으로 제 공식적인 관계를 끝내려 합니다."

"개인적인 관계는 그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그렇게 덧붙였다.

결국 처칠도 승낙했다.

… 5월 1일 목요일에 처칠은 비버브룩을 '정무장관(Minister of State)'에 임명했고 비버브룩은 "저를 그냥 보내주셔야 한다"며 거세게 항희한 후 그 직책을 수락했다. 하지만 그는 그 직책이 영국의 모든 생산 공급부처를 관할하는 위원회를 감독한다는 기본 임무만큼이나 모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523쪽

영원히 고통받는 비버브룩…. 그는 몇 번이고 처칠에게 사임의사를 표명한 듯 했다. 그러나 처칠은 만만치않은 상대였다. 정부 일을 그만두는 것을 승낙하면서 또 다른 직책을 부여하는 처칠, 그리고 마지못해 받아들여야하는 비버브룩. 그들은 정치적인 관계 이상의 끈끈한 우정으로 다져져있다. 그렇기때문에 비버브룩경은 결국 처칠에게 백기를 든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새로운 직책이 영국 대중들에게는 환영받았다. 어떤 면에서는 비버브룩이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정부 직책을 포기할 수 없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도 들었다.


요제프 괴벨스는 처칠의 하원 연설이 '변명'만 가득할 뿐 알맹이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나약하다는 조짐은 안 보인다."… 괴벨스는 일기에서 처칠에 대한 새삼스러우 존경심을 털어놓았다. "이 사나이에겐 영웅심과 교활함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만약 그가 1933년에 정권을 잡았다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몇가지 문제가 더 생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해결할 수 있고 실제로 해결할 것이다. 그래도 여느 때처럼 그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될 것 같다."

643쪽

괴벨스는 처칠을 존경함과 동시에 이길 승산이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실제로 이 시기는 일본이 합세하면서 독일군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는 시기였다. 괴벨스는 철저히 영국을 굴복시킬 심산이었고, 실제로 이어진 공습과 독일군의 영국진지 탈환은 영국을 점점 더 어둠속으로 고립시켰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세계 2차 대전은 독일의 완벽한 패배로 마무리된다.


작품 자체가 열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했다. 일단 방대한 양 자체가 그렇고 등장하는 인물들도 매우 다양하다. 그래서 읽는 내내 전체적인 맥락과 측근들의 시선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패전국과 미국이 중심이 되었던 머릿속의 세계사 부분에 영국이라는 나라가 완벽히 자리잡을 수 있었다. 또한 처칠의 인생 중 가장 중요한 시기 중 한 부분을 그의 둘도 없는 친구처럼 알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봐야하는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이 거대한 서사를 정복하고 나니 앞으로 그 어떤 책도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처칠과 같은 신념과 정복욕을 가진 자라면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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