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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 나라 - 마의태자의 진실
이상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4월
평점 :

개인적으로 2년 전쯤 작가의 전작인, ‘한복입은 남자’를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루벤스가 그린 한복입은 남자 그림을 토대로 조선왕조실록에서 후대의 기록이 사라진 장영실의 삶과 연계해 중국, 이탈리아를 넘나들며 역사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 의문이 나는 역사적 사건과 사건 사이의 미싱 링크를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해 채워넣음으로써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설령 그것이 역사적 증거와 사실이 부족하더라도 역사가가 할 수 없는 소설가만이 펼칠 수 있는 내러티브라는 점에서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 뒤 다음 작품인 제명 공주는 미처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번 작품인 김의 나라를 접하게 되었을 때, 이번에는 어떤 역사적 상상력을 살펴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컸다. 삼국사기에서 신라 마지막 경순왕이 나라를 들어 고려에 귀순한 것을 비통하게 여겨 개골산에 들어가 슬피 울다 죽었다라는 다소 행방이 묘연한 문구로 역사 속에서 사라진 마의태자의 삶에 작가는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 인물에게 새로운 숨을 불어넣은 뒤, 중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여진족 금나라와 연결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설정이 역시나 놀라웠고, 흥미로웠다. 작품 제목인 ‘김의 나라’가 의미하는 바는 신라는 내물마립간 이래 김씨가 왕위를 계승해왔고 따라서 최후의 태자였던 마의태자도 본명은 김일로, 후대 금나라로 불리우는 여진의 시조에서 황실의 뿌리가 신라에서 왔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금나라의 역사가 곧 우리의 역사라는 바를 이야기로 펼쳐낸다.
한복입은 남자를 읽을 때도 느꼈지만 작품을 순수한 소설로서의 매력을 말하고자 하면 그리 좋지는 못하다. 문장 자체로서 흡입력이 있거나 번뜩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표현력이 뛰어나거나 감탄이 나오는 문장도 적다.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거나 갈등이나 감정을 다루는 면모도 깊지 않아 간혹 몰입하기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 자체만으로 관심을 끌고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기록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에 대해 그럴듯한 상상력을 동원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매력이 강해서 쉽게 읽힌다. 전작과 비슷한 소설의 플롯으로 소설 속 주인공은 역사적 사실을 취재하는 pd로서 역사적 진실을 추적하는 인물로 설정하고 실제 저자의 생각이 투영된 인물로서 현대 시점의 이야기를 축으로 하며 당시 배경 속에서 역사적 인물들 간의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진행하며 마지막 시점에서 이야기가 맞물리게 된다. 아무래도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다보니 이야기 전개에 무리가 되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중요한 건 이 소설이 사료로서 그저 받아들이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역사적 사실에서 의문으로 남아있던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고 상상력을 감상할 수 있는 즐거운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금나라와 신라가 이어져있다는 이러한 주장은 책을 읽기 전까지 전혀 몰랐으나, 아직 우리 학계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유사역사로 취급받고 있다. 그건 아마도 역사적 증거가 부족해서일 것이다. 소설에서 금나라와 신라와의 관련성의 증거로서 말하고 있는 청나라 황실의 성으로 불리우는 애신각라, 신라 김씨의 실제 조상으로 추정하는 김일제, 금인과 같은 키워드는 실제 역사적 사료 중 하나인 도제기마인물상, 문무왕릉비 하단석, 금나라 역사서, 청나라 때 조사한 흠정 만주원류고 등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다만, 사료의 정확도를 학계에서 인정하지 않아 가설 중 하나로 치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래도 실증 사학에서 중요시하게 여기는 역사적 사료가 부족한 건 사실이기 때문에 당장 우리의 역사로 받아들이기는 힘든 부분일 것이다. 다만, 무조건적으로 이 이야기를 폄하하고 낮춰보지만은 않았으면 싶다. 뒤늦게 역사적 사료가 발견되면서 기존 학설이 뒤집히는 경우는 무수히도 많다. 아직 발견이 되지 않았을 뿐, 사실로서 증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리가 옛 이야기를 추정해볼 수 있는 여러 갈래의 길 중 하나로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활동 반경이었던 북한 지역과 만주 지역은 사실상 현재 우리가 주도적으로 투명하게 역사적 발굴이나 연구를 하기 불가능한 실정인 탓에 새로운 역사적 사료를 발굴해내기 어려우며 설령 나온다하더라도 동북공정을 관에서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는 중국이나 폐쇄국가인 북한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될 가능성도 높다. 오랫동안 이민족으로 생각해오던 지역의 역사까지 한족의 역사로 포함시키려는 중국의 행태로 볼 때, 결코 이 가설을 인정해주지 않을 것이다.
앞서 말한 외부적 환경이외에도 내부적으로 일제의 식민 지배를 거치며 자신들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우리나라 역사의 조작이 일제로부터 조직적으로 시도되었고, 이 시기에 식민 사학이 당시 우리 학계에 스며든 것도 사실이 아닐까. 민족주의적 사상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왜곡하자는 것이 절대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역사가 사대문화로 중국을 섬기던 유학자들이 중심이 되었던 조선이기에 북방에서 벌어지는 역사는 사대부가 멸시하는 오랑캐로서 만주 역사가 남게 되었고, 삼국 시대와 달리 우리 민족과 철저하게 유리되어 만주에 사는 사람들과 우리의 삶의 방식이나 모습은 많이 달라졌지만 오랫동안 이어져온 뿌리는 같을 수 있다는 생각은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는 우리 역사로서 활동 반경은 지금의 우리나라와 달리 만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우리의 독립운동도 만주에서 이루어졌으며 소수민족으로서 여전히 남아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살펴보면 100년도 채 되지 않는 사이 그들과 우리 간 이질성이 심화되고 동족이라는 생각보다 갈등이 먼저 앞서게 되는 요즘의 세태를 보면 우리의 인식 세계 자체를 한반도에 제한적으로 머무르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소중화 사상으로 북방의 유목민이었던 우리 민족의 역사를 도외시하고 그 이후 만주에서 벌어진 역사를 우리나라를 침략한 이민족으로 그저 배타적으로 바라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증거가 없기에 역사적 사실로 주장할 수는 없으나 역사적 여러 가능성 중 하나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훗날 통일이 되고 중국이 정치적으로도 개방되어 만주를 가까이서 마주하게 될 때, 우리의 생각은 바뀌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