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카인이 최초의 인간 가운데 한 사람 맞습니까?
정옥복: 창세기를 읽어보면,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뒤 도망을 치게 되는데, 그가 다른 곳에 갔을 때, 거기엔 벌써 사람들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최초의 인간이고, 그들 사이에서 난 카인까지 포함하면 이 세상엔 인간이 셋밖에 없어야 하는데, 어떻게 그 당시에 다른 사람들이 이미 존재할 수가 있었습니까? 제가 믿음이 없어서 그런지, 이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 때문에, 성경말씀이 잘 와 닿지 않습니다.
이강훈: 아주 오래 전에 '히브리'라 불리는 민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 사람들의 노예로 있었어요. 그들은 이집트 사람들을 위해서 피라밋을 짓는 일에 동원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집트의 왕 바로의 압제 하에 있던 그들이 극적으로 이집트를 탈출하게 되었어요. 이 출애굽 사건이,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정체성 (identity)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출애굽의 경험이 그들의 신앙 중심에 놓이게 됩니다. 광야에서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 (the Covenant)을 맺게 되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된 것이지요. 그 내용을 열 가지로 나열한 것이 십계명입니다. 이것을 '율법'이라고도 부르죠. 그래서 “말씀”하면 유대인들은 “율법”을 떠올렸고, (율)법이 그들에겐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곳에서 살게 되었어요. 이집트를 탈출해서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40년이 걸렸는데, 그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많은 이방 부족들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전쟁의 신”으로 이해했어요. 즉, 이웃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가져다주는 분으로 이해했던 것이죠. 그러다가 가나안에 정착해 농사짓고 살다보니, “풍요”를 기원할 필요가 있게 됐어요. 그래서 가나안의 토착신인 “바알”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전쟁의 신이고, 바알은 풍요의 신이다!” 이건 아니잖아요? 그러나 아주 오랜 옛날엔, 사람들이 하나님을 그리 폭넓게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우상과의 싸움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모세 이래로, 이스라엘에선, 제사장이나 예언자나 사사 같은 종교적 인물이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벌써 왕을 세우고, 강력한 중앙집권력을 바탕으로 영토를 넓혀나가고 있었어요.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게 아주 부러웠던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요 선지자였던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졸라댔습니다. 결국 사울이 이스라엘 초대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15살 소년의 나이로 골리앗을 죽였던 다윗은 이스라엘의 제2대 왕이 되어, 영토를 크게 넓힙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솔로몬은 자기 왕궁을 너무나 크게 짓고 호화스런 생활을 하느라 국가의 힘을 소진시킵니다. 결국 그가 죽고 나자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북쪽을 “이스라엘”이라 했고, 남쪽을 “유다”라 했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의해 망하고, 몇 백 년 뒤에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합니다. 도시와 성전이 불타고, 사람들은 지배국의 포로로 끌려갑니다. 거기서 이들은, 심각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우리에겐 말씀도 있고, 신앙도 있는데, 왜 망할 수가 있는가?” 그들이 내린 결론은, “우리에겐 말씀대로 살아가는 실행이 없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그들은 하나님을 만난 신앙의 경험들을 문자로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전에는 하나님을 만났던 사건들과 경험들은 있었지만, 성경이라는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글을 잘 몰랐고, 신앙의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출애굽에 대한 이야기가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바베론 포로 시절에 비로소 문자로 기록되기시작합니다. 이 때 기록된 책들이 바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 다섯 권입니다. (단 신명기의 대부분은 이미 문자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부족이 12이였으니까, 같은 얘기도 조금씩 차이가 났습니다. 이 부족에겐 쭉 전해내려 온 이야기가 저 부족에겐 없었습니다. 또 이 부족에겐 없는 이야기가 저 부족에선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만일 한 부족의 이야기만 기록해서 읽는다면, 아마 다른 부족들은 그걸 성서로 인정하지 않고 외면했을 것입니다. 또 내용도 그렇게 풍부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성서를 기록할 땐, 여러 부족의 이야기를 함께 모아서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성경에는 자연히 서로 맞지 않는 부분들도 있게 되었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구석들도 있게 된 것이죠. 만약 성경을 어느 한 사람이 혼자의 상상력으로 써 내려갔다든지, 아니면 하나님이 불러주신 그대로 받아썼더라면, 성경에는 “최초의 인간 세 명 가운데 하나인 카인이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는 일관성 없는 진술을 기록할 리 없습니다. 아마 매끄럽게 써 내려갔을 것입니다. 성경에 서로 맞지 않는 구절이 있다는 것은, 여러 부족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한 데 섞여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한 사람의 종교적 천재가 지어낸 글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하나님 경험을 한 데 묶어놓은 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카인이 최초의 인간 가운데 한 사람인데, 어떻게 그 당시에 다른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느냐?”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모른다”입니다. 만약 어떤 종교적 천재가 이 글을 지어낸 것이라면, 아마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글을 썼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 부족의 다양한 신앙 경험을 함께 묶어놓다 보니까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구절이 성경에 버젓이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카인의 시대에 왜 사람들이 있었는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자, 이래 놓고 나면, '아담, 이브, 카인이 최초의 인간들이었다'는 가정이 깨지고, 자연히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다”는 대전제도 의심스러워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서의 자료가 되는 신앙경험의 사건들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A라는 사람이 한 여자를 만나서, 연애를 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그래서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한 10년 살게 된 다음에, “자신이 한 여인을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지, 또 얼마나 그 여인이 내 생애에 있어서 중요한지”를 쓰게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그가 좀 착각을 해서, 처음 만난 날짜와 만났던 장소를, “1950년 겨울 파고다 공원에서...”라고 써야 할 것을, “1950년 봄 남대문에서...”라고 썼다고 해봅시다. 또 S라는 사람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B라는 사람소개로 만나게 되었다고 썼다시다. 또 S라는 사람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B라는 사람소개로 만나게 되었다고 썼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그 사람 말이 다 거짓입니까? 중요한 건, 처음 만난 날짜, 처음 만난 장소, 누구 소개...이런 것들이 아니죠. 그런 것 다 틀려도, “내가 한 여인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죠.
성경은 역사적 사실을 순서대로 설명하려는 책이 아닙니다. 과학적인 지식을 설명하려고 쓴 책도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 만난 사건들, 그들의 경험담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혹은 과학적으로 좀 맞지 않는 내용이 있다하더라도, 여전히 믿을 수 있는 책이요,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는 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카인이 최초의 인간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해서 그 당시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성경이 말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관심은, 인류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하고, 과학적으로 합리성 있게 증명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런 데에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의 관심은 하나님을 만난 경험을 증거 하려는 데에 있습니다.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고 나서, 하나님께, “다른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두렵습니다”하고 말하게 됩니다. 카인이 이렇게 두려워 떨고 있자, 하나님은 그에게 어떤 표를 주셔서, 아무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고, “그를 죽이는 사람은 7배나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자기 형제를 죽인 자라면, 정말로 나쁜 놈 아닙니까? 그가 뭐 자기 죄를 인정한 것도 아니고, 회개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가 아직 죄 가운데 있고, 죄로부터 돌이킨 것도 아닌데,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은혜로 보호하신다고 하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카인의 후예”로 부릅니다. 아직 죄 가운데 있을 때, 전혀 자비와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불러주시고, 지켜 보호해 오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카인의 시대에도, 이미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담의 문제가 남습니다. “아담은 최초의 인간이 아니었는가? 하나님은 아담을 만들기 전에 또 다른 사람들을 만드셨는가? 그렇다면 아담은 최초의 인간이 아니질 않는가?...” 이런 질문들이 우리를 계속 괴롭힙니다. 유사 이래로 인간들은 끊임없이 인류의 기원에 대해 물어왔습니다. 즉, “인간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는가? 우연히 생겨난 것인가?...” 이런 물음들에 대해 답변해 온 것입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 수많은 종교와 철학과 과학이 나름대로 멋진 답변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런 질문에 대해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갈 존재다”라고 믿고 그것을 성서로 기록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유대인의 하나님을 믿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히브리말로 “아담”은 “사람 (man)”이란 뜻입니다. 또 “인류 (mankind)”란 뜻도 됩니다. 즉, 아담은 한 사람의 존재라기보다는 온 인류를 대표하는 인간인 셈이죠.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셨다는 얘기는 하나님이 인류를 만드셨다는 얘기가 되고, 아담이 죄를 지었다는 얘기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께 대해 죄를 지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이야기는, 옛날이야기로,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그의 이야기 (his story)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 (my story)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카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야, 이런 못된 놈이 있나?”하고 읽는 것이 아니라, “야, 카인이 바로 나구나! 하나님이 나같이 자격 없는 인간을 사랑하시고 은혜 베푸시는구나!”하고 이해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이렇게 읽을 때, 우리는 성경에서 무한한 힘(power)과, 용기와, 생명력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죽은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