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나무 심는 대통령


식목일날 강원도와 충청도에서 산불이 났습니다. “하필이면, 왜 나무 심는 날에 산불이 날까?” 어쩜 우리에게 식목(植木)의 중요성에 대해 메시지를 주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의 아칸사스 (Arkansas)하면, 황량한 지형을 연상케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빌 클린턴(Bill Clinton)이 주지사로 12년간 있으면서, 나무를 심었습니다. 나중에 그가 가고 난 뒤에, 황량한 땅은 빽빽한 숲으로 울창해졌습니다. 처음엔 그가 그렇게 위대한지 몰랐지만, 나무가 자라고 나니까,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였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울진으로 목회를 갔을 때, 온통 산마다 빽빽한 나무들이 퍽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저는 처음으로 “거대한 정신의 소유자”와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또 선미(仙味) 마을에 전기는 75년도에, 전화는 77년도에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가파른 산비탈에 세워진 전신주를 보면, “어떻게 저 산을, 저 가파른 비탈을 무릅쓰고 산골마을까지 전기와 전화를 연결했을까?” 의문이 갔습니다. “저거 세우느라, 군인이 몇 명 죽었지요!” 마을 사람들 말에, “남은 건설하며 죽어가고 있는 동안, 나는 지성을 자랑하며 비판만 하고 있었구나!”하고 깨달으며 부끄러움을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고질병이 무엇입니까? “비판병”입니다. 비판은 하지 말래도, 누구나 잘하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한 에너지가 필요치 않습니다. 그냥 누구나 쉽게 내뱉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건설은 무척 어렵습니다. 그것은 마치 물살을 거슬러, 흐름에 역행하는 도전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은, “비판 대 건설의 비율은, 티끌 대 들보의 비율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건설을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희생과 헌신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비판을 금하셨습니다. 건전한 비판이나 발전을 위한 비판을 금하신 게 아니라, 건설하는 자를 낙심케 하는 비판을 금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대할 때, “건설”의 마음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교회에서는 덕을 세워야 한다.” 그랬습니다. “덕을 세운다”는 말은 희랍어로 하나의 동사입니다. 이 말의 기본 뜻은 “건설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건설”의 마인드로 바라본다면, 당연히 약한 곳이 먼저 눈에 띄입니다. 어린이,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여성, 노인과 같은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끌어안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오고 싶은 교회가 되도록, 우리 모두 키다리 아저씨의 담을 헙시다! 모두 나무 심는 대통령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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