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이웃 - 허지웅 산문집
허지웅 지음 / 김영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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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분인 허지웅 작가님의 신작<최소한의 이웃>이 나왔다. 대학 시절 <버티는 삶에 관하여>를 읽고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 경험이 있다. 최선을 다해 살자는 말은 조금은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무기력한 일상과 무리하는 일상 단 두 가짓수 뿐이었던 일상이었다. 그래서 <버티는 삶에 관하여>를 읽고 생각을 덜어내는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웃

명사

1. 가까이 있거나 나란히 이어서 경계가 접하여 있는 것.

2. 가까이 있거나 접하여 있는 집. 또는, 거기에 사는 사람.

옥스포드 사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옛날에는 다 아는 거 같았는데 갈수록 뭘 아는 게 없어. 해답은 없고 질문만 많아지니 조용히 책이나 읽어야 겠습니다.

190쪽

<최소한의 이웃> 중 마음에 오래 머무른 몇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1부 애정 [두 사람의 삶 만큼 넓어지는 일] 중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한 학생들이 처벌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현한 편이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세상을 인내하는 방법은, 어쩌면 그렇게 감싸 안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을 살면 살 수록 모르는 일 투성이인듯 하다. 상호간 애정을 담뿍 주는 일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강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폭력을 행사하는 세상의 단편은 너무나 잔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웃]의 사전적 의미는 거리적 감각일 뿐이다. 사전 상 가까이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다만 평소 이웃과 붙어 있는 단어와 문장들을 생각해보면, 이웃+사촌, 이웃+나라,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 대부분이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우리는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주변에는 다양한 이웃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알면 알수록 요지경인 이 세상에 누군가의 "최소한의 이웃"이 된다는 일은 적어도 거리 상 가까이 있는 개체에게 상처는 주지 말자는 의미가 아닐까.


-

그릇에 담아내는 시간도 아까워 봉지에 들어 있는 그대로 두고 젓가락으로 헤집다가 한입 가득 베어 물면, 친구와 싸운 일도 고백할까 말까 망설이던 얼굴도 별 이유도 없이 화를 내는 상사 목소리도 함께 삼켜 꿀꺽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나는 뭐 내가 대단해서 잘 견딘 줄 알았지. 떡볶이가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246쪽

한 때 떡볶이가 들어간 제목이 들어간 책이 유행했다. 무겁지 않은 내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던 책이지만 어째선지 나는 거부감이 밀려왔다.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 떡볶이를 생각하고 힘을 낸다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5부 성찰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고단함]의 글을 읽고 그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나는 뭐 내가 대단해서 잘 견딘 줄 알았지.", 단촐한 이 문장은 어느 하루 동안 경종이 되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죽음은 항상 가까이에 있고 삶을 포기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나를 버틸 수 있게 하는 것들은 크고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음었다. 이렇듯 사소하고 소중한 그것들을 잊곤 한다. 그 작은 것들은 삶의 벼랑에서 어찌어찌 버틸 수 있는 특별한 존재들임을 잊지 말아야지. 이젠 관둘 수 없는 삶이다. 지치면 쉬면서 붙들어야 할 이 삶, 작은 이웃들에게 미리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근래 읽은 <최소한의 이웃>은 주변에 이웃을 많이 두지 않는 나로서는 관심이 가는 제목이었다. <최소한의 이웃> 서평단을 신청하기 위한 양식 중 "당신이 생각하는 이웃은 어떤 존재인가요?" 비슷한 질문이 있었다. 즉각적인 생각을 담았고 보통 이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기억을 더듬어 남겨본다.

[ 누군가와 너무 가까운 이웃으로 지내는 일을 버거워합니다. 그래서 이웃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다만 어떤 이웃이 되는 게 좋은 이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것은 더 묻지 않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가까운 누군가가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면 아, 거짓말을 할 만한 이유가 있구나 하고 더 이상 묻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면 아, 고해를 할만한 더 어려운 사정이 있었겠구나 하는 겁니다. 누군가의 이웃이 된다면 너무 많은 것을 알지 않는, 알아도 한쪽 눈을 가린 채 응답하는 이웃이 되고 싶습니다. ]

<최소한의 이웃>은 우리 주변의 이웃에 대한 단상 모음집이다. 그 이웃은 사람일수도, 매체일수도, 장소일수도, 음식일수도 있다. 나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던 개체들과 문득 생각나는 따뜻했거나 혹은 서늘한 기억들이다. 함께 사는 일, 그것은 누구에게나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지웅 작가님은 바란다. 타인에게 바라는 이웃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기를, 서로에게 분노와 불신을 거두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최소한의 이웃이 될 수 있기를, 무례하지 않게 조금은 안온한 눈길을 보낼 수 있기를.


🎁

본 책 허지웅 작가님의 <최소한의 이웃>은 김영사 서평 이벤트 당첨으로 수령했습니다.

행복한 독서를 선물해주신 김영사 담당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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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사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2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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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가 자네들을 중상한다고! 나, 나라면 그렇게 믿겠지! 그러나 대중은 어찌 생각하겠는가? 그것이 중요한 점이네. 미쉬가 상원 의원을 총으로 겨눴는데, 상원 의원은 그걸 잊지 않고 있다네. 자네들이 돌아온 이후부터, 백작 아가씨는 미쉬를 자기 집에 데려다 놓았어. 그러니까 여러 사람과 대부분의 대중에게는 말랭의 생각이 옳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 망명자들의 재산을 소유하게 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망명자들의 입장이 얼마나 미묘한 것인지 자네들은 모르고 있어. 눈치 빠르 사람인 지사가 어제 나한테 자네들에 관해 몇 마디 넌지시 이야기 했는데, 그것이 나에게 불안감을 주었어. 요컨대 내 생각에는 자네들이 여기에 없는 편이......."

197쪽


정치는 어렵다. 한 번 찍힌 낙인을 지우기기도 어렵고 누구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미쉬는 반대편으로 보이는 쪽을 선택했다. 누구를 옹호하는지 명확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된 스파이의 행적을 보이지도 않는다. 1장 경찰의 시름 편 후반부는 숨막히는 심리전의 연속이었다. 속이려는 자와 속지 않으려는 자들, 활약하는 작은 사람들까지. 어디서 쿠데타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던 격동의 프랑스 시기여서 그런지 목 하나 뎅강 날아가는 일은 별 일 아닌듯 했다. 다만 누가 결국 단두대로 향할지가 관건이었다. 말랭, 미쉬, 로랑스 등 <어둠 속의 사건>속 인물들은 매우 입체적이다. 그들을 정리하고 이해하기가 아직도 난해한 구석이 있지만 발자크의 문체에 점점 빠져드는 중이니 문제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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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1
임레 케르테스 지음, 이상동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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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를 찾는 일은 그만둡시다. 의미 따위는 없는 곳에서: 금세기, 이 중단 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발포 명령은 다시 한번 대량 학살을 준비하고 있으며, 그리고 운명은 사형수의 제비를 나에게 쥐여 주려고 한다는 것, - 그것이 전부입니다."

109쪽


임레 케르테스가 한 차례 출간을 거부 당하고, 결국 출간된 서적의 인물의 마지막 한 마디이다. 인물이지만, 작중 본인의 마지막 말이라고도 언급되어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를 읽으며 다양한 방점들의 의미를 찾고 있었다. 연속적인 열거는 쉼표(,), 이어지는 내용은 쌍점(:), 숨을 고를 때면 온점(.) 등이 아니었을까 싶으며 기계적으로 읽던 와중, 숨을 고른 뒤 다시 거세게 이어지는 문장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위에 작성한 발췌 부분을 만났다. 임레 케르테스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을까. 이 세상에 의미를 찾고 정해진 대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부정할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 수 밖에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들.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는 작가가 대면한 피할 수 없었던 고통과 그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든 승화하려는 발악이 느껴진다.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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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1
임레 케르테스 지음, 이상동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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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나는, 그것의 원인이 우리의 현실에, 우리들 인간이 처한 상황이라는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그것은 빈번히 찾아오지만,그럴 때마다 당황스러운, 당시에, 그러니까 특히 당시에는 더더욱, 참을 수 없는 만큼 격한 감정과 함께 시작되는데, 나의 삶이 단지 날숨 한 번이면 날아가 버릴 가느다란 한 가닥 실에 매달려 있는 듯 한 기분이다, 그것은 내가 살게 될 것인가 죽게 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는 죽음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직 생존에 대하여 이야기 하려는 것이다. 

- 90쪽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가 누군가에게 인생책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숨이 차게 서술한 그 글이 왜 그렇게까지 와닿았는지 이해가 가기 어려웠다. 그러나 매 순간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임레 케트레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들숨과 날숨 같다.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실에 매달린 기분, 그런 삶을 살아보지 않음에 감사하다고 느껴야 할까. 그것도 당사자에겐 실례일 것 같다고 느끼지만,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후대에게 물려줄 자신의 세상이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기를 바라는 마음에 낸 운명 3부작이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를 읽고 주어진 시간과 평안함의 감사함을 잊어버린 사람이 느낀 것이 많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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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사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2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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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정부에 필요한 약국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성격을 언어에서 명시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경찰관들을 구별하는 모든 뉘앙스가 '스파이'라는 강력한 뜻의 명사 하나로 수렴해 발한다. 그 스파이는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는 대단하고도 흥미로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스파이는 성직자들의 기독교적 겸양과 비슷한 성격을 지니며 경멸에 단련된 눈을 지니고 있다.

...중략

그는 모욕에 대해서는 청동 같은 얼굴을 지니며, 대포가 아니고서는 손상되지 않는 단단한 등껍직을 가진 동물처럼 자신의 목표를 향해 곧장 나아간다. 그러나 또한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철갑이 뚫릴 수 없다고 믿는 만큼, 타격을 받게 되면 더욱더 화가 치미는 것이다.

143쪽


이 정도 묘사라면 오노레 드 발자크가 스파이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같은 얼굴로, 같은 태도로 일관하며 타인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 스파이, 그렇기 때문에 타격을 받게 되면 더욱더 화가 치미는 부분까지의 묘사가 훌륭하다. 발자크의 작품이 다큐멘터리처럼 느끼는 부분은 많다. 그 중 하나는 상황을 심도있게 관통한다는 점이다. 스파이-안티 스파이간의 강렬한 스파크가 느껴진다. 영화 <스파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경찰-조직세력, 단 두 가지라는 점에서 아주 단편적이라는 것이 다르다. <어둠 속의 사건>은 양지가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건이 음지에서 이루어진다. 음지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두 가지 세력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둠 속의 사건>을 읽으며 어려운 부분이 아직도 있지만 입체적인 인물들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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