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욕망을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자본에 맞세우는 움직임을 거부하는 편입니다. 한편에 평등과 연대가있고 다른 한편에 욕망과 오락이 있어 이 둘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리얼리즘 자체의 한 단면에 속합니다. 가령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욕망이 오직 자본주의와만 어울리는 것이며 결국엔 모든 비자본주의체계를 파괴하고 말 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어 합니다. 이 점이 바로 제가 후기 자본주의 문화의 음울함을계속 역설하려는 이유고 자본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미학적 비판이 그토록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에서 우리는 대중적이지 않은 포퓰리즘과 더불어정말로 즐겁지는 않은 오락을 만나게 되죠.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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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의 순환을 따라 소소한 즐거움에서 다른 즐거움으로, 이슈에서 이슈로, 트렌드에서 트렌드로, 프로그램에서 프로그램으로 떠돌아다니는 것은 공통의 의미, 공통의 목표, 공통의 자원, 공통의 기획 차원에서 집합성이 부재한 결과입니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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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은 ‘속지 않는 자가 길을 잃는다’les non-dupes errent라는 경구로 이러한 역설을 겨냥하고 있다. 즉 상징적 기만/허구에 사로잡히지 않으려 하고 고집스레 자신의 눈을 믿으려는 자들이 가장 먼저 길을 잃는다. ‘오직 자신의 눈만을 믿는냉소주의자는 상징적 허구의 효력을, 이 허구가 우리의 현실경험을 구조화하는 방식을 놓치고 만다. - P84

개인의 윤리적 책임을 호소하는 지금―주디스 버틀러는 『전쟁의 프레임들』이라는 책에서 이런 현상을 가리키기 위해 ‘책임화’responsibiliz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한다―오히려 가장 전체적인 차원의 구조에 내기를 걸어야 한다.
각 개인 모두가 기후 변화에 책임이 있으며 우리가 각자의본분을 다해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에 아무도 책임이 없으며 그것이 바로 문제라고 말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생태 재앙의 원인은 어떤 비인격적인 구조다. 그 구조는 온갖방식의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정확히 말해 책임을 질수 있는 주체는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주체, 즉 집합적인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직면해 있는 전 지구적인 다른 모든 위기와 마찬가지로, 생태 위기에대응하기 위해서는 그에 적합한 주체가 구축되어야 한다. - P113

후기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정서는 공포와 냉소주의다. 이런 감정은 대담한 사유나 기업가적 도약에 필요한 영감을 주지 못하고, 순응이나 변화 없는 상태에 대한 추종을 불러오며, 이미 성공을 거둔 상품과 아주유사한 상품들만 제작하도록 유도한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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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삶은 분리할 수 없게 되었다. 자본은 우리가 꿈꿀때 우리를 쫓는다. 시간은 더 이상 선형적이지 않으며, 무질서해지고 점 형태로 분할되었다. 생산과 분배가 재구조화됨에 따라 신경계도 재구조화되고 있다. 적기 생산의 한요소가 되어 효율적으로 기능하려면 우리는 예견할 수 없는 사건에 대응하는 능력을 발달시켜야 하고 전면적인 불안정성 혹은 기괴한 신조어인 ‘프리캐러티‘precarity 상황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취업 상태와 실업 상태가 번갈아 이어진다. 대체로 우리는 일련의 단기 일자리에 고용되어 있어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처지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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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10대 학생 상당수는 내가 우울증적 쾌락depres-sive hedonia이라 부르는 상태에 빠져 있는 듯 보였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을 특징짓는 것은 무쾌락 상태다. 그러나 내가말하는 상태는 쾌락을 얻지 못하는 무능이 아니라 쾌락을추구하는 것 말고는 다른 무엇도 할 수 없는 무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학생들은 무언가가 빠져 있다고 느끼지만 오직쾌락원칙 너머에서만 이 누락된 불가사의한 향락에 접근할수 있음을 감지하지는 못한다. 대개의 경우에 이는 학생들이 처한 모호한 구조적 위치의 결과로, 이들은 훈육 제도의주체라는 옛 역할과 서비스 소비자라는 새로운 지위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 P45

학생들에게 두 문장 이상을 읽도록 해 보면 대부분-A레벨 과정 [대학 진학 직전의 2년 과정의 학생조차도 이못하겠다고 항의할 것이다. 교사들이 가장 빈번하게 듣는불평은 따분하다는 것이다. 쟁점은 글의 내용이 아니다. 읽는 행위 자체가 ‘따분하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마주하는 것은 단순히 저 유서 깊은 10대의 귀차니즘torpor이 아니라 ‘너무 자극받아 집중할 수 없는’ 문자 문화이후의 ‘새로운 육체’New Flesh‘와 퇴조하고 있는 훈육 체계의 제한과 집중 논리가 이루는 부조화다. 따분하다는 것은문자메시지, 유튜브, 패스트푸드 등으로 구성된 소통의 감각-자극 매트릭스에서 동떨어져 있다는 것, 언제든 달콤한 만족감을 주는 부단한 흐름에서 차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P48

한 선택지처럼 보이게 만든다. 들뢰즈는 통제 사회가 감금이 아니라 부채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 현재의 교육 체계는 학생들이 부채에 시달리도록 만드는 동시에 그들을 감금하기도 한다. 이 논리는 다음과 같다. 당신의 착취에 돈을 지불하라, 즉 빚을 내 대학에 가라,
그러면 열여섯에 학교를 떠났더라도 쉽게 얻었을 그 맥잡McJob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 P53

수많은 안정 지향자 immobilizer의 실천이 스스로를 68의계승자로 여기는 또 다른 집단―즉 탐욕스런 이윤 추구를 생태학적 관심이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수사학과 결합하는 조지 소로스나 빌 게이츠 등의 이른바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들‘liberal communists- -의 실천과 일종의 거울상을이루고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들은 사회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동시에 노동 관행이 ‘스마트해지기’being smart라는 개념에 발맞추어 (포스트)모던화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슬라보예 지젝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스마트해진다는 것은 역동적이고 유목적인 태도로 중앙집권적 관료주의에 반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해 중심적 권위에 저항하는 대화와 협력, 판에 박힌 일상을 거부하는 유연성, 공업 생산을 대신하는 문화와 지식, 고정된 위계에 저항하는 자율적인 상호작용 및 자가 생산 등을 신뢰하는것을 의미한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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