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접했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는 다르게 빅터는 현실에서 삶의 의미를 추구할 것을 명시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과 사회의 규범은 항상 갈등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삶은 시련의 연속이라 한 반면, 빅터는 무의식보다 현재 본인이 처한 환경에 닥친 시련을 극복하고 그 것을 본인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빅터는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아내와 부모님, 형을 잃고 만신창이가 된 채 현실로 복귀했다. 지옥과 다름없었던 곳에서 그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로고테리피 정신에 입각한 그의 정신력 덕분이였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인 현실을 부정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느니 오히려 그것을 직면해서 작품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수용소 이후의 빅터가 제시한 로고테라피는 다소 무겁고 깊은 느낌을 받았다. 책에 따르면 빅터는 선천적으로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언급된다. 이는 그가 애초에 삶을 즐기고 사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특화되어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닥친 시련에 대해 무의식과 미련이라는 방해요소로 발목을 잡히지 않고 앞으로 진전할 수 있었다. 수용소 이전의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가 마음의 공허함과 정신적 고통을 경감시키고 경험으로써 받아들일 수 있게끔 도모했다면 수용소 이후의 로고테라피는 버틸 수 없는 시련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그것을 삶의 의미로써, 인생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는 발판으로써 역할에 충실하다. 단순히 삶의 시련을 넘어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무의식에 가둬버리지 않고 삶의 일부분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