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국 찬, 한식의 탄생
홍대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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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에 담긴 한국인의 역사

 

“밥 먹었어?”라는 말로 안부를 묻고, “밥은 먹고 다니니?”라는 말에 걱정을 담는다. ‘밥값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밥줄이 끊겼다’고 말하며, 누군가를 두고 ‘찬밥 신세’라고도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밥, 국, 수많은 반찬을 함께 먹는지, 왜 김치가 밥상에서 빠지기 어려운지, 왜 쌈을 싸 먹고, 비벼 먹고, 국에 밥을 말아 먹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P.7

가난은 한식을 설명하는 긴 이야기의 일부일 수 있지만, 가난만으로는 왜 한국의 음식이 하필 지금과 같은 구조가 되었는지 설명할 수 없다.

 

홍대선의 『밥 국 찬, 한식의 탄생』은 바로 그 익숙함에서 질문을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밥상을 전혀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 한식을 단순히 ‘우리의 전통 음식’이라는 자랑스러운 문화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식을 가난 때문에 만들어진 음식이라고 단순화하지도 않는다. 저자는 한식을 한반도라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이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만들어낸 결과로 바라본다. 한식은 완성된 작품이라기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남긴 흔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밥상이 달라 보였다.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 몇 가지 찬이 차려진 평범한 식사가 사실은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생존의 지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이 많고 농사지을 땅이 넉넉하지 않았던 환경, 혹독한 계절의 변화, 봄의 굶주림과 겨울을 견뎌야 했던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먹을 수 있는 것을 찾아냈고(나물), 저장하고, 발효시키고, 말리고, 서로 다른 음식들을 조합해 먹었다.

 

P.109

한국인은 키울 식물을 재배하고 개량하는 실험 외에, 더욱 광범위한 실험을 해야 했다. 인간이 어디까지 먹어도 죽지 않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실험이다. 즉 먹는 게 가능한 식물인 ‘나물’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실험이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한식이 끊임없이 ‘조립되는 음식’이라는 저자의 관점이었다. 밥과 국이 만나 ‘국밥’이 되고, 밥과 반찬이 만나 ‘비빔밥’이 되고, 밥과 여러 재료가 만나 ‘쌈’이 된다. 우리가 너무 자연스럽게 해왔던 행동이 사실은 한국인의 독특한 식문화였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P.169

국밥은 밥과 국의 조립이고, 비빔밥은 밥과 찬의 조립이다. 어차피 한국인은 식사할 때마다 ‘밥, 국, 찬’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조직하고 조립하며 왜곡한다. 밥과 국이 만나 국밥이 되는데, 밥과 찬이 만나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비빔밥은 밥상 위에 펼쳐진 반찬의 세계를 사발 안에 접어 놓은 음식이다.

 

홍대선 작가의 『한국인의 탄생』이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와 성격을 바라본 책이었다면, 『밥 국 찬, 한식의 탄생』은 그 시선을 우리의 밥상으로 가져온 책으로 느껴졌다. 『밥 국 찬, 한식의 탄생』 속에 『한국인의 탄생』 책을 자주 언급해서인지 두 권을 다 읽은 느낌이다.

 

앞으로 밥상을 마주할 때 그저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가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기에 이런 밥상을 갖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를 것 같다. 『밥 국 찬, 한식의 탄생』은 그 당연함을 낯설게 돌아보게 해준 책이었다.

 

 

추가

이 부분 읽으며 나는 무얼 먹었나 보니 다 먹고 있었다.

112 인류가 보편적으로 재배하는 채소도 한국에서는 나물이 된다. 외국에서는 안 먹지만 한국인은 야무지게 먹는 부분 말이다. 한국인은 연근만 먹지 않고 연잎도 먹는다. 열매를 위해 호박을 키우지만 ‘호박잎’을 삶아 쌈채소로 먹는다. 들깨를 수확하는 데에서 만족하지 않고 ‘깻 잎’까지 먹는다. 토란만 먹지 않고 줄기인 ‘토란대’까지 먹는다. 마늘의 줄기인 ‘마늘종’, ‘고구마 줄기’(고구마나물), ‘고춧잎’(고춧잎나물)을 먹는다. 고기 삶는 국물을 낼 때는 파뿌리, 양파뿌리, 양파껍질까지 쓴다. 콩을 수확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콩잎’을 먹고, 옥수수 열매뿐 아니라 ‘옥수수 수염’까지 차로 우려내 마신다. 옥수수수염을 한국인처럼 먹는 사람들은 남아메리카 전통 원주민뿐인데, 그나마도 약으로 마시지 한국인처럼 일상의 음료로 삼진 않는다.

112 인류가 보편적으로 재배하는 채소도 한국에서는 나물이 된다. 외국에서는 안 먹지만 한국인은 야무지게 먹는 부분 말이다. 한국인은 연근만 먹지 않고 연잎도 먹는다. 열매를 위해 호박을 키우지만 ‘호박잎’을 삶아 쌈채소로 먹는다. 들깨를 수확하는 데에서 만족하지 않고 ‘깻 잎’까지 먹는다. 토란만 먹지 않고 줄기인 ‘토란대’까지 먹는다. 마늘의 줄기인 ‘마늘종’, ‘고구마 줄기’(고구마나물), ‘고춧잎’(고춧잎나물)을 먹는다. 고기 삶는 국물을 낼 때는 파뿌리, 양파뿌리, 양파껍질까지 쓴다. 콩을 수확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콩잎’을 먹고, 옥수수 열매뿐 아니라 ‘옥수수 수염’까지 차로 우려내 마신다. 옥수수수염을 한국인처럼 먹는 사람들은 남아메리카 전통 원주민뿐인데, 그나마도 약으로 마시지 한국인처럼 일상의 음료로 삼진 않는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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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딸의 백팔배 - 어느 종교학자의 자기 배려하기 ㅣ 파도문고
이정은 지음 / 온다프레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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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정은은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버지(목사)가 아니었다면 종교에 이렇게까지 붙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고 소개글에 쓰여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1녀1남중 장녀인 저자는 ‘k-장녀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았다. 부모, 나, 종교를 책에서 이야기 했지만 부모, 장녀 또는 장남, 효라는 단어로 바꾸어서 읽어도 무방했다. 종교학자와 종교인가족 이야기인데 세대별 가족관(효 결혼 출산)의 충돌로 읽어도 좋겠다.

 

‘목사 딸의 백팔배’ 제목이 자극적으로 들리면서 거부감이 생기는가 흥미가 생기는가? ‘목사딸’로 태어나는 것은 개인의 선택도 의지도 아니다. ‘백팔배’는 종교적으로 행하는 행동이 아니라 몸운동, 마음운동이라고 느껴보자. 그러고 다시 제목을 읽어보면 이 책을 거부하기보다 읽어보고 싶어질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 제공 받지 않았습니다.


149 첫째는 심사가 뒤틀렸다. 둘째가 부러웠던 것이다.
집 떠나 시원하게 놀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안그런 척했다. 똑같은 인간이면서 고고한 척했다. 자신에게는 방탕하게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없는 양, 그 마음이 들킬세라 더욱 성실히 일했다. 하지만 그 숨겨진 것이 첫째를 뒤엉키게 만들었다. 내가 불행하니 남이 행복한 꼴을 볼 수 없다. 남도 나만큼 일해야 한다. 괴로워해야 한다. 그러니 둘째도 심판받아야 하는 것이다. 잔치를 즐길 것이 아니라, 일하고 괴로워해야 하는 것이다. - P149

164
집 떠나는 첫째‘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의 떠 남‘이 엄마에게 무엇보다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없는 힘까지 다해 그녀가 그 아품을 맞닥뜨리는 과정이 완만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애썼다. 2년, 3년, 5년‘ 이야기를 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하지만 그것은 악수였다. 상대가 그 말을 붙들고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 P164


189
나는 이제 ‘구원‘이 각 존재의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 생명을 살아가게 하는 힘, 숨 쉬게 하는 힘은 기본적으로 각 생명 내부에 있다. 물론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과 연결되는 것을 통해 삶을 유지할 수 있기에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를 보듬고 북돋아야 하지만, 그럼에도 각 존재가 저 깊은 땅을 박차고 일어나게 하는 힘, 그렇게 움트고 돋아나는 힘은 그 존재의 것이며 그에게서 비롯된다. 따라서 모든 생명은, 현재 어떤 상태에 놓여 있든 각자만의 빛을 여전히 지니고있는 것이기에 그 모습 자체로 귀하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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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센 파시즘 - 100년 만에 귀환한 글로벌 파시즘 돌파 전략
홍성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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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은 흔히 독재자 몇 명의 광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 재판에 회부된 독일인 21명을 조사한 결과, 정신이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이들은 특별히 잔인하거나 비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파시즘에 동조하고 비극적인 역사에 가담하게 되었을까.

 

(p29

제2차 세계대전 후 전범 재판에 회부된 독일인 21명 중 정신이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패전 2년 후 실시된 독일 시민 대상 여론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응답자의 55%가 민족사회주의(파시즘)에 대해 '실행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 좋은 이념'이었다는 설문에 동의했다. 즉, 독일의 정상적인 사람들이 나치즘을 받아들였고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무려 7,000만 명 이상 사망했고, 유대인은 약 600만 명이 학살되었다. 그러나 평범한 독일인들 중 자신들이 저지른 비인간적 행위에 대해 반성하거나 죄책감을 느낀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더 센 파시즘』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파시즘의 뿌리를 사회적 고립과 소외, 그리고 분열에서 찾는다. 사람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불안이 커질수록 자신을 이해해 주고 소속감을 제공하는 집단을 찾게 된다. 파시즘은 바로 이러한 불안과 외로움을 이용한다. 단순한 구호와 명확한 적을 제시하며 복잡한 현실을 쉽게 설명해 주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강한 공동체 의식을 제공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정치적 갈등은 심화되고, 세대와 계층 간의 대립은 커지고 있으며, 온라인 공간에서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기보다 비난하고 배척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사회 분열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p82

현대 세계는 역사 시대 이후 이어진 사회의 근간이 허물어지면서 방향성을 상실하고 있다. 역피라미드형 인구구조, 기후 위기, 인간을 대체하는 AI의 등장과 SNS를 통한 파편화된 소 통으로 과거와 단절되고 있다. 페미니즘, 동성애, 새로운 예술의 등장 등 구세대 입장에서는 적응은커녕 이해도 어렵다. 자유주의 기반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전환으로 사람들은 안정적이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알 수 없는 미래로 떠밀려가는 세상을 어떤 식으로든지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커지고 있다.)

 

 

책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안도 제시한다. 파시즘적 사고에 빠져드는 사람들을 단순히 비난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른 세계와 다양한 관점을 만날 수 있도록 사회가 연결의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독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공동체의 경험을 제공하고, 서로 다른 배경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이기심과 정치적 무관심을 넘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다양성(Diversity), 포용성(Inclusion), 형평성(Equity)을 존중하는 가치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정신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로 다른 사람을 배제하기보다 존중하고,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정한 기회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파시즘의 확산을 막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p347

사회 분열에 대한 인식은 높아지고 있지만 어떤 대응도 못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파시즘 집회에 나가는 고독한 군 중, 소외된 군중에게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리고 이끌어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가 되었다. 개인의 이기심과 정치 적 무관심을 버리고, 미국이 포기한 DEI(다양성: 포용성 •형평성)와 PC주의(정치적 올바름)를 강화하는 것 이외에 달리 대안은 없다.)

 

결국 파시즘은 특정 시대의 과거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분열되고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출 때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는 위험이다. 역사를 기억하는 이유는 과거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를 성찰하기 위해서다. 『더 센 파시즘』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는 서로를 적으로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고 있는가. 파시즘을 막는 힘은 거창한 영웅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민들의 작은 노력과 연대 속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p29
제2차 세계대전 후 전범 재판에 회부된 독일인 21명 중 정신이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패전 2년 후 실시된 독일 시민 대상 여론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응답자의 55%가 민족사회주의(파시즘)에 대해 ‘실행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 좋은 이념‘이었다는 설문에 동의했다. 즉, 독일의 정상적인 사람들이 나치즘을 받아들였고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무려 7,000만 명 이상 사망했고, 유대인은 약 600만 명이 학살되었다. 그러나 평범한 독일인들 중 자신들이 저지른 비인간적 행위에 대해 반성하거나 죄책감을 느낀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 P29

p82
현대 세계는 역사 시대 이후 이어진 사회의 근간이 허물어지면서 방향성을 상실하고 있다. 역피라미드형 인구구조, 기후 위기, 인간을 대체하는 AI의 등장과 SNS를 통한 파편화된 소 통으로 과거와 단절되고 있다. 페미니즘, 동성애, 새로운 예술의 등장 등 구세대 입장에서는 적응은커녕 이해도 어렵다. 자유주의 기반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전환으로 사람들은 안정적이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알 수 없는 미래로 떠밀려가는 세상을 어떤 식으로든지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커지고 있다. - P82

p347
사회 분열에 대한 인식은 높아지고 있지만 어떤 대응도 못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파시즘 집회에 나가는 고독한 군 중, 소외된 군중에게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리고 이끌어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가 되었다. 개인의 이기심과 정치 적 무관심을 버리고, 미국이 포기한 DEI(다양성: 포용성 •형평성)와 PC주의(정치적 올바름)를 강화하는 것 이외에 달리 대안은 없다. -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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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병 - 몸을 망치는 의자 몸을 살리는 자세
최성민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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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병 

제목만으로도 읽고 싶게 만든 책입니다. 

출근하면 적어도 5~6시간.

학생들도 8시간 이상은 앉아 있으니

의자가 만드는 병으로 허리, 다리, 목.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읽다 보니 마음에 담아 두어야 하는 문장들이 많아서 모아 보았습니다. 




21  내 경험상 통증의 원인은 대부분 일상 속 사소한 습관에 숨어 있다. 그래서 평소 생활 습관을 하나하나 물어보았지만,


25

결국 두통의 원인은 자세였다. 승모근이 심하게 뭉치면 머리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어 두통이 생긴다. 여기에 종아리 근육까지 굳어 순환이 더 막히면, 진통제마저 제대로 듣지 않게 되는 것이다.


39

우리는 통증이 생기면 아픈 부위만 치료하려는 경향이 있다. 목이 아프면 목을, 허리가 아프면 허리를, 다리가 저리면 다리를 살핀다. 그러나 자세는 특정 부위의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와 연결된 ’시작점‘이자 '중심‘이다.


59


바른 자세의 첫 번째 조건은 억지로 유지하는 자세가 아니라, 몸이 편안한 상태에서도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자세다


78

최고의 성형은 건강이다.

몸의 정렬이 바로잡히면 얼굴의 균형도 자연스럽게 맞춰진다.


86


근골격계 통증이나 기능 저하가 장기간 지속되면 우울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불안은 자존감과 삶의 의욕까지 갉아먹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상 현장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충분히 살피지 않은 채, 정신적인 원인으로만 단정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167


남들이 모르는 비밀 기술이 있어서도, 한 번에 낫게 만드는 마법 같은 방법이 있어서도 아니다. 다른 치료사들도 다루는 바로 그 근육을, 대충이 아니라 풀릴 때까지 끝까지 풀어낸 것뿐이다. 단순하지만 가장 지키기 어려운 이 원칙이, 결국 치료 결과의 차이를 만든다.



책 안에 있는 그림 중 유용한 것이 많아 올려봅니다. 



바닥에 앉게 된다면 그림처럼 방석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우리는 통증이 생기면 아픈 부위만 치료하려는 경향이 있다. 목이 아프면 목을, 허리가 아프면 허리를, 다리가 저리면 다리를 살핀다. 그러나 자세는 특정 부위의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와 연결된 ’시작점‘이자 ‘중심‘이다. - P39

근골격계 통증이나 기능 저하가 장기간 지속되면 우울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불안은 자존감과 삶의 의욕까지 갉아먹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상 현장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충분히 살피지 않은 채, 정신적인 원인으로만 단정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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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유전자 - 세계사를 뒤바꾼 문제적 유전자 바로 읽기
정우현 지음 / 이른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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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유전법칙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혀말기를 해보라고 엄마는 우성인지 열성인지 확인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혀말기를 해보이며 엄마는 우성이야 라고 말하고 우쭐한 저를 보며 이건 이럴 일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죠. 그래서 우성과 열성이라는 단어 때문에 우성이 우월하다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 그냥 나타나는 형질이 우성이라는 뜻이야 알지? 라는 말을 아이에게 했습니다.

인간은 유전자를 처음 발견하고 어떤 것에는 '좋은 유전자', 또 다른 것에는 '나쁜 유전자'라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피부색에도 인종의 다름에도 말입니다. 과학이라는 이름아래 우생학이 생겼고 인종주의가 더 확대 되었죠. 그런데 이런 것이 유전자를 발견한 과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일까요 아니면 과학의 힘을 빌려 인간이 마음대로 정한 것일까요. 우리는 이미 답을 알지만 혀말기를 해보이며 나는 이런 동작이 되는 사람이야 라는 생각이 쏙 올라 오는 것은 왜일까요?

인종차별은 과학과 이성이 아직 자리 잡지 못했던 미혹의 시대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성과 계몽의 시대에 이르러 과학은 인종차별을 없앤게 아니라 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근거를 제공하며 인종차별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과학은 객관적이며 가치중립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합리적 판단에 힘을 실어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과학은 차별의 알리바이가 되어준다. <나쁜유전자 49쪽>

과학의 힘에 기대어 다름을 틀림으로 구별해서 정치에 삶에 이용하며 살아 왔던 우리의 모습은 어느 곳에서나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과학의 힘을 삶에 적용하는 문제에서는 분석과 판단 그리고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대로 받아드리기 보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유전자는 실제로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유전자가 행동의 기초가 된다는 말과 우리의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는 말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다 <나쁜유전자 340쪽>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유전자에의해 완성된 존재여서 유전자의 계획대로 삶이 살아지는 것이라면 사실 살아갈 의미도 없지 않을까요. 우리는 점차 변모해가는 '과정으로서의 인간‘ 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요. 유전자가 나를 도와 줄 수도 내 삶을 방해하는 존재 일 수 도 있지만 우리는 내가 만들어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니 유전자여 너는 가끔 내 삶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만 있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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