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날씨 - 위기가 범람하는 세계 속 예술이 하는 일
올리비아 랭 지음, 이동교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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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꿈꾼다.

사람들이 단일한 형태가 아니라 복잡하고 역동적이며 뒤섞인

커뮤니티 속에서 사는 삶이 훨씬 건강하다는 것을 깨닫는 날을.

특권 의식과 억압에 기반한 행복은

문명화된 의미의 행복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날을.


대부분 작품의 배경이 20세기, 최소 20년 전 이상이었으나 나에게 너무 진보적으로 다가온 작품이다. 읽다보면 진보성과 원시성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작가는 테디베어 우드 개발을 반대하며 대학을 그만두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본 경험을 갖고있다. 자연을 파괴하는 지상의 구성원이 아닌 원초적인 인간으로서 자연과 융화의 존재가 되기위함이였다. 그러나 이미 문명을 겪은 그녀로는 이 원시적인(잠자리에 쥐가 기어다니고, 머리맡 뱀과 마주하며 불을 피우고 물을 길어서 씻던) 경험을 통해 자연에서의 고립은 자신을 갉아먹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스트레스이면서 동시에 지속적인 행복의 원천임을 깨닫는다.

이런 올리비아 랭이 풀어내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작품과 그들의 삶이 시대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또 시대는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집중한다. 또한 올리비아 랭 그녀를 포함한 한 때는 삼류였던 작가들이 혐오와 위태로운 세상 속에서 예술을 풀어나갔는지를 제시한다. (삼류였던 그들은 훗날 일류로 평가받거나 새로운 의미로 재평가된다.) 이로써 이 작품으로 흥미로운 예술가들을 알게되었다. 특히 데릭 저먼, 크리스 크라우스, 샐리 루니의 작품은 다시 한 번 찾아볼 예정이다. 초반에는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떠오른 작가들을 주로 다루고 있는지라 그들의 예술관이 다소 번잡하고 어려워서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후반부에 맨부커상 후보에 오르거나 영국 BBC 에서 드라마화된 작품을 제작한 21세기 작가들이 등장하며 나의 이목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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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붓질이 겹쳐서 미세하게 색이 진해진 부분처럼 아주 사소한 디테일에 시선이 머문다. 그 외에는 달리 시선을 붙들 데가 없기 때문이다. 관점도, 종결도 없이 오직 눈부시게 빛나는 개방만이 있을 뿐이다. 마치 창문 없는 방 안에 바다가 들어온 것 처럼

- 예술가의 삶, 애그니스 마틴. 114쪽

사실 이 작품은 매우 적나라한 퀴어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주된 내용은 예술가와 그들의 삶이지만 적지 않은 그들의 삶이 퀴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진보된 관념은 사랑과 그 방식에도 적용되었다. 태초부터 만들어진 그들의 천재성이 어쩌면 당시 아류로 분류되던 정체성과 불가분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들은 입구도, 출구도 없는 사랑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퀴어를 왜곡된 사랑의 방식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면 [이상한 날씨]는 다소 불편한 작품이 될 수 있다. 퀴어를 옹호하거나 혐오하지 않는 나도 간혹 노골적인 표현이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예술은 하나의 언어였다. 누군들 나 자신으로 살고 싶지 않은가. 시대가 받아들여주는 자아와 부정당하는 자아 사이에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술이었다. 그리고 작품으로써 그들과 유사한 갈등을 겪는 이들과 세상에 경종을 울렸다. 워나로비치, 저먼, 존조셉, 글럭스타인 등이 그렇다. 눈부시게 빛나는 개방만이 있는 세상을 바랐던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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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을 향해 서서 손을 맞잡고 복잡한 춤을 추는 사계절의 신들처럼 우리 인간은 느리고 세심하면서도 때론 항상 엉성하게 스텝을 밟으며 구체적인 발전을 이루기도, 의미 없는 회전에 접어들기도 한다. 그사이 함께 춤을 추던 동지들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며 장관에 패턴을 더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선율을 선택할 수도, 어쩌면 춤의 스텝을 조절할 수도 없다."

- 시간이라는 음악의 춤, 235쪽

어떤 의미로 이 작품은 진화 중인 인류의 양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메이저들은 마이너라고 규정한 이들을 핍박하고 마이너가 메이저로 변모하기도 하면서 무리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는 일련의 발전 과정, 동시에 원시적인 모습으로 회귀하기도 하는 양상 말이다. [이상한 날씨]에서 예술가들은 가장 진보적이면서도 가장 원시적인 모습을 보인다. 영국 아방가르드 영화계를 대표하는 데릭 저먼은 급진적 퀴어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정원사였다. 에이즈로 사망하기 전까지 파괴된 미래와 존재하지 않을 미래에 대한 공포를 뒤로한 채 정원을 가꾸고 사랑을 나눴다. 어쩌면 데릭 저먼은 마이너한 본인의 정체성을 메이저한 작품으로 승화시키며 성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은 동일선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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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파괴하는 소설, 순수하게 사적 내러티브를 제공해야하는 임무를 거부하는 회고록, 《아이 러브 딕》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는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를 이어받은 최근의 후계자로는 실라 헤티Sheila Heti의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How Should a Person Be》, 제니 오필Jenny Offil의 《사색의 부서 Dept. of Speculation》, 메기 넬슨의 《아르고노트》처럼 정치적인 목적으로 회고록과 소설을 결합한 작품들이 있다.

크라우스가 "외로운 여자 현상학"이라 칭한 이런 책들의 선조를 꼽는 건 더 어렵지만, 버지니아 울프와 앨리스 노틀리Alice Notley, 윌리엄 버로스William Burroughs,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 그리고 제인 볼스를 떠올릴 수 있다.

- 서평, 《아이 러브 딕》, 346-347 쪽

[이상한 날씨]에서 언급하는 여류 작가들은 목적이 명확하다. 특정 시대에서 여성은 비주류로 여겨지기 쉽상이었다. 이들은 보부아르의 [제 2의성]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답습된 사회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주체 의식이 부족할 수 밖에 없게끔 육성되었던 여성의 틀을 벗어 던졌다. 발칙하고 자극적인 클리셰로 작품을 이끌어가는가 하는 반면 특유의 섬세함을 활용해 그들의 시선 속 삶으로 인도한다. [이상한 날씨]를 읽으며 가장 좋았던 점 한 가지를 꼽으라면 지체없이 수많은 여류작가들을 알게 되었던 점을 꼽겠다. 앞서 언급한 여류 작가 이외에도 올리비아 랭은 힐러리 맨틀에 대한 단상을 남겼다. 힐러리 맨틀은 [울프 홀]과 [Bring up the Bodies]로 무려 두 번이나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싸워서 굴복시킬수는 없고 손을 내밀어서 내게 오도록 해야 하죠. 그래야만 와서 이야기가 돼요."

작품으로써 웅장한 역사적 서사를 남긴 그녀의 삶은 나에게 많은 것을 전해주었다. 그녀는 혐오와 분노의 시대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그것이 삶에 선순환적 동력이 될 수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시대에 휩쓸려 자신이 겪었던 아픔에 머물러 있었다면 힐러리 맨틀은 진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통을 고통으로 짓이기지 않고 묵묵히 시간을 견디는 것, 맨틀이 주고자 하는 지혜를 나에게도 녹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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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 호크니, 라우션버그 등의 예술가들은 당대에는 즉시 인정받지 못했다. 그들은 혐오와 싸우며 그들만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그것을 일류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세상에 그들의 흔적을 완벽히 남겼다.

사실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생소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모르는 사람들의 전투적인 일대기를 훑는다는 느낌으로 접근했다. 중간에 자주 등장하는 섹션28과 같은 법안에 대해 검색해봐야 했고, 특히 작품에 대한 설명이 활자로는 다가오지 않아 독서와 동시에 작품을 감상해야하는 과정이 번거롭다고도 느껴졌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이상한 날씨]가 아니었다면 알 수 없었던 작품들이 있었다. 특히 오키프를 알게 된 것이 매우 기뻤다. 마음을 평안하게 만드는 색채와 왠지 가슴 설레는 부드러운 선, 한순간에 매료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제 2의 오키프, 맨틀, 바스키아, 호크니, 라우션버그들은 또 어떤 싸움을 하고 있을 것인지,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빛을 보는 그 때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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