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나기라 유 지음, 김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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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간식으로 내줄게. 비축용 크래커에 바르면 맛있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자 유키가 환하게 웃었다.

"왠지 요즘 어머니는 정말 '어머니' 같아."

"응?"

"오후 간식이라니."

유키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뒤뜰로 나갔다. 열일곱살 유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갓난아기였을 때, 어린아이였을 때, 초등학생이었을 때, 중학생이었을 때의 유키를 떠올렸다.

─ '어머니' 같아.

그러게, 이제 와서 말이지. 서글픈 웃음이 나왔다. 나는 언제나 일 때문에 바빠서 유키의 곁에 거의 있어주지 못했다. 유키는 언제나 아무도 없는 아파트에 돌아와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오후 간식은 한 번도 만들어준적이 없었다.

─ 늦었지만 기회를 얻어서 다행이야.


얼핏 보면 전혀 접점이 없어보이는 조합의 네 사람이 모였다. 네 사람이 '만났다' 라는 표현도 생각났지만 그들은 우연히 '만났다'라기 보다는 어떤 공통 속성을 지니고 '모였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작품은 유키의 현실도피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노우에 무리에게 괴롭힘 당하고, 심부름 담당인 학교폭력 피해자 유키는 머릿속으로 가해자 무리를 저주한다. 정말 고통스러운 저주는 아니고 주문할 음식을 잊어버린다던지 같은 가볍고 유머스러운 저주이다. 고통스럽고 잔인한 저주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유키는 태생적으로 선한 인물같았다. 어느 날 뉴스에서 흘러 나오는 지구멸망설, 한 달 뒤면 지구가 멸망한단다. 그런데, 유키가 도쿄에 꼭 가야하는 이유가 생겼다.


급격히 시야가 흐려져서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앞으로 한 달이면 죽는 이 마당에, 세상에 태어난 기쁨을 곱씹고 있다. 이런 막바지에,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어째서? 어째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나는 여기에 있는 누구보다도 머리가 나쁘다.

202쪽

신지는 야쿠자다. 정확히 말하면 야쿠자 아래 잡일을 도맡아하는 하수꾼이다. 몸을 쓰는 일밖에 할 줄 몰라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만 한다. 그리고 마음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들짐승같은 사나이다. 그런 그가 우연히 만난 학교폭력 피해자 유키. 미혼모 시즈카의 부탁으로 도착한 이 곳에서 유키를 구한다. 그렇게 뭉친 네 사람. 유키, 유키에, 신지, 시즈카. 쌩뚱맞은 조합의 네 사람의 여정이 시작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전개가 펼쳐진다. 남긴 피붙이 하나 없어 스스로를 고독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은 신지,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그가 기쁨의 눈물을 흘릴 만큼 가슴 벅찬 일은 무엇이었을까?


죄송해요, 하고 유키에가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고마워"

"네?"

"자기가 누군가를 상처 입혔다는 사실은 잊고 싶은 법인데, 계속 기억했다가 사과해줬잖니."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너무 용서해도, 너무 용서하지 않아도 안 된다. 이 아이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있다. 당찬 겉모습과 달리 섬세하다.

241쪽

가수 Loco를 보겠다며 무작정 도쿄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전차에 탑승한 유키에는 유키가 없었다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좋은 집안의 미소녀였으며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상위 영역의 여학생이였다. 초등학생 시절 남몰래 도쿄에 가겠다며 혼자 앉아있던 그녀에게 유키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준 적이 있었다. 유키에는 유키의 위로에 마음의 위안을 얻었지만 재회했을 때에는 어린 마음에 노골적으로 그를 무시했었다. 그럼에도 유키는 끝까지 유키에에게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타인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유키에에게는 누구에게도 말 못한 사정이 있었는데….


우리가 맞은 만큼 누군가를 떄려도 우리가 맛본 고통은 상쇄되지 않는다. 그것을 젊었을 때 이해했다면 조금 더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 인생 경험이 필요해서, 이해했을 때에는 지나간 실수를 되돌아보는 처지일 때가 흔하다. 그러니 하다못해 더는 나빠지지 않도록 뒤늦게나마 막아보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부조리해도 우리에게는 그것이 성장이다.

254쪽

아들을 혼자 키우는 단단한 엄마 시즈카.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냐는 물음에 늘 점잖고, 건강한 훌륭한 사람이었다고만 답한다. 그러나 점잖고 훌륭한 남자와 아이를 가졌을 것이라고는 상상이 안되는 거친 그녀의 모습이 어딘가 아이러니하다. 홀로 아이를 키우며 힘든 내색 없이 살아왔던 그녀에게 한 달 이라는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헌데 하나뿐인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와 함께 도쿄에 가야한다고 통보한다. 그에게 쥐어주는 칼 한자루와 돈.

결국 그녀는 아들의 위험을 감지하고 아들을 찾아가 함께 여정을 떠난다. 야쿠자였던 전 애인, 사랑하는 아들, 아들이 좋아하는 여학생이라는 희한한 조합과 함께하는 마지막 한 달간의 시간. 아이러니하게도 무리 안에서 그녀는 삶의 소중함을 느낀다. 함께 밥을 지어먹고, 시간을 보내고 농담을 주고받는 평범한 가족의 일상. 시즈카가 그것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던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좋아요'를 누른다. 혹은 누르지 않는다. 상대방도 좋아요를 누른다. 혹은 누르지 않는다. 마지막 날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번식하듯 연결되어 간다.

385쪽

가수 Loco가 오사카에서 마지막 공연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마지막 공연일 뿐만 아니라 청중에게도 마지막 공연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번식하듯 연결되어 간다' 라는 말이 와닿았다. 지금도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되어간다. 인터넷에 접속해 누군가에게 게시물을 전달하고, 의도하지 않아도 같은 네트워크에 접속한 익명의 이들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우리가 진정으로 소중하게 생각해야할 것을 분간하는건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인간은 너무 많은 선택지가 주어지면 오히려 혼란스러워한다고 한다. 차고 넘치는 관계와 정보 속에서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들을 잊고 산다. 그것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말이다.

그래서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는 극단적인 환경을 제시한다. 한 달 뒤에 지구에 혹성이 떨어져 모두가 죽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것을 추구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그러나 한 번 쯤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보며 최선을 솎아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극단적인 상황이 오지 않았음에, 최선의 것들이 내 곁에 있음에 "다행이야,よかった。" 라고 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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