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 나라 - 마의태자의 진실
이상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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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 나라



  개인적으로 2년 전쯤 작가의 전작인, ‘한복입은 남자를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루벤스가 그린 한복입은 남자 그림을 토대로 조선왕조실록에서 후대의 기록이 사라진 장영실의 삶과 연계해 중국, 이탈리아를 넘나들며 역사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 의문이 나는 역사적 사건과 사건 사이의 미싱 링크를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해 채워넣음으로써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설령 그것이 역사적 증거와 사실이 부족하더라도 역사가가 할 수 없는 소설가만이 펼칠 수 있는 내러티브라는 점에서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 뒤 다음 작품인 제명 공주는 미처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번 작품인 김의 나라를 접하게 되었을 때, 이번에는 어떤 역사적 상상력을 살펴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컸다. 삼국사기에서 신라 마지막 경순왕이 나라를 들어 고려에 귀순한 것을 비통하게 여겨 개골산에 들어가 슬피 울다 죽었다라는 다소 행방이 묘연한 문구로 역사 속에서 사라진 마의태자의 삶에 작가는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 인물에게 새로운 숨을 불어넣은 뒤, 중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여진족 금나라와 연결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설정이 역시나 놀라웠고, 흥미로웠다. 작품 제목인 김의 나라가 의미하는 바는 신라는 내물마립간 이래 김씨가 왕위를 계승해왔고 따라서 최후의 태자였던 마의태자도 본명은 김일로, 후대 금나라로 불리우는 여진의 시조에서 황실의 뿌리가 신라에서 왔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금나라의 역사가 곧 우리의 역사라는 바를 이야기로 펼쳐낸다.

 

  한복입은 남자를 읽을 때도 느꼈지만 작품을 순수한 소설로서의 매력을 말하고자 하면 그리 좋지는 못하다. 문장 자체로서 흡입력이 있거나 번뜩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표현력이 뛰어나거나 감탄이 나오는 문장도 적다.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거나 갈등이나 감정을 다루는 면모도 깊지 않아 간혹 몰입하기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 자체만으로 관심을 끌고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기록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에 대해 그럴듯한 상상력을 동원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매력이 강해서 쉽게 읽힌다. 전작과 비슷한 소설의 플롯으로 소설 속 주인공은 역사적 사실을 취재하는 pd로서 역사적 진실을 추적하는 인물로 설정하고 실제 저자의 생각이 투영된 인물로서 현대 시점의 이야기를 축으로 하며 당시 배경 속에서 역사적 인물들 간의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진행하며 마지막 시점에서 이야기가 맞물리게 된다. 아무래도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다보니 이야기 전개에 무리가 되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중요한 건 이 소설이 사료로서 그저 받아들이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역사적 사실에서 의문으로 남아있던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고 상상력을 감상할 수 있는 즐거운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금나라와 신라가 이어져있다는 이러한 주장은 책을 읽기 전까지 전혀 몰랐으나, 아직 우리 학계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유사역사로 취급받고 있다. 그건 아마도 역사적 증거가 부족해서일 것이다. 소설에서 금나라와 신라와의 관련성의 증거로서 말하고 있는 청나라 황실의 성으로 불리우는 애신각라, 신라 김씨의 실제 조상으로 추정하는 김일제, 금인과 같은 키워드는 실제 역사적 사료 중 하나인 도제기마인물상, 문무왕릉비 하단석, 금나라 역사서, 청나라 때 조사한 흠정 만주원류고 등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다만, 사료의 정확도를 학계에서 인정하지 않아 가설 중 하나로 치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래도 실증 사학에서 중요시하게 여기는 역사적 사료가 부족한 건 사실이기 때문에 당장 우리의 역사로 받아들이기는 힘든 부분일 것이다. 다만, 무조건적으로 이 이야기를 폄하하고 낮춰보지만은 않았으면 싶다. 뒤늦게 역사적 사료가 발견되면서 기존 학설이 뒤집히는 경우는 무수히도 많다. 아직 발견이 되지 않았을 뿐, 사실로서 증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리가 옛 이야기를 추정해볼 수 있는 여러 갈래의 길 중 하나로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활동 반경이었던 북한 지역과 만주 지역은 사실상 현재 우리가 주도적으로 투명하게 역사적 발굴이나 연구를 하기 불가능한 실정인 탓에 새로운 역사적 사료를 발굴해내기 어려우며 설령 나온다하더라도 동북공정을 관에서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는 중국이나 폐쇄국가인 북한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될 가능성도 높다. 오랫동안 이민족으로 생각해오던 지역의 역사까지 한족의 역사로 포함시키려는 중국의 행태로 볼 때, 결코 이 가설을 인정해주지 않을 것이다.

 

  앞서 말한 외부적 환경이외에도 내부적으로 일제의 식민 지배를 거치며 자신들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우리나라 역사의 조작이 일제로부터 조직적으로 시도되었고, 이 시기에 식민 사학이 당시 우리 학계에 스며든 것도 사실이 아닐까. 민족주의적 사상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왜곡하자는 것이 절대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역사가 사대문화로 중국을 섬기던 유학자들이 중심이 되었던 조선이기에 북방에서 벌어지는 역사는 사대부가 멸시하는 오랑캐로서 만주 역사가 남게 되었고, 삼국 시대와 달리 우리 민족과 철저하게 유리되어 만주에 사는 사람들과 우리의 삶의 방식이나 모습은 많이 달라졌지만 오랫동안 이어져온 뿌리는 같을 수 있다는 생각은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는 우리 역사로서 활동 반경은 지금의 우리나라와 달리 만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우리의 독립운동도 만주에서 이루어졌으며 소수민족으로서 여전히 남아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살펴보면 100년도 채 되지 않는 사이 그들과 우리 간 이질성이 심화되고 동족이라는 생각보다 갈등이 먼저 앞서게 되는 요즘의 세태를 보면 우리의 인식 세계 자체를 한반도에 제한적으로 머무르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소중화 사상으로 북방의 유목민이었던 우리 민족의 역사를 도외시하고 그 이후 만주에서 벌어진 역사를 우리나라를 침략한 이민족으로 그저 배타적으로 바라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증거가 없기에 역사적 사실로 주장할 수는 없으나 역사적 여러 가능성 중 하나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훗날 통일이 되고 중국이 정치적으로도 개방되어 만주를 가까이서 마주하게 될 때, 우리의 생각은 바뀌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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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덕후가 떠먹여주는 풀코스 세계지리 - 어른이를 위한 세계지도 읽고 여행하는 법
서지선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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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덕후가 떠먹여주는 풀코스 세계지리



  세계지리에 대한 책을 읽을 때면 개인적으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자연환경이든 인문환경이든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느끼게 해주고 미처 내가 살아보지 못한, 경험할 수 없었던 세계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슈를 바라볼 때 많은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인문학이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지리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어떤 사건의 배경이 되는 수많은 부분에서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 사회문화적인 차이를 살펴보는 데도 유용하며 가깝게는 여행을 떠날 때에도 큰 도움이 된다. 역사와 지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을까 싶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평이하고 재밌지만 심도가 있는 편은 아니다.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각 국가 간의 유불리를 따지고 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작가의 생각을 살펴볼 수 있는 지리의 힘과 같은 종류의 서적은 아니다. 저자가 표현한대로 지리덕후로서 세계지리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선뜻 공부하기에는 부담스러웠던 어른을 위한 교양서라고 할 수 있겠다. 학생 때 배웠던 지리 영역에서 배웠던 개념들도 쉽게 설명해주고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세계의 곳곳을 소개해주며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놀라움을 안겨다준다. 세계지도 그 자체에 대한 정보와 기후, 세계 곳곳에 있는 놀라움과 신비의 연속인 지역들을 세계지도와 함께 누비며 친절한 말투로 독자들을 안내해주어 편하고 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좋았던 건 2사람이 만드는 세계지도였는데,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지도 그 자체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무런 의심 없이 은연 중에 지식이라고 알고 있는 지리적 사실이라고 하는 것의 대부분이 인위적으로 결정되었고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근대 지리학을 발전시킨 유럽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지리적 사실에 대한 지식을 맹신하기 보다는 의문을 갖고 관점을 바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 좋았다. 잘 알지 못했던 사실들도 몇 가지 알게 되었는데, 북회구선과 남회귀선에 관한 설명이었다. 흔히 적도라고 하면 1년 내내 태양이 많이 비추고 더운 지역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6~8월에 가까워질수록 태양이 비추는 넓은 면적은 북회귀선(북위 23도 정도)으로 이동하고 12~2월에 가까워질수록 남회귀선으로 이동한다는 것. 물론 태양은 움직이지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적도보다 저위도 지방이 더 기온이 높을 수 있고 적도 지방이 우리보다도 더 덥지 않다는 사실에 놀랐다. 각 위도별로 부는 바람의 종류나 빙하와 빙산의 차이 등 세세하지만 정확한 개념을 알지 못했던 사실들에 대해 한 번 더 짚고 정리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읽는 내내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느낌이 들어 재밌고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동경과 꼭 한 번쯤은 직접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몽실몽실 떠오른다. 세계지리가 어렵다고 생각했던 분들이나 여행을 좋아하는 분들 모두 지리가 좋아지도록 만드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상 속에서 세계지리를 접하며 흔히 품었던 시차, 날짜 변경선 등 평소 궁금했지만 모른 채 지나갔던 지리적 사실들에 대해 일상과 연계해 재밌게 소개하고 생각해왔던 의문들을 해소해줄 수 있었고 전반적으로 우리와 다른 문화권을 이해하는 데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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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리어 왕 - 1608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한우리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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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초판본 리어 왕



  흔히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라 불리는 햄릿,오셀로,맥베스와 더불어 손꼽히는 리어왕은 개인적으로 이 중 유일하게 아직 읽지 않았던 희곡이다. 미뤄뒀던 숙제를 하는 느낌으로 책을 편 리어왕은 오랜만에 다시 세익스피어가 펼쳐내는 화려한 언어적 표현과 다양한 인물들의 욕망과 이해관계가 뒤섞이면서 부조리한 현실에 스스로 고뇌하던 햄릿과 질투에 눈이 멀었던 오셀로, 성취 욕망에 휩싸이는 맥베스의 다른 세 비극보다도 훨씬 큰 스케일에서 이야기가 펼쳐지고, 한 개인의 심리묘사도 훌륭하지만 이에 더해 정치적, 사회적 이해관계에 대한 묘사도 함께 감상할 수 있어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배가된다. 왕에 대한 마음이 변치 않았던 글로스터 백작과 언니들과 다르게 끝까지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함께한 셋째 딸 코딜리어의 죽음에 더해 마지막 우리의 주인공 리어까지, 악한 인물들 뿐만 아니라 선한 인물들마저 대부분 죽음으로 끝을 맺는 이야기에서 그만큼 처절하고 비극적인 요소가 더 강한 느낌이다.


  이야기는 나이가 들어 자신의 권력을 세 명의 딸에게 나누어 주려고 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너희들 중 누가 가장 나를 사랑한다 말하겠느냐?’라는 질문으로 물질적인 욕망곽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아첨과 거짓으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거창하게 말하는 거너릴, 리건과 달리 막내 코딜리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화려한 수식어 대신 진심으로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외친다. 자신의 말을 거역한다고 여긴 리어왕은 두 자매에게만 영토와 권력을 나눠주고 코딜리어는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 프랑스 왕과 왕국을 떠난다. 끝까지 왕에게 충직한 말을 건넨 신하 켄트 또한 왕국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는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잘 대해주던 자매지만, 점차 아버지인 리어를 대하는 태도가 변해가는데, ‘노망난 늙은이로 비유하며 무시하고 리어의 수행원들을 줄여달라고 요구하며 갈등이 시작되고 결국 왕을 쫓아내게 한다. 한편, 리어왕의 신하였던 글로스터 백작에게는 에드먼드라는 서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능력에 비해 불평등한 기회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형을 제거해 권력을 차지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두 가지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면서 점차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지는데, 앞서 쫓겨난 신하 켄트, 그리고 자신의 이복동생의 추적을 피해 미치광이 연기를 하는 형 에드가, 그리고 자신의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주었으나 버림받은 리어왕은 밑바닥까지 떨어질대로 떨어져 자신의 삶과 행동을 되돌아보게 되고 오히려 깨닫게 된다. 이밖에도 권력과 욕정에 대한 욕망으로 점점 더 악한 행동을 보이는 두 자매의 모습과 사람들을 끊임없이 속여가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에드먼드 등 다양한 사람들의 갈등과 대결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극에 몰입하게 된다.


그래도 이렇게 멸시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게 낫지. 멸시받으면서도 아첨받아 모르고 있는 것보다야. 최악의 상황에 가장 비참하게 밑바닥까지 떨어져 있어도 여전히 희망은 있으니 두려울 것 없다.’


  평소 극문학을 많이 접하지 않아 방백이라는 용어도 찾아보았다. 그리고 리어왕이 퍼붓는 현란한 저주들을 읽다보면 무시무시할 정도. 희곡이기에 가능한 인물들의 입장과 퇴장, 무대 설정 및 아름다운 느낌을 담아내는 대사들이 간결하면서도 화려해 문장을 읽는 즐거움도 함께 얻을 수 있었다. 작은 문고책 형태로 깔끔하게 읽기 편하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인물 설명과 구분도 잘 되어 있어 무난하게 잘 읽을 수 있는 편집이었다. 초판본 표지디자인을 한 책이 내용은 완전히 동일했지만 아무래도 보다 미적으로 보다 원작을 읽는 느낌을 주며 아름다워 눈길을 끌고 본문 구성도 활자가 클래식버전보다 크고 진해 페이지 수는 늘어도 보기에 더 쉬웠다. 다만 극문학으로서 대사가 이어지는 느낌이나 글꼴 구성 등 한페이지에서 극을 읽는 체감은 개인적으로 클래식한 버전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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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 왕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25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한우리 옮김 / 더클래식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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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리어 왕

  흔히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라 불리는 햄릿,오셀로,맥베스와 더불어 손꼽히는 리어왕은 개인적으로 이 중 유일하게 아직 읽지 않았던 희곡이다. 미뤄뒀던 숙제를 하는 느낌으로 책을 편 리어왕은 오랜만에 다시 세익스피어가 펼쳐내는 화려한 언어적 표현과 다양한 인물들의 욕망과 이해관계가 뒤섞이면서 부조리한 현실에 스스로 고뇌하던 햄릿과 질투에 눈이 멀었던 오셀로, 성취 욕망에 휩싸이는 맥베스의 다른 세 비극보다도 훨씬 큰 스케일에서 이야기가 펼쳐지고, 한 개인의 심리묘사도 훌륭하지만 이에 더해 정치적, 사회적 이해관계에 대한 묘사도 함께 감상할 수 있어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배가된다. 왕에 대한 마음이 변치 않았던 글로스터 백작과 언니들과 다르게 끝까지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함께한 셋째 딸 코딜리어의 죽음에 더해 마지막 우리의 주인공 리어까지, 악한 인물들 뿐만 아니라 선한 인물들마저 대부분 죽음으로 끝을 맺는 이야기에서 그만큼 처절하고 비극적인 요소가 더 강한 느낌이다.


  이야기는 나이가 들어 자신의 권력을 세 명의 딸에게 나누어 주려고 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너희들 중 누가 가장 나를 사랑한다 말하겠느냐?’라는 질문으로 물질적인 욕망곽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아첨과 거짓으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거창하게 말하는 거너릴, 리건과 달리 막내 코딜리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화려한 수식어 대신 진심으로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외친다. 자신의 말을 거역한다고 여긴 리어왕은 두 자매에게만 영토와 권력을 나눠주고 코딜리어는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 프랑스 왕과 왕국을 떠난다. 끝까지 왕에게 충직한 말을 건넨 신하 켄트 또한 왕국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는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잘 대해주던 자매지만, 점차 아버지인 리어를 대하는 태도가 변해가는데, ‘노망난 늙은이로 비유하며 무시하고 리어의 수행원들을 줄여달라고 요구하며 갈등이 시작되고 결국 왕을 쫓아내게 한다. 한편, 리어왕의 신하였던 글로스터 백작에게는 에드먼드라는 서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능력에 비해 불평등한 기회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형을 제거해 권력을 차지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두 가지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면서 점차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지는데, 앞서 쫓겨난 신하 켄트, 그리고 자신의 이복동생의 추적을 피해 미치광이 연기를 하는 형 에드가, 그리고 자신의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주었으나 버림받은 리어왕은 밑바닥까지 떨어질대로 떨어져 자신의 삶과 행동을 되돌아보게 되고 오히려 깨닫게 된다. 이밖에도 권력과 욕정에 대한 욕망으로 점점 더 악한 행동을 보이는 두 자매의 모습과 사람들을 끊임없이 속여가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에드먼드 등 다양한 사람들의 갈등과 대결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극에 몰입하게 된다.


그래도 이렇게 멸시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게 낫지. 멸시받으면서도 아첨받아 모르고 있는 것보다야. 최악의 상황에 가장 비참하게 밑바닥까지 떨어져 있어도 여전히 희망은 있으니 두려울 것 없다.’


  평소 극문학을 많이 접하지 않아 방백이라는 용어도 찾아보았다. 그리고 리어왕이 퍼붓는 현란한 저주들을 읽다보면 무시무시할 정도. 희곡이기에 가능한 인물들의 입장과 퇴장, 무대 설정 및 아름다운 느낌을 담아내는 대사들이 간결하면서도 화려해 문장을 읽는 즐거움도 함께 얻을 수 있었다. 작은 문고책 형태로 깔끔하게 읽기 편하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인물 설명과 구분도 잘 되어 있어 무난하게 잘 읽을 수 있는 편집이었다. 초판본 표지디자인을 한 책이 내용은 완전히 동일했지만 아무래도 보다 미적으로 보다 원작을 읽는 느낌을 주며 아름다워 눈길을 끌고 본문 구성도 활자가 클래식버전보다 크고 진해 페이지 수는 늘어도 보기에 더 쉬웠다. 다만 극문학으로서 대사가 이어지는 느낌이나 글꼴 구성 등 한페이지에서 극을 읽는 체감은 개인적으로 클래식한 버전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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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그리워졌다 - 인생이 허기질 때 나를 지켜주는 음식
김용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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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그리워졌다



  개인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게되면서 처음으로 20년을 넘게 살아온 집을 떠나 혼자 살게 되었다. 자취를 하며 혼자 살게 되면서 초기에는 음식을 시켜먹거나 나가서 음식을 사먹으며 원하는 걸 먹고 싶어 좋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그 맛도 질리게 되고 위장이 좋지 않은 나에게는 대개 속이 괜히 부대끼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특히 아프거나 일에 지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집에서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된장찌개, 재첩국, 전복죽 등이 떠올랐다. 익숙하게 먹었지만 내가 할 땐 결코 나올 수 없는 맛. 직접 해보고서야 매일 먹던 어머니의 음식들이 얼마나 많은 수고와 시간이 걸리는 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맛도 맛이지만, 그 음식이 더 그리워지는 건 떠오르는 기억 속에 담겨 있는 음식을 먹는 감상 속에는 가족이 함께 한 식탁에 모여 얘기를 나누며 따뜻하게 함께 먹었던 분위기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어머니가 가장 많이 보고팠다. 늘 당연하게 여겼던 어머니의 음식이 어른이 되어서야 그 소중함을 알 수 있었고, 그 음식에 담긴 어머니의 마음을 진심으로 느낄 수 있었기에, 책에 담겨 있는 저마다의 음식에 담긴 추억에 공감하고, 마음 한 켠이 괜히 서렸다. 음식에 관한 감상에는 같은 음식이라 하더라도 개인마다 각자의 경험과 기억이 모두 다르겠지만, 모두가 그 음식을 사랑하는 건 비단 음식만의 맛이라기보다 그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공유한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은 음식을 소개하거나 어떤 지역의 독특한 음식에 관한 소개가 담겨 있는 걸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우리 누구나 일상에서 자주 먹어보았을 평범한 음식이지만, 그 음식에 담겨 있는 개인적인 추억과 감정을 떠올리게 연결해주고 자신의 삶에서 지나쳐왔을 소중한 순간들에 대해 잠시 멈추어 다시금 반추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5개의 대주제를 바탕으로 각 챕터별 10개의 음식을 소개하는데, 누구나 대부분 이 음식들을 먹어보았을 만큼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음식이지만 각자가 이 음식들과 떠올리는 경험은 제각각 다를 것이다. 저자는 챕터별로 해당 음식에 관한 자신의 추억과 기억, 감정들을 담담히 전하면서도 영화, 드라마, , 소설, 노래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작품에서 그 음식과 관련된 스토리와 이미지를 차용해 함께 설명하고 있어 보다 독자들과 공감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가령 책의 첫 번째 음식인 칼국수에서는 김애란 작가의 소설 칼자국에서 어머니의 칼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다는 표현을 인용해 칼국수를 보며 그 속에 담겨왔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러니까 엄마는 칼을 든 무사였다. 세상의 헐벗음 속에서 새끼를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 칼을 든 무사.

 

단 한 그릇읙 국수를 먹을 때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먹는 행위가 있으면 먹이는 행위가 있다는 것을.

 

  작가의 말대로 음식은 단순히 물질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으며 우리는 식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허기도 함께 채운다. 책을 덮고 어머니가 가장 보고싶어졌다. 어머니가 해주셨던 따뜻한 밥과 반찬들도. 솔직하면서도 감성적인 문체로 말하듯이 독자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작가 덕분에 상념에 젖을 수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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